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용모와 착한 마음씀씀이, 산뜻한 매너의 소유자로 사회생활하면서 왕따같은 것은 절대 당할 일없는 친구와 ‘왕따와 찐따’ 혹은 ‘왕따와 왕따 애인’ 정도로 제목을 바꿔도 손색이 없을(?) <미쓰홍당무>를 봤다. 일상에서라면 통상 이해하기 어려웠을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지만 시종일관 깔깔 웃으며 영화를 봤고, 괴변이라면 괴변일 수도 있을 주인공의 항변엔 고개가 끄덕여졌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나는 웃겨서 배를 잡고 뒹굴며 영화를 보면서도, 영화 속 인물과 여자라는 성별만 제외하면 공통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친구가 쿡쿡쿡 웃음을 터트리는 것이 신기하고 궁금했다. 이번 주 웃음이 필요한 친구를 위해 고른 영화였고, 첫 장면부터 컬트삘이 퐉~ 풍겨서 ‘망했구나(?)’했던 참이었는데 말이다.
<미쓰홍당무>는 심각한 안면홍조증을 가지고 있는 왕따 여교사(공효진)가 주인공이다. 영화 소개에서 알려진 바와 같이 그런 공효진이 좋아하는 사람은 동료 유부남 교사이고, 그는 8살 연상의 부인과 결혼해 중학생 딸을 두고 있으며 공효진이 아닌 다른 비혼 여교사와 연애를 하고 있다. <미쓰홍당무>는 이런 상황에 처한 공효진이 사랑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공효진이 오매불망 사모하는 유부남의 딸이 아빠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연대기’다. 그래서 제목만 보면 미스 홍당무씨 한사람의 이야기 같이 보이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이 얘기는 홍당무씨와 홍당무씨 애인(☜사랑하는 친구)의 이야기이며, 좀더 확장해서 보면 ‘관계’을 둘러싼 온갖 여자 홍당무씨들의 이야기다.
이런 <미쓰홍당무>의 인물들은 공효진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생활방식에서 좀 벗어나있고 꼴(狀)마저 개성(?)이 독특해 왕따임이 도드라질뿐 기실 모두 왕따이고 외로운, 홍당무들이다. 공효진만이 아니라, 예쁘지만 마음이나 머리나 백치처럼 하얀 이유리 선생이나, 아이들이 집단적으로 갖는 취향에서 벗어나 있어 왕따로 생활하면서 부모가 이혼할까봐 고민하는 서종희나, 겉으로 보기엔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과 직업을 가졌지만 바람피는 남편을 둔 서종희의 모친이나, 사랑을 갈구하지만 사랑은 흡족하게 손에 쥐어지지 않고 마음을 나눌 친구는 마땅치 않으며 해결해야 할 문제는 머리를 누른다. 겉으로 얼굴이 벌개지느냐, 겉으로는 하얗게 유지되는 얼굴 아래로 마음을 붉히고 있느냐는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의 홍당무씨들은 한 남자를 둘러싸고 각자 대립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서있는데, 그러면서도 일상에서는 모두가 각자와 연결되어 있다. 공효진은 서종희와 동지(?)에서 시작해 친구로 엮이고 서종희는 제 어머니와 가족관계로 묶여있으며, 공효진은 이유리와 동료에서 동거인까지 관계를 확장해 끼어들고 서종희는 이유리를 선생에서 침입자(가정파괴자)로 방아하며 엉뚱한 관계를 이끌어 나간다. 서종희의 모친에겐 남편을 넘보는 방해꾼이 이유리였지만 나중엔 공효진으로 이관되고, 그것은 서종희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남자 하나를 둘러싸고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만, 남자를 중심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와 직접 마주보고 부딪히면서 서로 견제하고 관계 맺고 미워하고 이해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각자의 삶에서 각각 나름 홍당무씨였던 이들은 도리어 서로와의 관계 속에서 부대끼며 소통하고 외로움을 벗는다. 예뻐서 왕따였던 이유리에겐 공효진이 무작정 쳐들어온 침입자가 아니라 마음에 있는 얘기들을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친구고, 전교 왕따이며 부모의 부부관계 위기 속에 상처받는 서종희에게 공효진은 상처를 드러내 보이고 서로 공감하며 엉뚱한 행동을 같이 할 수 있는 단짝 친구다. 서종희의 모친에게도 공효진은 남편을 넘보는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남편과 아이와 직접적으로 소통하게 만드는 중요한 매개체다. 그리고 이것은 거꾸로 공효진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실연하고 우울했던 소극적인 이유리와 밤마다 위안(?)을 주고 대담한 모습으로 이끄는 것은 서종희와 공효진이고, 공효진고 서종희를 가장 서로의 얘기를 많이 주고받는 사이로 만들고 그들이 서로 외에 가장 많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관찰하는 대상도 이유리다. 