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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블로그] 영화 <오스트레일리아>

등록 2008-12-22 13:05

새로 나온 호주 영화,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를 보고왔다. 감독뿐만 아니라 남녀 주인공도 모두 호주인이다. - Nicole Kidman & Hugh Jackman.

니콜 키드먼은 여신같이 아름다운 배우이지만 최근에 2세를 출산해서인지 좀 초췌해 보인다. 이에 비하여 휴 잭맨은 참 수려하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주가 영어권 나라인지라 연기력만 바탕이 되면 곧바로 할리우드로 진출하는 연기자가 적지 않은데 이 영화를 통해서 그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한 기분이다.

여기서는 배우 얘기가 촛점이 아니라 <오스트랄리아>가 만들어진 계기가 자못 의미심장함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제작자의 의도를 모르는 사람은 이 영화가 지루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약 3시간 방영) 이것은 단순한 상업 영화의 차원을 넘어선 작품임을 감안해야 할 것 같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호주 원주민인 Aborigine에게 바치는 ‘헌화’(獻畵)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 시사해 놓은 바와 같이 ‘The stolen generation’ 이라고 명명되는, 초기 백인 이민자들의 호주 원주민에 대한 잔학한 학대를 반성하고 사죄하는 의미에서 제작되었다.


실제와 대비해 보면, 영화에서 휴미니티가 넘치는 백인 부부가 생존의 기로에 놓인 에보리진 소년을 보호하고 애정을 쏟는다는 전개 부분은 역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강제로 호주 땅을 제압한 유럽 이민자들이 이곳 원주민인 에버리진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해 그 부모들로부터 아이들을 강제로 유리시킨 역사적 사건을 매우 온건하게 표현한 셈이라고 보면 되겠다.

약 백여 년 전에 백인들은 에버리진 아이들을 강제 보호소나 백인 가정으로 입양시켜 그들의 조상이 누구인지, 그들의 고유한 말이 무엇인지, 자신들의 고향이 어디인지 모르게 정체성의 단절을 꾀하는 무자비한 정책을 폈다.

남의 땅을 강제로 빼앗은 처지이다 보니 차후에 이들이 자각할 지도 모르는 ‘주인의식’을 두려워한 조치였다. 이러한 정책마저도 나중에는 일관성이 없어짐으로써, 수용소에 그대로 방치되고 질병에 노출되며 성범죄의 수렁에 빠지게 함으로써 부끄러운 역사적 시행착오를 범하고 만 것이다. 이런 무방비 하에 자라난 에버리진 청소년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는 순수 에버리진도 아니요, 개화된 백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전락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호주 대륙 전체를 떠도는 외로운 신세가 되고 말았다. 술에 취하고 마약에 빠져서…

에버리진 수가 현격히 줄어들고 순수 에버리진 혈통이 말살될 위기에 처하자 정부 당국은 시급히 원주민 보호정책을 펼치고 나왔지만 이미 자립의지를 상실한 에버리진은 좀처럼 활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차피 백인의 울타리 안에서 권리 회복을 꾀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앞으로도 진정한 이 땅의 동반자로 서기는 힘들 것 같다.

영화는, 어떤 형식으로든 에보리진 아기들이 백인의 보호 하에 있었다는 점을 피력하고 그 Stolen Generation 이 마침내 본연의 혈통으로 돌아간다는 다분히 이상적인 결말을 도출해내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전혀 아니올시다!’ 이다. 이러한 결말을 끌어낸 것은 아마도 ‘그랬어야 했었다’ 또는 ‘그랬으면 좋았을 걸 ’하는 백인들의 뒤늦은 희망사항을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순전히 나의 주관적인 견해이지만 예술선이 가는(細) 민족이 대체적으로 양순한 성향을 띄고 있는 것 같다. 그 예로,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베트남 등지의 동양화를 봐도 서양화에 비하여 한결같이 그 선이 섬세하며 가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얘기를 하는 것은, 에보리진의 회화선도 가는데 이들의 성향도 양순하기 그지없기에 하는 말이다. 이들 동굴 벽화를 보면 상당히 독창적이긴 하지만 입체적이며 선이 굵은 서양 쪽보다는 단면적이면서도 선이 가는 동양 쪽에 훨씬 가깝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선이 굵은 서양인들의 지배 하에 살고 있다. 뛰어난 문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뛰어난 공격성에 눌려서. 문화의 우월성을 따지자면, 거의 모든 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문자도, 인쇄술도, 화약도, 종교도. 심지어 음식에 넣는 향신료까지도… 대부분이 아시아에서 발견되어 서양으로 전해졌지 않은가?

