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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블로그] 돌아온 ‘강철중’, 재벌공화국 한국사회에 대한 장진식 조롱

등록 2008-06-20 19:03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이번 이건희 회장 일가의 경영권 불법 승계 및 비자금 관련된 공판을 보도하면서 한겨레가 자꾸만 '삼성사건' , '삼성사건' 하는데, 그러지 말아달라고 하고싶다. 이건희씨가 살인을 저지르면 삼성살인사건이고 정몽준의원이 성추행을 하면 현대성추행사건이 되나? 언론의 언어정립이 이러니, 한화그룹 김승현회장이 폭력을 저지른 것을 두고 한화그룹에서는 "해외와의 굵직한 계약건 등 업무 보류" 따위의 말도 안되는 보도자료가 나오고,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에서는 "대외신인도에 따른 수출적신호"니 "일본전자업체 배후설" 따위의 보도자료가 흘러다니는 것 아닌가. A=A고 B=B다. A=BABB 이런 식의 엮어넣기 좀 하지 말라. 이렇게 설명해도 무슨 이야기인지 여전히 모르겠다면, 영화 [강철중]을 보기 바란다. '거성'이란 기업형 조폭을 조사함에 있어 단순무식 강철중씨가 핵심을 향해 어떻게 뛰어들어, 공략하는지 말이다. 영화는 영화일뿐이겠지만, 현실에서 막힌 속을 영화보고 풀어야 하고 다시 나오면 그대로인 현실은, 가끔씩 스크린 안으로 훅 쑤셔넣어 버리고 싶다.

한달이 넘는 시간 동안 광우병 논란과 연이은 대규모 촛불집회로 신문에서 다른 이슈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현재의 정부가 잘못하고 있는 것들이나 국민들이 반대하는 일들이 논의의 양지로 나오기도 했고,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재판이나 대구 어린이 살인사건 같은 일들은 은근슬쩍 묻혀져 가는 중이다. 공기처럼 쓱쓱 지나가던 시대가, 요즘은 온 몸을 휘감아 돌리는 쓰나미처럼 지나가고 있는 즈음, 영화 [공공의적1-1, 강철중]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목을 들으면서 5-6년 전 비평이고 뭐고를 떠나서 시종일관 웃으면서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공공의적]이 생각났고, 그 다음으로는 영화 1편에서나 2편에서나 개봉 후 많은 영화평론가들이 떠들었던 "[공공의적] 시리즈 속의 악역들은 과연 공공의 적인가?"라는 문제제기가 생각났다. 그리고는 이 시대의 공공의적은 누구인가를 잠시 갸우뚱하다가, 이번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여줄만한 공공의적이 설정될 것인가가 궁금했다.

홍수처럼 범람하는 TV의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친절히 설파한 바와 같이, [공공의적1-1 강철중]의 공공의 적은 기업형 조직폭력집단이며, 그 집단을 이끄는 정재영이다. 그 설정을 듣는 순간, 솔직히 나는 영화에 대한 기대를 일정부분 접어버렸었다. '음..또 뻔한 조폭이야기로구만. 그만 좀 하지, 이젠 강우석 감독까지 거드나? 한국영화가 정말 골로 가려나보다' 뭐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한국 영화에서 그간 지겹도록 울궈먹던 조폭이 [공공의적1-1. 강철중]에서는 '제대로' 변주되고 있었다. 리얼리티로서의 승부가 아니라 장진식 풍자의 코드로써, 오늘날 한국 사회의 속성을 드러내는 최적의 도구로 조폭을 소구하고 있었다.

영화에는 '거성그룹'이란 이름의 기업이 나온다. 신입사원 연수 과정도 있고, 연수할 때 다같이 맞춰입는 단정한(?) 츄리닝도 있고, 그들을 독려하는 간부와 회사 대표도 나온다. 그들은 체육관도 있고, 로비 쨘쨘한 회사도 있고, 고객도 있고, 나름대로의 상도덕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거성은 뭐하는 회사일까? 여기까지 보면 거성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일반 대기업과 다를게 없는 회사다. 그러면 뭐하는 회사인고 하니 -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업형 조직폭력집단이기도 하고 조직폭력배 기업이기도 한다. 조폭을 공공의 적으로 놓는 것은 요즘같은 시국에 너무 고리타분하다고 느낄 관객들이 많을 것이다. 이 영화의 미덕은 이 고리타분한 설정을 아주 신선하게 재개발(?)하고 있다는 것인데, 시나리오를 쓴 장진은 기업화된 조폭집단을 등장시켜 조폭의 이야기를 하는 외양을 하고는 조폭과 한국의 재벌기업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교묘하게 등치시켜 들이민다.


