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몽
새영화 ‘비몽’ 선보인 김기덕 감독
한여름 매미처럼 영화에 열중해 온 김기덕(48) 감독. 데뷔 12년 만에 15편을 찍어낸 그에게서 뭔가 근본적인 변화의 기운이 느껴졌다. 10월9일 개봉하는 신작 <비몽>의 시사회 뒤 만난 김 감독은 “많은 것들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인생무상을 깨달은 듯한 말투지만, 언뜻 불안한 기색이 스쳤다. 지친 것일까, 아니면 초월한 것일까. 통속의 뒷덜미에 비수를 꽂던 그의 영화들을 계속 볼 수 있을까. 안타까운 인터뷰는 1시간 넘게 이어졌다.
영화제? 상? 편견깨기? 이젠 많은 게 허무해진다
차기작? 혼자 술 먹고 쓴 글 모아 책이나 내볼까
-전작들과 비교해 <비몽>을 평가한다면?
“참, 시장 생각하지 않고, 남 생각하지 않고 갈 데까지 갔구나 싶다. 지금까지 주로 물리적 현상을 다뤄왔지만, 이번에는 잠과 꿈 이야기다.”
-관념적 주제는 처음인 것 같다.
“내겐 흥미로운 주제다. 잠은 본능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 수면 시간에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이는 현상.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앞으로 내 영화는 말이 안 되는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슬픈 꿈이란 뜻의 <비몽>은 꿈과 행동이 연결된 두 남녀 이야기. 진(오다기리 조)이 꿈 속 교통사고를 내면, 몽유병 환자 란(이나영)이 자다 일어나 교통사고를 내는 식이다. -김기덕 영화의 매력은 피와 뼈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부터 출발한다는 데 있었다. 본능과 욕구를 낯설게 보여줘 살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그런 작품 세계가 바뀐다는 말인가?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많은 감독들이 이 지점으로 왔다. 구로사와가 끝내 <꿈>을 찍은 것도 그렇고, 장선우 감독은 결국 영화 자체를 무의미하게 생각하게 된 것 아닌가. 혹시 모르지 이러다 또 가장 리얼리즘적인 영화를 만들지도.” -1년에 한 편씩 만드는 것은 영화제 출품을 염두에 둔 것인가? “영화제에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관객한테서 월급 받는 직장인이라고 생각한다. (나에 대해) 점점 더 객관적 상태로 가는 것 같다. 요즘 많은 것들이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상 욕심은?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상은 나보다 우리 사회에 필요했다. 상으로 편견이 깨지고, 새 질서가 생기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이제 그마저 허무해진다.” -스스로 올라갈 데까지 갔다고 생각하나?
“아직 반도 못 갔다. 끝까지 안 갔으므로 자포자기가 필요한 거다. 100m 달리기에 비유하면, 50m쯤 가다 트랙 밖으로 나가는데, 걸어가는 거다. 꼴등이든 일등이든 상관없다. 경쟁적 영화보다는 내 생각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100% 그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차기작은?
“오래가는 생각이 없다. 매일 밤 혼자 술을 마신다. 못 마신다고 생각했는데, 먹다보니 늘더라. 한 1년 됐다. 술 마시고 나서 에이4용지 한 장 정도 글을 쓴다. ‘술 에세이’라고 이름붙였는데, 내 유전자 깊숙한 곳의 고뇌 같은 것들을 쓴다. 나중에 책을 내보려 한다. 너무 파격적이라, 모험일 것 같지만.”
-김 감독 밑에서 조감독을 했던 장훈 감독의 <영화는 영화다>(각본은 김 감독이 썼다)가 개봉 2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후배 감독을 키우는 데 남다른 애정이 있는 것 같다.
“장 감독이 지난 1월 학원에 애들 가르치러 갔다. 투자가 안 됐기 때문이다. 안타까웠다. (조감독으로) 4년 동안 정말 성실하게 했는데. 왜 마지막에 이러나, 설득해서 다시 데려왔다. 결국 영화는 잘 됐다. 미약하지만 후원자가 될 수 있어 기쁘다. 나는 곧 사라질 사람이고, 그분들한테 용돈 받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차기작? 혼자 술 먹고 쓴 글 모아 책이나 내볼까
김기덕감독
슬픈 꿈이란 뜻의 <비몽>은 꿈과 행동이 연결된 두 남녀 이야기. 진(오다기리 조)이 꿈 속 교통사고를 내면, 몽유병 환자 란(이나영)이 자다 일어나 교통사고를 내는 식이다. -김기덕 영화의 매력은 피와 뼈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부터 출발한다는 데 있었다. 본능과 욕구를 낯설게 보여줘 살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그런 작품 세계가 바뀐다는 말인가?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많은 감독들이 이 지점으로 왔다. 구로사와가 끝내 <꿈>을 찍은 것도 그렇고, 장선우 감독은 결국 영화 자체를 무의미하게 생각하게 된 것 아닌가. 혹시 모르지 이러다 또 가장 리얼리즘적인 영화를 만들지도.” -1년에 한 편씩 만드는 것은 영화제 출품을 염두에 둔 것인가? “영화제에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관객한테서 월급 받는 직장인이라고 생각한다. (나에 대해) 점점 더 객관적 상태로 가는 것 같다. 요즘 많은 것들이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상 욕심은?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상은 나보다 우리 사회에 필요했다. 상으로 편견이 깨지고, 새 질서가 생기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이제 그마저 허무해진다.” -스스로 올라갈 데까지 갔다고 생각하나?
김기덕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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