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엉성한 시대 재현 관객은 운다

등록 2008-11-05 20:16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
1950년대 배경 ‘소년은 울지 않는다’
한국 영화에서 ‘시대극’은 대세가 된 지 오래다. 지난달 이후 개봉작만 꼽아도 1930년대 말 경성의 모습을 그럴듯하게 복원한 <모던보이>와 70년대 서울의 밤무대를 배경 삼은 <고고70>이 있었다. 오는 13일 조선 후기의 화가 신윤복을 주인공으로 한 <미인도>가 개봉되고, 12월께는 이정재, 김옥빈 주연의 <1724 기방 난동사건>도 관객을 찾는다.

시대극들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시대에 대한 성실한 ‘재현’이다.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가 그리는 시대는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 서울이다. ‘전쟁고아’ 종두(이완)와 태호(송창의)는 전쟁의 비참함 속에서 살아남은 ‘웃자란’ 아이들이다. 두 소년은 미군 밀수품을 훔쳐 내는 과정에서 세운 공으로 시장 내 폭력 조직 ‘만기파’의 눈에 띄고, 시장의 노점 자리 한 곳을 얻어낸다. 다혈질이지만 의리 있는 소년 종두와 또래보다 셈이 빠르고 명석한 태호. 둘은 시장통에서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치솟는 ‘인플레’ 현상에 주목하고, 금값보다 비싼 쌀을 사들여 큰돈을 벌어들이자는 계획을 세운다.

영화는 전쟁 직후 혼란 속에 던져진 소년들의 고뇌를 담아내려는 의도를 드러내지만, 몰입하기는 쉽지 않다. 일본 작가 기타가타 겐조의 원작 소설 <상흔>을 우리 역사적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시장’ 통은 종로인지, 동대문인지, 남대문인지 모호하다. 소년들을 후원하는 만기파의 2인자 명수(안길강)가 괴로워하는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디테일’의 실수도 많다. 1953년 서울 거리에 당대 미군들의 전투식량 ‘레이션’ 대신, 최신 식량인 ‘엠아르이’(MRE) 상자가 나돌아 다닌다. 소년들이 쌀을 긁어모았던 그해는 영화 속 설명과 달리 때아닌 풍년과 해외 원조물자의 범람으로 쌀값이 폭락했다. 그해 11월18일치 <조선일보>에는 ‘쌀값 폭락으로 궁지에 빠진 농민의 형편을 생각해서 적당한 시세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설이 실리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소년들은 쌀을 팔아치운 값으로 60여만환의 돈을 손에 넣는데, 53년 당시 쌀 한 석의 생산원가는 6640환이다. 소년들이 100석 가까운 쌀을 어떻게 모으고 날랐는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의 ‘디테일’이 만듦새를 판단하는 결정적 요소는 아니겠지만, 제작진의 성실함을 재는 척도일 수는 있다. 6일 개봉.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진 스튜디오2.0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