영화에서는 '거성'을 이끄는 정재영이 "난 ~~~ 이따위로 사는데 세상은 날 ~~~ 청년실업가라 부른다"라는 류의 대사를 통해 직설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듣고 있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말을 하는 정재영은 사뭇 진지하지만 '저 대사는 정재영이 아니라, 조폭 두목이 아니라, 머시기 장관이 해도, 거시기 국회의원이 해도, 가지가지 재벌회장이 해도 다 되겠는데?'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고 그래서 종래에는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상명하복의 직급체계를 보면서, 회장인 정재영이 옆에 비서처럼 끼고 다니던 이가 변호사라는 것을 알고나서는 변호사만 봐도 웃음이 났다. (더구나 실제 변호사 분들에게는 좀 실례되는 말일지 몰라도, 극중 변호사의 얼굴이 통상 기업에서 고용되서 일하는 변호사들의 보편적인 얼굴과 아주 닮아있기까지 하다.) 또 입사(?) 전에는 모든 취업(?)준비생들의 로망이었다가 들어와서는 막상 이게 아닌데 생각이 들면서 갈등하는 사원들의 모습이나 조직을 배반한 자에 대한 린치와,조직에서 소위 크고 싶은 평민 직원들이 빠지는 딜레마.. 거기에 남의 아이들을 깡패로 만드는데 공들이면서 자기 아이에게는 가족농장에 데려가는 정재영의 이중성이라니. 이런 것들은 너무나 낯익은 것들이라 그저 웃음 뒤에 남는 씁쓸함에 나도 모르게 현실과 대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과 또 우리가 알고있는 한국사회의 어떤 현장과 너무 닮아있으니 말이다.

이 영화를 작년 가을 전후로 크랭크인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영화 시나리오 작업은 봄이나 여름까지는 끝이 났을 것이다. 그러니까 시나리오를 쓴 장진은 뜨거웠던 BBK공방이나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 삼성 이건희회장의 천문학적 비자금 사건과 이학수 동지와의 뜨거운 우정(?), 삼성에 고용된 잘난 변호사들의 말장난, 재앙일보 기자들의 카메라 격투기 실력같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 뜨거웠던 이슈들을 맞닥드리기 전에 이 시나리오를 썼다는 것이다. 지난 겨울을 뜨겁게 달궜던 이건희회장 일가의 천문학적 비자금 혹은 조세포탈과 관련된 공판이 막 시작된 주에 개봉한 이 [공공의적1-1 강철중]을 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묘했다. 장진이 남들 안가진 투시력이 있어 상황을 미리 유추해 이렇게 썼던 것일리는 없고 이것이 그간 통상 한국 재벌들이나 권력자들이 국민들에게 공공연히 보여온 반복적 행태라는 것에 시종일관 히히덕 거리며 영화를 보면서도 입맛이 썼다. 정재영이 사원(?)을 붙잡고 "깡패의 의리란 친구의 이름을 불지 않는 것이다"는 대사에서는, 회장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며 모든 것이 제 탓이라던 지난 겨울 이학수 회장의 장렬한 고해(?)가 어지럽게 떠다녔다. 영화가 끝날 즘에는 장진에 대한 달콤한 질투와 현실에 대한 씁쓸한 실감이 복잡하게 밀려왔다.

[공공의적1-1 강철중]을 두고 혹자는 영화가 다소 밋밋해졌다고도 하고, 혹자는 결국 뻔한 이야기아니냐고 하기도 하고, 또 혹자는 마초적이라고 욕하기도 하며,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의 정당화가 아니냐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현실에는 있는 공공의 적이지만 현실에는 없는 강철중의 이야기인 [공공의적 1-1 강철중]에 현실의 도의적 법리적 대입은 하지 않기로 했다. 최소한 현실에는 존재하는 공공의 적이지만 현실에서 하지 못하는 수사와 응징이 가능한 [공공의적1-1 강철중]은 무척 시원한 영화였다. 뿐인가? 감히 조중동도, 요즘은 심지어 한겨레마저 주저하는 재벌들의 행태에 대해 사뿐히 즈려밟아 넌즈시 찔러주는 센스까지, [공공의적1-1 강철중]은 유쾌한 영화였다. 현실에선 그냥 검사도 못하고, 특검도 못하고, 심지어는 언론도 어쩌지를 못하는 일들이 넘쳐나는데, 영화에서라도 우직한 강철중이 적의 힘에 개의치않고 수사해주고 죽지않을 만큼 때려준다니, 난 그런 강철중의 이야기를 매년 여름은 아니어도 앞으로 한두번쯤은 더 만나고 싶다. 영화에서라도, 영화에서나마 말이다.

종일 비도 오고, 기분이 꿀꿀했다. 회사와 소송을 하면서 내 몸과 일상이 유령처럼 인사팀 아류에 박제된 채 지내는 것도 답답한데, 250명이 넘는 신임 과장 와이프들에게 주부봉사단에 가입해달라는 신청독려 편지를 봉투에 넣어 풀로 붙이라는 일을 해달라고 옆자리 여사원이 의뢰(?)를 해왔다. 그 아이가 보기에도 하는 일 없이 배회하는 나의 일상이, 회사 인사비리범죄를 종합장으로 감수하고 앉은 나의 상황이, 그 와중에 이젠 내가 부사수로 받아 일 가르쳤던 한참 아래의 후배들에게 과장진급 축하한다는 편지의 봉투를 손이 닳도록 붙이고 앉아있다는 자괴감이 꿀꿀했다. 울컥거림을 꾹꾹 눌러담고 퇴근 후 극장에 갔다. 뭐든 보면서 소리를 지르든 눈물을 흘리든 해얄 것 같았는데 우연히 시간이 맞는 영화가 강철중 뿐이었다. 그런데, 소리지를 겨를 없이 낄낄 웃으면서 영화를 봤고, 영화를 보고 나오니 제법 속이 시원했다. 영화도 충분히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간만에 실컷 웃게 해주고 스트레스를 날려준 [강철중]이 올여름의 흥행작 신호탄이 되주었으면 좋겠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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