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롯
영화를 보면서 내내 느낀 것은 구성은 사실 비교적 간단하다는 것이었다. 최근에 본 영화들은 꼭 해외 예술영화가 아니어도 나름의 복잡한 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7인의 사무라이’는 내용이 복잡하지 않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처음에는 압박감으로 다가왔던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완전히 무색해질 정도로 단순한 구성과 내용전개만으로 사람들을 몰입시키는 뛰어난 영화였다.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더 확신할 수 있다. 러닝타임은 3시간이나 됐지만 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무언가 꽉 짜여 있는 듯 밀도감이 그대로 묻어나는 수준 높은 영화였다.
전체적인 구조는 마치 서부영화처럼 도탄에 빠진 마을에 들어간 영웅이 그들을 구해내고 유유히 떠나는 구조다. 이러한 구조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많이 등장했던 구성이지만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은 역동적인 구성과 중간 중간에 끼어드는 유머, 가난한 농촌 사람들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여타 작품들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인다. 또한 스토리를 질질 끌지 않고 빠른 내용전개로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게 유지한다. 거기에 더해 50년대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효과음이나 배경음악도 극의 긴장감을 더해준다.
영화상의 플롯은 영화 초반 도적들이 마을을 공격하려다 미루던 시기에서 사무라이들이 마을의 평화를 이루고 떠나는 시점까지다. 그러나 인물들의 대화를 잘 살펴보면 영화의 스토리는 훨씬 넓어진다. 사무라이들은 크고 작은 전쟁과 전투를 이전에도 해왔었고 마을 주민들도 도적을 상대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스토리가 플롯보다 더 길게 하면서 감독이 의도했던 것은 사무라이나 주민들의 행동에 있어서 인과성을 주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큰 보상을 받을 수 없지만 전쟁에 참여하는 사무라이들은 그 이전부터 행해온 전쟁이기에 참여하는 것이다. 또한 전국이 혼란스럽고 농민들이 어려운 삶을 사는 것에 사무라이들은 약간의 책임의식 같은 것도 엿보인다. 그러한 앞선 스토리를 예상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돈을 받지 못해도 마을 주민을 위해서 싸워주는 것이 전혀 이상하게 해석되지 않는다. 마을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한번 당해본 것을 부각시키기 때문에 도적의 무서움을 리얼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도적이라도 한번도 겪어보지 않은 상황으로 제시한다면 관객들은 “왜 싸워보지도 않는 거지?”와 같은 의문을 던질 것이다. 이렇듯 감독은 섬세한 그물을 짜듯 단단한 짜임새를 펼쳐놓은 것이다.
인물
그래도 이 영화의 가장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캐릭터라고 본다. 그 부분이 아마 이후 수많은 영화들에 있어서도 가장 큰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한 두 인물에 중점을 두는 주인공식 영화는 아니다. 물론 대장격의 사무라이가 큰 비중을 차이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모두들 존재가치가 확실한 것이 특성이다. 우선 대장격 사무라이는 덕을 가지고 있다. 이는 마치 삼국지의 유비를 연상케 한다. 딱히 보상이 없어도 정중하게 건네는 그의 말 한마디에 흔쾌히 그 싸움에 동참하는 사무라이도 있었다. 또한 지략에도 능하여 소수로 다수를 상대하는 법, 인질이 잡혀 있을 때 대처하는 법 등 영리한 것도 특징이다. 게다가 강인한 카리스마로 다른 사무라이들에게나 마을 농민들에게나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한다. 어떤 사무라이는 아주 오래 전부터 심복 역할을 했었던 사람으로 보이는데 이 사무라이도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영화에 있어서 묵묵한 조력자의 캐릭터는 매우 매력적이다. 여기선 그렇게 매력적인 역할의 소유자는 아니었지만 대장 사무라이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최강의 검사도 등장한다. 이 사람은 말 수가 적다. 특별히 많은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는 경솔한 사람도 아니다. 묵묵히 맡은 바 임무를 다하고 그 능력이 출중하기에 대장 사무라이에게 가장 신임 받는 사람이기도 하다. 혼자서 적진에 뛰어 들어가 상대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조총수를 두 명이나 잡아오는 등 같은 편들조차 놀라게 만드는 극강의 실력을 자랑한다.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로 수많은 영화에서 비춰지는 말없는 공포감을 소유한 칼잡이, 총잡이 그 모두를 연상케 한다. 또 하나의 캐릭터는 그냥 말그대로 성격이 좋다. 서먹서먹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적절한 농담으로 웃음을 유발시키는 이 사무라이는 관객에게는 긴장의 피로를 풀어주고 극중에서는 7인의 사무라이들이 금방 융합될 수 있는 데에 그 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망나니 사무라이가 있다. 실제로는 사무라이 출신이 아닌 농민의 아들이다. 그러나 가족을 도적들에게 잃은 슬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모순된 캐릭터는 매우 매력적이다. 