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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이사 온 이웃이 내 농장을 위협한다

등록 2008-07-06 18:51수정 2008-07-06 21:13

‘레몬 트리’
이-팔 분쟁 낮은 목소리로 읊조려…올 베를린영화제 관객상 수상작

이웃집에 누군가 이사를 왔다. 그런데 그 이웃이 내 집의 나무를 강제로 베어내려 한다면? 만약 당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아니,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

10일 개봉하는 이스라엘 영화 <레몬 트리>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난다. 아버지가 남긴 레몬 농장을 가꾸며 홀로 살아가고 있는 팔레스타인 여인 살마(히암 압바스)의 이웃으로 이스라엘 국방장관 나본(도론 타보리)이 이사 오면서부터다. 새로 국방장관이 된 나본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의 경계인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관사를 짓는다. 살마가 거름을 주고 열매를 따던 과수원은 졸지에 군사보호구역으로 변한다. 철책이 생기고 경계초소가 들어선다. 급기야 이스라엘 안보국은 국방장관의 안전을 위협한다며 레몬 나무들을 베어내겠다고 살마에게 통보한다. 나무 뒤에 테러리스트가 숨을 수 있다는 게 이유다. 살마는 러시아 유학을 마치고 막 돌아온 변호사 지아드(알리 슐리만)와 함께 레몬 농장을 지켜내기 위해 법정 투쟁을 벌인다. 그 법정이 비록 “저들(이스라엘)의 법정”일지라도.


이스라엘 건국 60돌을 맞는 2008년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알 나크바(대재앙)’ 60주년이다. 한쪽의 정착은 다른 한쪽의 난민 생활을 뜻한다. 살마에게 레몬 나무는 생명이자 생계이며 정착이지만, 나본에게는 테러의 온상이며 뿌리 뽑아야 할 적이다.

시오니즘과 무슬림의 경계는 이렇게 배타적이다. 영화는 같은 고향을 두고 수천년을 지속해온 이-팔 분쟁의 축소판이다. 먼저 둥지를 틀고 살고 있던 살마가 팔레스타인을 상징한다면, 나중에 밀고 들어와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나본은 이스라엘의 표상이다.

2004년 <시리아인 신부>로 각종 국제영화제를 휩쓴 이스라엘의 에란 리클리스 감독은 국방장관의 아내 미라(로나 리파즈 미셸)의 눈을 통해 점령자로 군림하는 자국의 뒷모습을 성찰한다. 아름다운 풍광을 해치려는 남편의 소행을 납득할 수 없는 미라는 신문사 기자인 친구와의 인터뷰에 응했다가 남편을 곤경에 빠뜨린다.

살마와 젊은 변호사 사이의 짧은 로맨스, 이를 손가락질하는 보수적인 마을 사람들, 나본과 비서의 은밀한 시선을 바라보는 아내 미라의 불안 등은 영화의 결을 풍성하게 하는 장치다. 유럽 영화 특유의 호흡을 담아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레몬 트리>는 2008 베를린 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개막작으로 초청됐으며, 관객상을 받았다.


영화를 보면서 평택 대추리 주민들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들은 나무만 베어낸 게 아니라 아예 집에서 쫓겨나야 했다. 그나마 보상금이라도 챙겼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나무가 아니라 삶의 뿌리를 뽑힌 이들의 무너지는 가슴을 푼돈으로 달랠 수 있을까? 그들은 지금 어디서 망향의 한을 달래고 있을까?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영화사 진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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