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도서관에 오는 길에 동네 CGV에 들렸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나는 천녀유혼을 기대하게 하는 중국 환타지 영화「화피」가 보고 싶었고, 봉준호와 레오까락스가 함께 참여했다는 「도쿄」도 궁금했고, 블록버스터나 로맨틱코미디가 주류인 헐리웃영화들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착한영화 「언더더쎄임문」에도 관심이 갔다. 애석하게도 나는 그 중 한편의 영화도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하루에 몇번 상영하지 않아 시간이 맞지 않거나 아얘 상영하지 않는 까닭이었다. 대신 8개관으로 운영중인 극장의 무려 3개관에서「아내가결혼했다」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화가 났다. 멀티플랙스의 등장과 성업으로 극대화된 편리 대신 상실한 다양한 콘텐츠로의 접근기회의 문제가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젠 날이 갈수록 국내외 블록버스터들이 아닌 경우까지도 배급사의 힘과 이해관계에 따라 영화의 상영기회와 관객의 접근기회가 동시에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 중 하루였던 거다. 통상 이런 경우 극장까지 가느라고 들인 차비나 시간이 아까와서라도 대충 시간이 맞는 것 중 그나마 땡기는 것을 골라 보고오기 마련이었지만 오늘은 그냥 발길을 돌렸다. 시간이 맞는 것을 보려면「아내가결혼했다」를 봐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도서관으로 와서 책을 좀 읽다가 뉴스를 보려고 전산실에 왔는데, 「아내가결혼했다」에 대한 기사를 봤다. 포털에서 영화쪽 기사에 들어가니 "3주만에 38만을 동원하며 극장계에 단비를 뿌려줬다"는 「아내가결혼했다」의 관객 스코어 기사들이 주르륵 보였다. 이런 기사들을 보노라면, 사회면이나 정치면에서 대놓고 편향된 기사들이나 경제면에서 기업이 내놓은 보도자료를 거의 날로 먹은 꼴의 기사들을 보는 것 만큼이나 한숨이 나온다. 박스오피스의 스코어 보도하는 기자들은 주말 하루쯤 극장에 가서 분위기를 느껴보고 이런 말을 하는 건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국내 스크린 장악 1위인 CGV에서 통상 8개관에서 3개관 정도를 장악하면서 박스오피스 1위를 못한다면, 그건 말그대로 '성냥팔이 소녀의 재앙' 속편이다.
어째서 연예뉴스를 다루는 그 많은 매체와 기자들 중에 이런 속에서 주말 38만이 떳떳한 숫자인지에 대한 일침이나, 배급사나 극장이 1위 만들고싶은 영화를 강권당하는 관객의 기회상실에 대한 환기를 시키는 이를 찾기가 어려운 건지 모를 일이다.
울컥 짜증이 나는 김에 영화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다. 아니나 다를까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 공동제작에 CJ엔터테인먼트 이름이 떡하니 보인다. 물론 CJ 엔터테인먼트와 CGV는 몇년전 다른 두 개의 회사로 분리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각기 다른 계열사일뿐이다. 말그대로 그들은 형님 아우님하는 자매회사다 이 말이다. 제작에 투자했으니 배급수수료를 버는 배급은 자사에서 맡았을 것이고, 배급사는 당연히 자사의 손실방지와 이익극대화를 위해 와일드릴리즈를 하려 할텐데, 극장업을 하는 계열사를 끼고 있으니 그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영화 홈페이지를 굳이 확인 안해도 뻔히 짐작되는 배급사와 제작사를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기분이 더 씁쓸했다. 보지도 않은 영화(「아내가결혼했다」)에 대한 흥미와 호감이 도서관 전산실 바닥을 뚫고 지하 도서관식당쯤 닿은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아내가결혼했다」에서 주인공인 손예진이 나왔던「작업의정석」이 떠올랐다. 2005년 연말에 나는 오늘과 같은 비슷한 상황 아래「작업의정석」을 봤었다. 그 즈음「작업의정석」은 극장을 점령하다시피 했던 「태풍」과「킹콩」의 틈바구니에서 나쁘지 않은 기사평과 괜찮은 흥행성적을 올리고 있었다. 당시 친구와 나는 이미 두 블록버스터를 본 후 였는데 볼 영화가 마땅칠 않았고, 만나서 극장까지 갔는데 영화를 안보고 오기엔 날씨가 너무 추웠다. 그래서 어부지리로 우리의 간택을 받게된 영화가「작업의정석」이었다. 다시말해서, 그 때의 영화선택의 상황이 대작의 틈바구니 속에서 세상에 나온 영화들 중 유일하게 만만치않은 스크린수를 확보했던 영화가「작업의정석」이었다.