또 극중 비중도 상당히 높은 편인데 사무라이이면서 사무라이답지 못한 모습으로 여러 문제들을 일으킨다. 결국엔 사무라이답게 장렬히 전사하지만 그는 처음에는 어색한 사이였던 농민들과 사무라이 사이를 잘 연결해주는 역할도 담당했다. 감독은 극중 가장 모순된 캐릭터이면서 목소리가 큰 이 캐릭터를 통하여 가장 많은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가 칼을 잡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관객들은 이해한다. 마지막으로 또 한 사무라이는 나이가 어리다. 정확히 말하면 사무라이 지망생 정도가 어울릴 것이다. 그러나 그도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정의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은 아직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면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러한 순수성이 있기에 험하고 험한 사무라이 세계를 나쁘게만 볼 수 없도록 만드는 힘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또 이 영화의 유일한 로맨스인 마을 처녀와의 사랑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여타 사무라이에 비해 순수함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가능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또한 이 슬픈 전쟁을 지켜보고 또 살아남은 자로서 영화 이후 전개될 스토리에 있어서 많은 역할을 기대케 하는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인물이다. 시점 이 영화는 선과 악의 대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영화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초반에 마을을 공격할지 미룰지 고민하는 부분을 제외하고 도적들에게 시점이 넘어가는 일이 없다. 이 영화는 유독 클로즈업도 자주 쓰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변의 가까운 인물들로 하여금 사무라이와 농민들 사이에서만 시점이 넘나드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 각 인물들의 표정묘사가 디테일하게 이루어지는데 비장한 모습을 그리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 시점을 제한시킬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다양하게 공존한다. 때로는 객관적인 시점을 유지시키려 할 때도 있는데 가령 대장 사무라이가 머리를 깎는 모습에서는 농민들도 그것을 지켜보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이것은 아마도 농민들 역시 구경꾼으로서 앞으로 사무라이가 하게 될 행동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공간 이 영화는 초반부에 사무라이들이 오고 가는 도시도 있었지만 거의 그 원형의 조그마한 마을이 중요한 공간이다. 이곳은 단순한 영화 속 공간이 아니라 전투의 공간이자 꼭 이용해야할 지형의 공간이기도 하다. 사실 마을 농민을 제외한다면 절대적 숫자의 부족 속에서 대장 사무라이가 생각한 방법은 방어를 굳건히 하면서 단 한곳의 틈을 일부러 보여서 적을 유도하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해서 유도된 적을 소수만 들여보낸 후 기병인 그들에게 가장 적절한 공격법은 역시 다수의 창 공격이다. 이것은 롤플레잉 게임을 해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기병의 상극은 창병이란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러한 공격법으로 사무라이들은 도적들의 수를 상당히 줄여놓는다. 또한 이러한 과정으로 도적들을 하나둘 잡아나갈 때마다 농민들도 지치긴 하지만 사기가 계속해서 상승하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모든 일련의 것들이 진행되는 공간이 바로 마을이다. 또 마을 중에 다리를 건너기 전의 세집은 대장 사무라이에 의해서 과감히 포기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도적과 마을 주민들의 중간지대라고도 할 수 있다. 아쉽게도 이곳을 떠나려하지 않는 노인장의 고집이 다른 가족들까지 죽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러한 모순성으로 긴장감과 비장미를 더해주고 있어서 노인장의 집도 매우 중요한 공간이기도 한다. 특히 망나니 사무라이는 이곳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오버랩하기도 한다. 서사의 힘을 보여준 7인의 사무라이 이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세계를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수준 높은 흑백 작품이다.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던 농민과 영광스러운 전성기를 다 보낸 사무라이들은 이전만 해도 어울릴 수 없는 갈등 관계이었지만 구로사와의 휴머니즘으로 절묘하게 융화된다. 또한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 '전쟁에서 이긴 것은 사무라이가 아니라 농민이다'에서도 구로사와의 휴머니즘과 진정한 의로운 존재에 대한 대중들의 갈망을 암시한다. 