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은 공포영화 가뭄의 해다. 외화의 경우 양이 적었던 건 아니지만, 도무지 질이 따라주지 못했다. 한국영화의 경우 질은 고사하고, <고사-피의 중간고사> 단 한 편에 불과했다. 국적을 불문하고 올해 공포영화는 지루한 자기복제와 동어반복의 사막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
볼만한 공포영화가 실로 오랜만에 나왔다. 영국 출신의 공포소설 작가 클라이브 바커의 원작을 영화화한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은 탄탄한 이야기 전개를 바탕으로 관객들을 피칠갑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제목이 알려주듯, ‘한밤의 식육 지하철’에 관한 이야기다. 살인자가 쓰는 무기는 쇠망치다. 소 도살장에서 일하는 그는 전문가의 솜씨로 사람의 주검을 해체해서 어딘가로 배달한다. 살인에 대한 묘사는 각오하고 봐야 할 만큼 잔인하다.
사진작가 레온(브래들리 쿠퍼)은 친구의 소개로 유명 큐레이터인 수잔(브룩 쉴즈)을 만나 자신의 사진을 보여준다. 그러나 수잔은 숨겨진 진짜 도시의 모습을 찍어오라며 퇴짜를 놓는다. 한밤의 지하철 역에서, 불량배들이 한 여인을 괴롭히는 장면을 사진에 담은 레온은, 이튿날 그 여인이 지하철에 탔다가 실종됐다는 신문 뉴스를 읽는다. 사진 속의 단서를 추적하던 그는 존 갈리아노의 회색 정장과 알렉산더 매퀸의 가방을 든 무표정한 사내 마호가니(비니 존스)와 맞닥뜨리고, 그가 살인자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영화를 관통하는 색깔은 은빛이고, 소리는 금속성이다. 이는 지하철의 이미지인 동시에 비정한 밤의 도시를 상징한다. 일본 출신 감독 기타무라 류헤이와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제작자 톰 로젠버그는 원작 소설의 앙상한 뼈대에 서스펜스와 로맨스라는 살을 붙여 오싹하면서도 흥미진진한 공포물을 만들어냈다. 인물에 관한 묘사도 훨씬 풍성해졌다. <아이언맨>에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취재하다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당찬 기자 역을 했던 레슬리 빕이 레온의 애인으로 나온다. 21일 개봉.
이재성 기자, 사진 누리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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