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필버그 제작 ‘이글아이’
스필버그 제작 ‘이글아이’
인류에 대한 기계 반란 ‘화두’…미국 향한 비판적 시선 보태
인류에 대한 기계 반란 ‘화두’…미국 향한 비판적 시선 보태
기계에 대한 인간의 ‘공포’는 할리우드가 사랑하는 주요 ‘모티브’ 가운데 하나다. 이제는 ‘걸작’ 반열에 오른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는 기계와의 전쟁에서 패한 인류의 음울한 미래를 그렸고, 제임스 캐머런은 <터미네이터> 연작에서 시간을 거꾸로 돌려서라도 기계와 맞서야 했던 인류의 절박함을 다뤘다. 인류에 대한 기계의 반란을 그린다는 점에서, 윌 스미스 주연의 2004년 작 <아이로봇>과 올여름 개봉한 애니메이션 <월E>,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신작 <이글 아이>의 ‘화두’는 일치하는 대목이 많다.
그렇지만 <이글 아이>는 전작들이 멈춰 선 지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뚝심’을 보여준다. 미국 시카고의 복사가게 점원으로 일하는 23살 청년 제리(샤이아 라보프)는 성공밖에 모르는 아버지와 불화를 일으키고 명문 스탠퍼드대학을 때려치운 ‘반항아’다. 시시껄렁한 농담과 도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의 계좌에 어느 날 의문의 75만달러가 입금된다. 그리고 전화 속에서 차가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30초 후 연방수사국(FBI)이 닥칠 테니, 도망칠 것.”
하늘 위에서 먹이를 노리는 듯한 ‘이글 아이’(독수리의 눈)는 교차로의 빨간 신호등, ‘맥도날 드’의 전자 광고판, 지하철 옆좌석 남자의 휴대전화, 그리고 공항 엑스레이 검색대의 화면에 이르기까지 우리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거의 모든 것들을 통제한다. ‘전능’하지만 ‘인자’하지는 않은 절대자의 지령에 쫓기는 제리 앞에 같은 운명의 ‘싱글맘’ 레이첼(미셸 모너핸)이 등장한다. 백수 청년과 이혼녀로 대표되는 두 비주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가며 파국의 위기에 놓인 미국을 가까스로 구해낸다. 인류와 ‘기계’ 또는 ‘인공지능’의 갈등을 다룬 할리우드의 전작들은 ‘파국의 원인이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에 애써 침묵해 왔다. 겨우 제시되는 답안들은 ‘인간의 이기심’ 또는 ‘인공지능의 결함’ 등이다. 모두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결국 누구의 책임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매트릭스>와 <터미네이터>는 관객들의 가슴을 짓누르는 ‘암담함’은 주지만,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 것들을 볼 때 느껴지는 ‘불편함’과 ‘역겨움’은 느끼게 하지 않는다.
이 모든 파국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이글 아이>는 <우주전쟁>과 <뮌헨>에서 보여준 스필버그의 성찰적 시선이 미국 내부로 향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징후’를 담고 있다. 전능자 ‘이글 아이’는 미국의 잘못된 판단을 시정하기 위해 미국을 더 큰 위험으로 몰아넣는 모순에 빠진다. 그것은 ‘미국식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인류를 더 큰 위험 속으로 빠뜨려 온 ‘전능자’ 미국에 대한 직설적인 은유다.
모든 갈등이 해소된 뒤 양심적인 미국의 국방장관 치클리스는 의회 청문회에서 “(이번 사건은) 자유 수호를 위해 우리가 취한 행동들이 반대의 결과를 몰고 올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고 증언한다. 그래서 <이글 아이>는 할리우드가, 그리고 스필버그가 대중성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만들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인 ‘반미영화’로도 읽힌다.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 D.J. 카루소 감독. 9일 개봉.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진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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