악을 물리치고 정의를 실현하는 사무라이의 존재는 관객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과거 사무라이에 대한 짙은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개인 또는 집단 간의 갈등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구로사와 특유의 연출력이 돋보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7인의 사무라이’는 너무 비참한 통곡의 소리를 영화 초반부에 계속해서 나타날 정도로 도탄에 빠져 있는 마을 농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단적인 대사로 “하늘은 농부들이 굶주리기를 원한다”는 말을 할 정도로 그 시대는 심한 혼란의 시대였다. 혼란의 시기로 따지자면 아마도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영화의 제작시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구로자와 아키라는 이 영화의 7명의 사무라이와 같은 난세의 영웅을 갈망하거나 혹은 이러한 영웅들의 영웅담으로 대리만족을 주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어느 쪽이든 이 영화가 후에 많은 리메이크 내지는 오마쥬의 대상이 됐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의미로서 이 영화가 가지는 완성도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예전에 일본의 이와이 슈운지는 시나리오를 쓸 때 컴퓨터로 그 설계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구로자와 아키라는 그런 건 아니겠지만 어느 거 하나 쓸데없이 첨가된 인물이나 내용이 없다. 모두 하나하나 유의미한 것들이고 그 흐름의 전개도 유연했다. 이 감독이 보여준 서사적 힘은 정작 활자텍스트로도 구현하기 힘든 출중한 영화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 영화의 가장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캐릭터라고 본다. 그 부분이 아마 이후 수많은 영화들에 있어서도 가장 큰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한 두 인물에 중점을 두는 주인공식 영화는 아니다. 물론 대장격의 사무라이가 큰 비중을 차이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모두들 존재가치가 확실한 것이 특성이다. 우선 대장격 사무라이는 덕을 가지고 있다. 이는 마치 삼국지의 유비를 연상케 한다. 딱히 보상이 없어도 정중하게 건네는 그의 말 한마디에 흔쾌히 그 싸움에 동참하는 사무라이도 있었다. 또한 지략에도 능하여 소수로 다수를 상대하는 법, 인질이 잡혀 있을 때 대처하는 법 등 영리한 것도 특징이다. 게다가 강인한 카리스마로 다른 사무라이들에게나 마을 농민들에게나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한다. 어떤 사무라이는 아주 오래 전부터 심복 역할을 했었던 사람으로 보이는데 이 사무라이도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영화에 있어서 묵묵한 조력자의 캐릭터는 매우 매력적이다. 여기선 그렇게 매력적인 역할의 소유자는 아니었지만 대장 사무라이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최강의 검사도 등장한다. 이 사람은 말 수가 적다. 특별히 많은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는 경솔한 사람도 아니다. 묵묵히 맡은 바 임무를 다하고 그 능력이 출중하기에 대장 사무라이에게 가장 신임 받는 사람이기도 하다. 혼자서 적진에 뛰어 들어가 상대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조총수를 두 명이나 잡아오는 등 같은 편들조차 놀라게 만드는 극강의 실력을 자랑한다.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로 수많은 영화에서 비춰지는 말없는 공포감을 소유한 칼잡이, 총잡이 그 모두를 연상케 한다. 또 하나의 캐릭터는 그냥 말그대로 성격이 좋다. 서먹서먹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적절한 농담으로 웃음을 유발시키는 이 사무라이는 관객에게는 긴장의 피로를 풀어주고 극중에서는 7인의 사무라이들이 금방 융합될 수 있는 데에 그 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망나니 사무라이가 있다. 실제로는 사무라이 출신이 아닌 농민의 아들이다. 그러나 가족을 도적들에게 잃은 슬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모순된 캐릭터는 매우 매력적이다. 또 극중 비중도 상당히 높은 편인데 사무라이이면서 사무라이답지 못한 모습으로 여러 문제들을 일으킨다. 결국엔 사무라이답게 장렬히 전사하지만 그는 처음에는 어색한 사이였던 농민들과 사무라이 사이를 잘 연결해주는 역할도 담당했다. 감독은 극중 가장 모순된 캐릭터이면서 목소리가 큰 이 캐릭터를 통하여 가장 많은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가 칼을 잡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관객들은 이해한다. 마지막으로 또 한 사무라이는 나이가 어리다. 정확히 말하면 사무라이 지망생 정도가 어울릴 것이다. 그러나 그도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정의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은 아직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면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러한 순수성이 있기에 험하고 험한 사무라이 세계를 나쁘게만 볼 수 없도록 만드는 힘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또 이 영화의 유일한 로맨스인 마을 처녀와의 사랑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여타 사무라이에 비해 순수함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가능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또한 이 슬픈 전쟁을 지켜보고 또 살아남은 자로서 영화 이후 전개될 스토리에 있어서 많은 역할을 기대케 하는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인물이다. 