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블로그] ‘완벽한 아름다움’에 관하여

등록 2008-11-17 14:41

방탕한 삶을 살았지만 완벽한 뮤지컬을 꿈꾼 조 기디언
방탕한 삶을 살았지만 완벽한 뮤지컬을 꿈꾼 조 기디언
영화 <재즈는 나의 인생>과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 카페>로 본 ‘완벽한 아름다움’에 관하여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완벽함의 기준을 찾고 싶어 했다. 완벽한 모양, 완벽한 소리, 완벽한 음악, 완벽한 춤, 완벽한 사랑…. 아마 이 모든 것들을 대신할 수 있는 말이 바로 ‘완벽한 아름다움’일 텐데 문제는 이 기준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에 있다. 절대적 아름다움을 이루어내기 위해서 어떤 미술가들은 황금비율에 목숨을 거는가 하면 어떤 미술가들은 오히려 규칙을 깨는 데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아주 극적인 차이를 지니기도 한다.

‘사진을 통해서 추한 것을 찾으려는 사람은 없다. “정말 추하군! 사진으로 찍어놔야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설사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 말은 “나는 저 추한 것이……아름답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라는 수전 손택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전제한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진은 아름답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저마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진이 다른 걸까? 이 논지의 범위를 사진에만 한정시킬 것이 아니라 예술 전체로 확장시켜본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예술은 아름다운데 왜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잣대로 예술의 아름다움을 평가하느냐는 말이다.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야 수없이 많지만 이 글에서는 그 중 두 편을 가지고 이야기할까 한다. 바로 <재즈는 나의 인생(이하<재즈는>)>과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 카페(이하<부에노스>)>이다. 두 영화에서는 모두 완벽한 아름다움에 대해 언급하는데 그 기준이 상반된 것 같으면서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 주목할 만하다.

<재즈는>은 뮤지컬 안무연출가 ‘조 기디언’이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도 뮤지컬 안무만큼은 완벽하려고 심혈을 기울이는 와중에 병을 얻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이 영화에서 상당히 인상 깊은 장면은 조 기디언과 정체불명의 여자-아마도 천사일-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 글에서 다룰 부분은 그 장면 중에서도 완벽한 뮤지컬 안무를 짜기 위한 ‘조’의 고뇌가 느껴지는 대사다.


“장미는 완벽해. 신은 장미를 완벽하게 만들었어. 어떻게 한 거지?”

여기서 재밌는 건 신의 놀라운 능력을 경탄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정말로 어떻게 한 것인지 그 비결을 순수하고 강렬하게 궁금해 하는 조 기디언의 태도다. 실로 완벽주의자 조 기디언의 성격을 드러내주는 대사가 아닐 수 없다. 각설하고 이 말을 다시 풀어보면, 신이 창조한 자연이야말로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닌 것이고 자신이 만들고 있는 뮤지컬 안무는 도무지 완벽하지가 않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것은 ‘인위적인 것’이 항상 지닐 수밖에 없는 ‘인위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열등감이라고도 볼 수 있고, 절대자의 위치에 오를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사람의 이야기이기때문에 완벽하다는 탱고를 연주하는 반도네온 연주가들
사람의 이야기이기때문에 완벽하다는 탱고를 연주하는 반도네온 연주가들

한편 <부에노스>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탱고 카페에서 탱고를 연주하는 뮤지션들의 삶과 주변 풍경을 마치 편린들을 모아 나열하는 것처럼 속도감 있게 보여주면서도 깊이 있게 탱고를 다룬 기록영화다. <재즈는>의 조 기디언이 완벽한 뮤지컬 안무를 만들려 했다면 <부에노스>의 탱고 연주가들은 완벽한 탱고 연주를 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영화는 그 고뇌의 과정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한 탱고 연주가가 탱고를 정의하며 한 말이다.

“탱고는 사람들의 이야기야. 그래서 완벽하지.”

이 말에서 느껴지는 ‘완벽함’의 뉘앙스는 앞서 소개한 <재즈는>의 조 기디언이 장미를 만든 신에 대해 언급한 것과는 판이하다. 조 기디언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절대적 아름다움을 갈망하고 있는데 이 탱고 연주가는 도리어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완벽하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부정할 수는 없을 장미-혹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만남과 이별과 사랑과 다툼을 담은 탱고의 아름다움 중에서 무엇이 더 완벽한 아름다움이란 말인가? (물론 인간도 신이 만든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지금은 신과 인간을 병치하여 생각해보는 것이다. 바벨탑의 일화를 대표적으로 하여 인간이 신에게 도전했던 역사는 아주 오래되지 않았나.) 이 질문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만큼 어렵다. 흠 잡을 데 없는 자연의 절대적 아름다움이 완벽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불안하고 긴장감이 흐르는 인간의 삶을 완벽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지금까지 <재즈는>과 <부에노스> 이 두 영화가 완벽한 아름다움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설명했지만 앞에서도 잠깐 암시해두었지만 분명히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이 일치는 <재즈는>이 조 기디언의 문란하고 흠 많은 삶을 충실하게 담아냄으로써 조 기디언의 인생 역시 아름답다고 조명하고 있다는 해석으로 가능하다. 인간의 좌충우돌 인생이 장미만큼 아름답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빠르게 지나가고 마는 대사 한 마디를 가지고 이렇게 당치도 않은 아름다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조금 우스운 꼴일 수도 있겠다. <재즈는>이야 밥 포시가 극본도 쓰고 연출도 했으므로 대사 한 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지만, <부에노스>의 경우는 기록영화이기 때문에 사전 합의 없이 튀어나왔을 어느 연주가의 말 한마디에 너무 집착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인생의 많은 부분을 탱고 연주에 할애한 그 음악인의 우연한 한 마디야말로 섬광처럼 빛나는 ‘완벽한 아름다움’이 아닐는지.

‘완벽한 아름다움이 뭔가?’라는 질문 자체가 애시당초 이 아름다움도 완벽하고, 저 아름다움도 완벽하다는 설은 결론밖에 낼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의지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정말 완벽하게 아름답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