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6일 개봉
가장 현실적이며 비극적인 영웅
‘걸작’ 호평 받으며 미국서 흥행몰이 6일 국내에서 개봉하는 <다크 나이트>가 북미에서 개봉 10일 만에 3억달러가 넘는 흥행 신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미 개봉 전부터 ‘걸작’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던 <다크 나이트>는 슈퍼히어로에 열광하는 미국만이 아니라 기자시사회를 연 국내에서도 호평 일색이다. 과연 팀 버튼의 <배트맨>을 능가하는 걸작이 나올 수 있을까 의심했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는 팀 버튼과는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신화를 만들었다.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팀 버튼의 <배트맨>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새로운 걸작을 만들어낸 것이다. <다크 나이트>는 야심만만하게도, 낮 장면으로 시작한다. 게다가 첫 장면의 주인공은 배트맨이 아니라 조커다. 팀 버튼이 <배트맨2>에서 펭귄맨을 중심에 세운 적이 있긴 하지만, <다크 나이트>의 전략은 그것과 다르다. 슈퍼히어로의 신화를 뒤틀린 엽기 동화로 대체하는 전략을 썼던 <배트맨2>와 달리, <다크 나이트>는 코믹북의 이미지에 머물렀던 슈퍼히어로를 완벽하게 현실로 이끌어낸다. <다크 나이트>를 보고 있으면 조커이건, 배트맨이건 그들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럴 듯하다, 라는 느낌을 넘어서 거의 완벽한 리얼리티를 구현한다. 현실의 어디에선가 그들을 보았던 것 같은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사실 ‘배트맨’이란 캐릭터는 슈퍼히어로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였다. 배트맨이 처음 등장했던 1930년대 말은 미국의 갱단이 사회 곳곳으로 한창 세력을 넓혀가던 시점이었다. 일상에서 갱단의 폭력을 목도했던 시민들에게는 정말로 배트맨과 같은 ‘자경단’이 필요했다. 또한 배트맨은 외계에서 오거나 기이한 사고로 초인이 된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슈퍼히어로를 택한 존재다. 악당에게 부모를 잃고, 복수의 일념으로 자신을 단련하여 ‘초인’이 된 사나이. 공포의 존재인 ‘박쥐’를 자신의 상징으로 사용한, 선과 악의 경계에서 흔들리며 고뇌하는 슈퍼히어로. ‘보이 스카우트’의 정의를 구현하는 슈퍼맨과는 대조적으로, 배트맨은 악의 근원을 쫓아가며 때로 악에 물들기도 하는 ‘탐정’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초월적인 영웅이 아니라, 우리도 능히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은 슈퍼히어로가 바로 배트맨이었다. <다크 나이트>는 현실적이면서도 만화적인 캐릭터 배트맨을 필름 누아르와 갱스터의 공간으로 과감하게 밀어 넣는다. 초현실주의적인 판타지로 <배트맨>을 재구성했던 팀 버튼과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배트맨이라는 존재를 재해석한 것이다. 다만 <배트맨>과 <다크 나이트>의 원점에는 1986년에 발표된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스>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다크 나이트 리턴스>에서 배트맨은 권력의 일부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시민들을 위한 자경단이 된다. 배트맨은 진짜 정의를 지키기 위한 ‘범죄자’, 즉 진정한 다크 나이트가 되는 것이다. <다크 나이트 리턴스>와 <왓치맨> 등 미국 만화가 성인들의 오락이자 예술인 그래픽 노블로 성장하면서 성취했던 모든 것들은 이제 영화로 녹아들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악을 멸하고자 폭력이라는 위법을 택한 배트맨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정의를 위해 싸우면서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모순은, 지금 한국 사회에 현존하는 상황이다. 슈퍼히어로는 단지 가상의 존재가 아니다. 현대의 슈퍼히어로는 21세기 대중의 이상이며, 그들이 갈구하는 새로운 영웅 신화다. <다크 나이트>야말로 가장 완벽한 비극적인 영웅이고. 김봉석/영화평론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1편 <배트맨 비긴스>가 고담시의 억만장자 브루스 웨인(크리스천 베일)이 왜, 어떻게 배트맨이 되는지를 그렸다면, <다크 나이트>는 ‘밤의 기사’ 배트맨의 본격적인 활약상을 그린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배트맨의 활약이 커질수록 악의 세력도 더욱 커진다. 배트맨을 제거하기 위해 악당들이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악당들의 한가운데, 조커(히스 레저)가 있다. 보라색 양복에 짙은 화장을 한 조커는 악당들의 모임에 불현듯 출현해 “배트맨을 죽여주겠다”고 제안한다. 조커는 배트맨이 가면을 벗고 정체를 밝히지 않는 한 악행을 멈추지 않겠다며 점점 배트맨을 조여온다. 설상가상으로 시민들은 불법행위를 서슴지 않는 배트맨을 구속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다. 마침 고담시에 새로 부임한 패기만만한 검사 하비 덴트(아론 에크하트)는 범죄자 수백명을 한꺼번에 기소해 감옥에 처넣는다. 배트맨은 하비 덴트야말로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하비 덴트는 조커에 맞서다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고, 또다른 악당 ‘투페이스’로 변신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왜 ‘조커’ 역이 히스 레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되는지 알 수 있다. 히스 레저는 괴이한 표정과 몸짓으로 잔인한 살인광대를 사실적으로 표현해 냈다. 오프닝 장면 6분을 포함한 여섯 시퀀스를 아이맥스 카메라로 찍어 화면에서 튀어오르는 듯한 액션 장면을 즐길 수 있다. 6일 개봉. 이재성 기자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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