이쯤 되면, 이 영화는 발칙 발랄하게 관객을 웃겨주는 동시에 근래 개봉했던 영화들 중「가족의 탄생」이후로 만난 최고의 여성영화라는 말을 붙이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다. 더구나 웃음을 위해 과장된 것으로 보이는 캐릭터나 사건들은, 그다지 허구이거나 과장되어 보이지도 않는다. 거기 등장하는 각종 홍당무씨들은 낯설지 않은 여자인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고, 내 주변에 널려있는 온갖 숙자씨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미쓰홍당무>가 영화가 재밌기만 해서 좋았던 것이 아니라, 기존의 남자감독들이 만들었던 작품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각종 홍당무氏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독특하면서도 섬세하고 적나라하게 펼쳐놓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홍당무氏와는 전혀 거리가 먼 친구가 영화상영 내내 시종일관 쿡쿡거리던 이유를 물어보니 표현이 좀 달랐을 뿐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래서 궤변을 늘어놓을지언정, 운동장 한구석에서 허리까지 묻힐 정도로 삽질을 해대고 있을지언정, 그 삽질만큼이나 황당한 짓을 일상 곳곳에서 행할지언정 <미쓰홍당무>의 미스 홍당무가 전하는 이야기들은 공감이 됐고, 그가 토로하는 애환은 그저 웃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짠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뿐이랴. 영화 종반부에 등장하는 그런 홍당무씨와 홍당무씨 애인 새끼 홍당무씨의 서로를 향한 깜직 발칙한 연대와 용감무쌍한 공연장면에서는 그저 장면의 기발함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이 학창시절 단짝 친구와 갖던 그 이유 필요 없음의 관계맺음이 기억나 박수를 쳐주고 싶을 만큼 이해되고 뭉클했다. 원래는 혼자 조용히 영화를 볼 계획이었던 토요일 아침이었는데, 잠시 보고 싶다는 친구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함께 영화를 보게 된 배경이 있었다. 그로인해 그 날 영화 관람 전 짧은 시간동안 이른 아침 한가로운 스타벅스에 앉아 ‘속상한’ 이야기들을 했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우리에게 주어진 길지 않은 시간동안 ‘한국사회에서 30대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입이 아프도록 떠들며 공감했는데, 영화 덕분에 우리들의 이야기는 적나라할지언정 속상해서 울컥했던 그늘을 벗어날 수 있었다. <미쓰홍당무>는 굳이 우리 나이대에만 공감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30대에 사회생활을 하며 각종 현실에 상처받고 흔들리는 우리들에게, 우리들이 각각 제 멋과 제 열등감을 가진 홍당무씨이지만 특정한 남자 같은 매개 따위 없이도 끈끈하게 연대하는 ‘홍당무씨와 홍당무씨 애인(들)’이란 다행을 돌아보게 해주고, 껍질을 박박 벗겨봐야 빨간 안면홍조, 우리들이 가진 홍당무 사인들은 지워지지 않겠지만 나름 이것도 나쁘진 않으며 나름 우리 잘난 맛에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느끼게 해준 <미쓰홍당무>는 우릴 영화 볼 때나, 영화가 끝나고 나서나 웃게 해준 착하고 밝은 영화였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남들보다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마음에 쿡 와닿는 말로 시작해서, “일등에 목을 메느니 목을 매겠다”는 극중 공효진의 좌우명까지 구구절절 맞는(?) 소리로 가득 차, 그런 뻔한(?) 얘기들로 웃음과 공감을 준 영화가 끝나고 간단히 점심을 먹고 우리는 각자 볼일을 보기 위해 헤어졌다. 친구는 밀린 업무를 정리하러 회사로, 나는 이제는 업무처럼 된 회사와의 일을 하러 도서관으로. 이른 아침 눈물 그렁그렁해서 날 찾아왔다가, 환하게 웃으며 따사로운 가을 햇살 아래로 버스정류장을 향해 총총한 뒷모습을 남기고 떠난 친구를 보내고. 온갖 홍당무씨들로 북적이는 강남대로를 천천히 걸으며 친구에게 문자를 쳤다. “넌 여전히 예쁜아이야!” 할 수만 있다면, 여러 사람들을 웃게 해준 영화 속 미스 홍당무에게도, 영화 <미쓰홍당무>에게도 말하고 싶다. “얼굴이 빨간 게 뭐 어때서 재밌기만 하구만”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각자의 삶에서 각각 나름 홍당무씨였던 이들은 도리어 서로와의 관계 속에서 부대끼며 소통하고 외로움을 벗는다. 예뻐서 왕따였던 이유리에겐 공효진이 무작정 쳐들어온 침입자가 아니라 마음에 있는 얘기들을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친구고, 전교 왕따이며 부모의 부부관계 위기 속에 상처받는 서종희에게 공효진은 상처를 드러내 보이고 서로 공감하며 엉뚱한 행동을 같이 할 수 있는 단짝 친구다. 서종희의 모친에게도 공효진은 남편을 넘보는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남편과 아이와 직접적으로 소통하게 만드는 중요한 매개체다. 