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우영 만화의 캐릭터들.
신문에 작품 재연재…회고전도 열어
독특한 역사 시각·해석력 ‘생명과 힘’
독특한 역사 시각·해석력 ‘생명과 힘’
30년 전 연재만화가 그 신문에 다시 실리고 있다. 2005년 타계한 작가를 대신해 그의 아들이 흑백 원작에 색깔을 입혔을 뿐 옛 그대로다.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 얘기다. <일간스포츠> 창간 당시 발행부수 2만 부로 출발한 신문을 4년 만에 30만 부의 유력지로 끌어올린 기억이 작용했을 터다.
고우영(1938~2005)의 위력이 계속되고 있다. <…삼국지>는 2004년 다시 출간돼 4년여 만에 40만 부가 팔렸다. <고우영 십팔사략>도 30만 부 넘게 팔리며 출판사를 먹여살리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지난 올해, 그의 이름은 생존작가들보다도 더 주목받고 있다. 문화방송은 11월께 고우영 원작의 <일지매>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를 방영할 계획이다.
여기에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의 고우영 추모전이 더해졌다. 미술관에서 만화가 회고전이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대체 한 작가의 옛날 고릿적 만화가 이렇게 리바이벌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9월12일까지 열리는 아르코미술관의 ‘고우영 만화-네버 엔딩 스토리’ 전시회는 고우영 만화가 가진 생명력과 힘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다.
전시회에는 고우영 만화의 원화, 등장인물 그림, 만화가 실렸던 신문, 유품, 영상자료, 서적 등 5천 점의 자료가 전시된다. 관객들이 직접 들춰볼 수 있도록 개가식으로 운영하는 게 특징. 전시공간은 2개 층으로 1개 층은 자료를 전시하고 다른 1개 층은 고우영 만화를 텍스트 삼아 재해석한 여러 장르의 미술 작품들을 선보인다. 만화가, 설치작가, 화가, 조각가, 영화감독 등 여러 장르 작가들이 참여해, 고우영이 고전을 자기식으로 해석했듯이 고우영 작품을 ‘지금 여기’에서 다시 각자 해석해낸다.
“고우영 작품들은 지금 봐도 역사를 보는 독특한 시각과 해석력이 뛰어납니다. 그뿐 아니라 일필휘지 스케치의 힘과 소리가 들릴 듯한 회화성, 칸과 칸을 연결하는 연출력, 압축과 늘임의 적절한 구사, 시대를 격한 유머스런 대비 등 모든 면에서 탁월합니다. 과연 30년 전 작품일까 싶을 정도예요.”
전시를 기획한 김형미 큐레이터의 말이다. 고우영 만화의 모든 것이 시대와 장르를 넘어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유효하다는 것이고 참여작가들 역시 그것에 공감한 이들이다. 작품들은 30년을 사이에 둔 선후배 사이, 만화와 다른 장르 사이에 벌어진 대화의 결과물이다.
만화가 고영일씨는 <화이팅 고우영>이란 만화작품에서 지금의 젊은 만화작가 고우영을 주인공으로 세워 만화가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김홍준 영화감독은 선배 영화감독이 만든 고우영의 <가루지기>를 재료로 <가루지기 리덕스>를 만들었다. 애니메이션 아티스트 피.에이.손은 고우영 만화 <일지매>의 칸과 칸을 그대로 찍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만화 속의 문자화한 소리를 음향화한 외에 다른 주요작품의 등장인물을 뒤섞어 유머를 더했다. 강경구는 <열국지>의 등장인물을 자신의 필체로 재현했다.
독자의 배꼽을 잡게 하는 고우영의 익살을 작품화한 것이 특히 눈에 띈다. 일종의 ‘고우영을 웃겨라’ 프로젝트. 주재환 작가의 설치작품은 고우영의 삼국지에 등장하는 명의 ‘화타’를 기리는 기념 공모전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화타를 모델로 한 작품은 3~5등에 불과하고 1, 2등은 화타가 아닌 조조가 모델이다. 1등은 ‘화타의 죽음을 슬퍼하는 조조’상이다. 자신을 치료하려는 화타가 자신을 죽이려는 것으로 오해하고 화타를 죽이는 원작의 조조와는 정반대다.
윤동천 작가는 고우영 만화가 시도했던 엉뚱한 이미지의 조합을 그대로 활용해 전혀 관계없을 듯한 이미지를 중첩하여 배꼽을 들썩인다. 예컨대 ‘촛불-소화기’.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항의하는 촛불시위와 경찰이 시위대에 소화기를 살포하는 요즘 장면을 바로 연상시키는데 ‘촛불을 끄려고 소화기를 뿌린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백골단 뒷모습- 여성의 엉덩이, 방패든 경찰-여성의 브래지어 식으로 병치한 것 역시 킬킬 웃음을 자아낸다.
이순종 작가는 이번 작품을 위해 처음으로 고우영 만화를 읽었다고 한다. 그는 다른 이들과 달리 남성을 상대로 한 고우영 만화에 비친 여성성을 읽어냈다. 유비를 ‘쪼다’로 그리는 한편 한신, 제갈량을 여성으로 표현한 것을 두고 고우영 속에 내재한 여성성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했다.
고우영 만화의 소통성을 미술관에서 재현하고자 하는 작가들의 의욕도 도드라지는 특징이다. 그런 만큼 고우영에 친숙한 나이 든 세대와 만화에 친숙한 젊은 세대 모두 즐길 수 있는 전시회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고우영 만화의 캐릭터들을 모은 아카이브 전시장.
<가루지기> 영화감독을 했던 고우영을 기리는 감독용 의자.
강경구 작가의 작품.
이순종 작가의 벽화.

고우영 만화의 캑릭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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