시점 이 영화는 선과 악의 대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영화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초반에 마을을 공격할지 미룰지 고민하는 부분을 제외하고 도적들에게 시점이 넘어가는 일이 없다. 이 영화는 유독 클로즈업도 자주 쓰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변의 가까운 인물들로 하여금 사무라이와 농민들 사이에서만 시점이 넘나드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 각 인물들의 표정묘사가 디테일하게 이루어지는데 비장한 모습을 그리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 시점을 제한시킬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다양하게 공존한다. 때로는 객관적인 시점을 유지시키려 할 때도 있는데 가령 대장 사무라이가 머리를 깎는 모습에서는 농민들도 그것을 지켜보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이것은 아마도 농민들 역시 구경꾼으로서 앞으로 사무라이가 하게 될 행동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공간 이 영화는 초반부에 사무라이들이 오고 가는 도시도 있었지만 거의 그 원형의 조그마한 마을이 중요한 공간이다. 이곳은 단순한 영화 속 공간이 아니라 전투의 공간이자 꼭 이용해야할 지형의 공간이기도 하다. 사실 마을 농민을 제외한다면 절대적 숫자의 부족 속에서 대장 사무라이가 생각한 방법은 방어를 굳건히 하면서 단 한곳의 틈을 일부러 보여서 적을 유도하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해서 유도된 적을 소수만 들여보낸 후 기병인 그들에게 가장 적절한 공격법은 역시 다수의 창 공격이다. 이것은 롤플레잉 게임을 해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기병의 상극은 창병이란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러한 공격법으로 사무라이들은 도적들의 수를 상당히 줄여놓는다. 또한 이러한 과정으로 도적들을 하나둘 잡아나갈 때마다 농민들도 지치긴 하지만 사기가 계속해서 상승하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모든 일련의 것들이 진행되는 공간이 바로 마을이다. 또 마을 중에 다리를 건너기 전의 세집은 대장 사무라이에 의해서 과감히 포기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도적과 마을 주민들의 중간지대라고도 할 수 있다. 아쉽게도 이곳을 떠나려하지 않는 노인장의 고집이 다른 가족들까지 죽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러한 모순성으로 긴장감과 비장미를 더해주고 있어서 노인장의 집도 매우 중요한 공간이기도 한다. 특히 망나니 사무라이는 이곳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오버랩하기도 한다. 서사의 힘을 보여준 7인의 사무라이 이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세계를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수준 높은 흑백 작품이다.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던 농민과 영광스러운 전성기를 다 보낸 사무라이들은 이전만 해도 어울릴 수 없는 갈등 관계이었지만 구로사와의 휴머니즘으로 절묘하게 융화된다. 또한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 '전쟁에서 이긴 것은 사무라이가 아니라 농민이다'에서도 구로사와의 휴머니즘과 진정한 의로운 존재에 대한 대중들의 갈망을 암시한다. 악을 물리치고 정의를 실현하는 사무라이의 존재는 관객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과거 사무라이에 대한 짙은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개인 또는 집단 간의 갈등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구로사와 특유의 연출력이 돋보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7인의 사무라이’는 너무 비참한 통곡의 소리를 영화 초반부에 계속해서 나타날 정도로 도탄에 빠져 있는 마을 농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단적인 대사로 “하늘은 농부들이 굶주리기를 원한다”는 말을 할 정도로 그 시대는 심한 혼란의 시대였다. 혼란의 시기로 따지자면 아마도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영화의 제작시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구로자와 아키라는 이 영화의 7명의 사무라이와 같은 난세의 영웅을 갈망하거나 혹은 이러한 영웅들의 영웅담으로 대리만족을 주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어느 쪽이든 이 영화가 후에 많은 리메이크 내지는 오마쥬의 대상이 됐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의미로서 이 영화가 가지는 완성도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예전에 일본의 이와이 슈운지는 시나리오를 쓸 때 컴퓨터로 그 설계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구로자와 아키라는 그런 건 아니겠지만 어느 거 하나 쓸데없이 첨가된 인물이나 내용이 없다. 모두 하나하나 유의미한 것들이고 그 흐름의 전개도 유연했다. 이 감독이 보여준 서사적 힘은 정작 활자텍스트로도 구현하기 힘든 출중한 영화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