침략적인 성향이 강한 북부 노르만족이 유럽을 제압하더니 아메리카를 먹고 뚝 떨어진 호주까지 손아귀에 넣고 만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 그들이 오늘날 현대 세계의 당당한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가장 신사인체 하면서. 가장 잔인한 덕이었는데........

‘공격성이 강한 자가 패권을 쥔다?’

신의 논리로 보면 부당하기 그지없는 귀결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세상은 그리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아시안 보다도 더 양순했던 것 같은 에버리진도 싸움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4만년 이상이나 살아온 자기네 땅을 고스란히 내주고 사막 한 가운데로 쫓겨났다. 쫓겨 다니며 말살되고 희석되어 버리던 그들의 종족성이 이제는 그 ‘희소가치’에 의하여 멸종위기의 동물이 보호를 받듯 여러 복지정책에 둘러싸이고 있다.

강자들의 정책이란 언제나 ‘악어의 눈물’ 같은 알량한 Humanity가 있지 않던가? 이들의 호의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누가 알겠는가? 강하면 누르고 약하면 얼러주는 것이 백인들의 전형적인 행태이니… 이제 앞으로는 에버리진도 영어를 쓰고 도시로 나올 것이며 결국은 문명인화 되어 버릴 것이다. 영화 속의 귀엽고 또릿또릿한 에보리진 소년도 순수 에버리진 혈통은 아니다. 그래서 더 미려하게 생겼지만 원래의 투박하고 순박한 에보리진을 앞으로는 영원히 볼 수 없을 것 같은 아쉬움이 든다.

순해도 너무 순해서 안타까운 이 땅의 주인들은 지금 가해자 스스로의 양심에 의하여 그 권익을 회복해 가고 있는 중이며 이들에 대한 사과 무드는 정부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지나친 잔인성에 대한 자성의 울림에 의하여 아래에서부터 위를 향하여 번져간 것이다. 그러니까 최근 호주정부의 공식 사과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현 러드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공식적인 사과가 있었고 그 여파로 이 영화가 제작되었다. 이런 의도와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뉴호주인의 고양된 새조국 의식 덕분에 이 영화는 굳이 호주 출신 배우와 감독에 의한, 호주인을 위한, 호주의, 영상 작품으로 출산되었다. 할리우드 영화 같은 박진감은 없지만 광활한 호주 대륙이 볼만한 눈요기를 제공하고 있으며 지금부터 긴긴 역사를 써내려가고 싶어하는 호주인들이 그들의 원조로써 에버리진을 인정한, 나름 감회어린 작품이다.

영화 는 선조가 저질렀던 잘못에 대한 후손들의 뉘우침의 파일이며 아직도 개척할 여지가 무궁무진한 호주에 대한 Aussie들의 애정의 소산물이다.

사족으로 한마디, 고 에버리진 꼬마 녀석, 영어 참 잘 하두먼. 영어 안하는 조상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걔들이나 우리나 똑같은데 지난한 핍박의 역사가 이들을 주인으로 발 돋음 하기 유리한 여건으로 급반전 시켜 놓았고, 우리 양반님 나라에서 건너간 양반들과 안방 규수 그리고 그 도련님들은 현재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불이익과 수치와 분통 속에서 악전고투를 면치 못하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란 참, ㅎㅎ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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