애석하게도 「작업의정석」은 당시 기자들의 호감어린 리뷰와 달리 그닥 주인공이나 내용이 신선하거나 배꼽을 잡고 웃을 정도로 재밋지 않았다. 제목이 「작업의정석」이었지만, 영화 어디에서도 '작업의 정석'은 발견하기다 어려웠다. 주인공들의 작업술은 무릎을 탁 치기엔 그닥 탁월하지 않았고, 고개가 끄덕여지기에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주인공들의 연애를 완성시켜주고 인기를 유지시켜주는 것은 기실 그들의 작업이 아니라 그들의 외모와 직업이었다. 차라리 제목을「연애의 진실」이라고 하는 편이 훨씬 공감갈 것 같았다. 매체는 손예진이 파격적인 변신을 했다고 하며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했다고 연일 칭송하며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하고 배급한 영화의 흥행에 다같이 박수부대로 원조했지만, 영화를 같이 본 진정 작업의 고수도 나도 매체가 말한 파격적인 변신이나 독특한 캐릭터는 영화에서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고보니,「작업의정석」은 인물이 관계속에 이루는 작업의 정석을 보여주진 못했어도 CJ엔터테인먼트가 기본 흥행 성적을 이루는 작업의 정석은 확실히 보여줬었다.
그런 까닭으로, CJ엔터테인먼트가 제작·배급하는 손예진이 여주인공을 맡은「아내가결혼했다」는 그닥 호감이 생기지 않는다. 어째 이런 기본적인 구성요건이 아니더라도 배급상황이나 미디어가 연일 영화 속 인물의 캐릭터가 독특하니 어쩌니 하면서 파격성을 외치는 모양새가「작업의정석」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보니, 영화가 그닥 알쌀하게 전복적인 메세지를 줄 것 같지도 않고 색다르지만 매력적인 인물을 보여줄 것 같지도 않다. 심지어는 「작업의정석」의 여자주인공이 연애의 고수 송일국 대신에 결혼하기 좋은 평범남 김주혁을 선택한 결혼버젼의 속편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작업의정석」은 형편없는 영화는 아니었고 그저 시간 때우기에는 무난한 정도의 때깔을 갖춘 영화였지만, 굳이 그 속편까지 가서 보고 싶지는 않은 나는 그리고 이런 제작-배급-상영의 횡포에 매우 빈정이 상해버린 나는 어쨎거나 그래서「아내가결혼했다」를 극장에서 보지 않기로 결정했다. 일반적으로 마음에 감흥이 없으면 본 영화도 그에 대해서는 글을 잘 쓰지 않을 뿐더러 보지않은 영화에 대해서는 아얘 발언을 삼가는 편이다. 그런데「아내가결혼했다」에 대한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이런 제작-배급-상영의 횡포가 벌어지는 경우가 꼭 이 영화나 CJ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면서도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일반 관객으로써의 권리를 찾고 싶다는 목마름 때문이고 그 목마름에 대해 작은 목소리로 나마 항변하고 싶기 때문이다. 개별 영화들이야 무슨 죄가 있겠는가마는, 날이 갈수록 자기들이 보여주고 싶은 영화, 자기들에게 돈벌이가 되는 영화, 자기들의 돈을 회수해야 하는 영화들을 들이미는 한국의 배급구조에 이제 너무 멀미가 나서 알면서도 협조, 모른척 방조는 더이상 못해먹겠다. 대중을 향해 필요할 때만 스크린쿼터 문제나 한국영화계 위기만 외치지 말고, 영화 제작을 둘러싼 유통구조나 당장의 이익이 아닌 영화산업의 지속적 질적향상을 위한 투자와 변화에도 좀 신경써야 할 때다. 오늘 배부름이, 몇몇 영화로 편중되는 이기적 투자이익 환수 방식이, 스크린쿼터나 당장의 영화시장 침체보다 더 심각한 내일의 위기가 될 수 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작업의정석」은 형편없는 영화는 아니었고 그저 시간 때우기에는 무난한 정도의 때깔을 갖춘 영화였지만, 굳이 그 속편까지 가서 보고 싶지는 않은 나는 그리고 이런 제작-배급-상영의 횡포에 매우 빈정이 상해버린 나는 어쨎거나 그래서「아내가결혼했다」를 극장에서 보지 않기로 결정했다. 일반적으로 마음에 감흥이 없으면 본 영화도 그에 대해서는 글을 잘 쓰지 않을 뿐더러 보지않은 영화에 대해서는 아얘 발언을 삼가는 편이다. 그런데「아내가결혼했다」에 대한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이런 제작-배급-상영의 횡포가 벌어지는 경우가 꼭 이 영화나 CJ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면서도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일반 관객으로써의 권리를 찾고 싶다는 목마름 때문이고 그 목마름에 대해 작은 목소리로 나마 항변하고 싶기 때문이다. 개별 영화들이야 무슨 죄가 있겠는가마는, 날이 갈수록 자기들이 보여주고 싶은 영화, 자기들에게 돈벌이가 되는 영화, 자기들의 돈을 회수해야 하는 영화들을 들이미는 한국의 배급구조에 이제 너무 멀미가 나서 알면서도 협조, 모른척 방조는 더이상 못해먹겠다. 대중을 향해 필요할 때만 스크린쿼터 문제나 한국영화계 위기만 외치지 말고, 영화 제작을 둘러싼 유통구조나 당장의 이익이 아닌 영화산업의 지속적 질적향상을 위한 투자와 변화에도 좀 신경써야 할 때다. 오늘 배부름이, 몇몇 영화로 편중되는 이기적 투자이익 환수 방식이, 스크린쿼터나 당장의 영화시장 침체보다 더 심각한 내일의 위기가 될 수 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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