그리고 이것은 거꾸로 공효진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실연하고 우울했던 소극적인 이유리와 밤마다 위안(?)을 주고 대담한 모습으로 이끄는 것은 서종희와 공효진이고, 공효진고 서종희를 가장 서로의 얘기를 많이 주고받는 사이로 만들고 그들이 서로 외에 가장 많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관찰하는 대상도 이유리다. 이쯤 되면, 이 영화는 발칙 발랄하게 관객을 웃겨주는 동시에 근래 개봉했던 영화들 중「가족의 탄생」이후로 만난 최고의 여성영화라는 말을 붙이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다. 더구나 웃음을 위해 과장된 것으로 보이는 캐릭터나 사건들은, 그다지 허구이거나 과장되어 보이지도 않는다. 거기 등장하는 각종 홍당무씨들은 낯설지 않은 여자인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고, 내 주변에 널려있는 온갖 숙자씨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미쓰홍당무>가 영화가 재밌기만 해서 좋았던 것이 아니라, 기존의 남자감독들이 만들었던 작품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각종 홍당무氏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독특하면서도 섬세하고 적나라하게 펼쳐놓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홍당무氏와는 전혀 거리가 먼 친구가 영화상영 내내 시종일관 쿡쿡거리던 이유를 물어보니 표현이 좀 달랐을 뿐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래서 궤변을 늘어놓을지언정, 운동장 한구석에서 허리까지 묻힐 정도로 삽질을 해대고 있을지언정, 그 삽질만큼이나 황당한 짓을 일상 곳곳에서 행할지언정 <미쓰홍당무>의 미스 홍당무가 전하는 이야기들은 공감이 됐고, 그가 토로하는 애환은 그저 웃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짠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뿐이랴. 영화 종반부에 등장하는 그런 홍당무씨와 홍당무씨 애인 새끼 홍당무씨의 서로를 향한 깜직 발칙한 연대와 용감무쌍한 공연장면에서는 그저 장면의 기발함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이 학창시절 단짝 친구와 갖던 그 이유 필요 없음의 관계맺음이 기억나 박수를 쳐주고 싶을 만큼 이해되고 뭉클했다. 원래는 혼자 조용히 영화를 볼 계획이었던 토요일 아침이었는데, 잠시 보고 싶다는 친구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함께 영화를 보게 된 배경이 있었다. 그로인해 그 날 영화 관람 전 짧은 시간동안 이른 아침 한가로운 스타벅스에 앉아 ‘속상한’ 이야기들을 했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우리에게 주어진 길지 않은 시간동안 ‘한국사회에서 30대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입이 아프도록 떠들며 공감했는데, 영화 덕분에 우리들의 이야기는 적나라할지언정 속상해서 울컥했던 그늘을 벗어날 수 있었다. <미쓰홍당무>는 굳이 우리 나이대에만 공감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30대에 사회생활을 하며 각종 현실에 상처받고 흔들리는 우리들에게, 우리들이 각각 제 멋과 제 열등감을 가진 홍당무씨이지만 특정한 남자 같은 매개 따위 없이도 끈끈하게 연대하는 ‘홍당무씨와 홍당무씨 애인(들)’이란 다행을 돌아보게 해주고, 껍질을 박박 벗겨봐야 빨간 안면홍조, 우리들이 가진 홍당무 사인들은 지워지지 않겠지만 나름 이것도 나쁘진 않으며 나름 우리 잘난 맛에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느끼게 해준 <미쓰홍당무>는 우릴 영화 볼 때나, 영화가 끝나고 나서나 웃게 해준 착하고 밝은 영화였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남들보다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마음에 쿡 와닿는 말로 시작해서, “일등에 목을 메느니 목을 매겠다”는 극중 공효진의 좌우명까지 구구절절 맞는(?) 소리로 가득 차, 그런 뻔한(?) 얘기들로 웃음과 공감을 준 영화가 끝나고 간단히 점심을 먹고 우리는 각자 볼일을 보기 위해 헤어졌다. 친구는 밀린 업무를 정리하러 회사로, 나는 이제는 업무처럼 된 회사와의 일을 하러 도서관으로. 이른 아침 눈물 그렁그렁해서 날 찾아왔다가, 환하게 웃으며 따사로운 가을 햇살 아래로 버스정류장을 향해 총총한 뒷모습을 남기고 떠난 친구를 보내고. 온갖 홍당무씨들로 북적이는 강남대로를 천천히 걸으며 친구에게 문자를 쳤다. “넌 여전히 예쁜아이야!” 할 수만 있다면, 여러 사람들을 웃게 해준 영화 속 미스 홍당무에게도, 영화 <미쓰홍당무>에게도 말하고 싶다. “얼굴이 빨간 게 뭐 어때서 재밌기만 하구만”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