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 영화사 집 대표와 박찬욱 감독
장르 자리잡고 시대정신 담아야 관객 움직여
배우들이 개런티 내리는 데 더 유연해졌으면
학교서도 버젓이 불법 다운로드…꼭 사라지길
배우들이 개런티 내리는 데 더 유연해졌으면
학교서도 버젓이 불법 다운로드…꼭 사라지길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영화는 돈을 벌어야 한다. “영화 상영은 이윤을 위해 시작되고 수행되는 단순하며 순수한 사업”이라고, 1915년 미국 대법원이 정의한 것은 상업영화 제작의 기본 성격을 정확히 지적한 것이다. 상업영화만이 아니다. 큰 영화든 작은 영화든, 예술영화든 독립영화든 마찬가지다. 돈을 벌어야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영화로 수지타산 맞추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게 한국영화의 현실이다. 1960년대 이후 30년만에 찾아왔던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는 이대로 끝나버리고 말 것인가. 한국영화는 어디로 가야할까? 박찬욱 감독과 이유진 ‘영화사 집’ 대표, 충무로를 대표하는 두 젊은 영화인에게 길을 물었다.
사회=새해 대담이니 만큼 먼저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할까요?
박찬욱(이하 박) =이 대표는 작년에 개봉한 영화 있었나요?
이유진(이하 이)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가 있었죠. 감독님은 제작자로 데뷔하셨잖아요.
박=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가 있었죠. 손익분기점을 조금 못 맞췄는데. 돈은 못 벌었지만, 팔자에 없는 제작자상도 받고, 각본상도 받았어요. 며칠 전에 이경미 감독한테서 문자가 왔는데, 들어간 돈에 견줘 번 돈을 따져보면 한국 영화 중에 7등 했다는 거에요. 지난 한 해 동안 한국 영화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보여주는 증거죠. 100편 넘게 개봉해서 10등 안에 들면 꽤 잘 한 건데도 손해가 났으니.
이=손해 안 보기 너무 힘든 상황이었요. <…앤티크>도 손익분기점이 150만명 정도인데 120만명 밖에 못했어요. 다행히 일본에 팔려서 개봉을 앞두고 있으니까, 기대는 하고 있어요.
박= <미쓰 홍당무>도 수출에 기대하고 있어요. 조금만 하면 본전이 될 텐데.
이=그나저나 수출도 한류 인기와 함께 떨어지고 있어 문제에요. 일본과 나머지 나라가 반반인데, 일본이 떨어지니까 수출 물량도 그렇고, 가격도 그렇고 말이 아니에요.
박=<쌍화점>은 잘 팔렸잖아요. 이=1억2천만엔이니까 15억원 쯤 되죠? 시사회 때 일본 팬들이 정말 놀랐다고 해요. 그쪽이 기본적으로 판타지 성격의 멜로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박=첸카이거나 장이모 등도 한국에서는 잘 안 되는데 일본에서는 잘 돼요. 이=색감 같은 게 예쁘다고 하더라구요. 조인성이라는 배우도 있고. 박=좋겠다. 부럽다. 이= <적벽대전>도 잘 됐잖아요. 한국에서는 안 됐는데, 중국이랑 일본에서는 잘 됐어요. 박=그러게. 영화가 힘드니까 해외에서라도 돌파구가 나와야 하는데. 그런데 중국은 배급이 힘들잖아요. 이=그래서 중국과 시작부터 같이 하는 프로젝트가 많아요. 중국 사람들 놀라운 게, 외국에서 자본을 끌어들일 줄 알아요. <와호장룡>도 미국 소니랑 같이 했고, <적벽대전> 제작자 테렌스 창도 거의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서 대규모 영화를 제작해요. 그런 면에서 감독님 <박쥐>가 유니버설에서 투자가 됐으니까 기대가 돼요. 한국 영화 가운데 처음이죠. 그런 게 쉽지 않아요. 시나리오만 보고 50% 들어온 거니까. 박=영어 영화가 아니라도 미국에서 와이드 릴리즈할 가능성이 있어요. ‘포커스 피처스’ 이름으로 배급하게 될 텐데, 그게 내 몇 가지 소원 가운데 하나였어요. 아주 잘 됐어요. 사회=한국 영화가 어려워진다는 얘기는 <괴물>이 1300만명 흥행 신기록을 작성하던 2006년부터 있었습니다. 2007년에도 위기에 관한 무수한 얘기가 나왔죠. 2008년은 2007년보다 더 어려웠던 것 아닌가요?
이=올해가 가장 어려운 해였던 것 같아요.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지만, 2006년 <그놈 목소리> 찍을 때만 해도 카메라가 없어서 배우 스케줄이 아니라 장비 스케줄에 맞췄어요. 그런 호황에서 불과 2년 만에 영화계가 거의 초토화하는 느낌인데, 하나의 이유라고 볼 순 없을 것 같고, 한국 영화의 산업화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봐요. 극장 말고는 다른 부가 시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투자자에게도 그렇고 너무 큰 압박인 것 같아요. 부분 투자자들은 거의 수익을 내지 못했어요. 이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니까 배급을 할 수 있는 대규모 투자자들만 남은 상태죠. 극장 관객 자체도 큰 규모로 증가하기보다는 줄어드는 추세고, 수출도 문제고, 시장 상황이 점점 나빠지는 게 정말 문제에요. 관객들도 예전에는 웬만하면 봐 주시다가, 요새는 웬만하면 잘 안 보게 된 것 같아요.
박=왜 안 보죠?
이=한국 영화의 부진과 미국 영화의 약진이 맞물려 있어요. 경쟁에서 밀리는 것 같아요. 인터넷의 발달로 입소문이 2주면 나거든요. 빠르면 개봉 주 토요일부터 관객이 감소해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박= <쌍화점> 내일 개봉이죠? 난리 났겠네.
이=일반 시사 많이 안 했는데 예매는 잘되고 있어요.
박=입소문은 아직 아니겠네요?
이=첫 주가 굉장히 중요해요. 작은 영화 <렛 미인> 같은 경우는 벌써 8만명 들었는데. 영화 커뮤니티가 영화를 소비하고 문화를 만들어내는 그런 현상이 시작됐어요. 결국 영화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죠.
사회=그건 영화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현상 아닌가요?
박=돈을 쏟아붓는 것보다 더 효과가 있다면 좋은 일이죠. 그렇다고 마케팅이 돈이 덜 드는 것은 아니니까. 스타가 없는 작은 영화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좋은 거죠.
이=작은 영화가 작게 개봉해도 오래갈 수 있으면 좋은데, 그게 잘 안 돼요.
박=반면에 큰 영화, 첫 주에 관객이 많이 들어야 하는 영화에 관객들이 냉정하게 반응한다면 굉장히 무서워지는 거에요.
사회=<달콤한 거짓말이> 스크린을 480개 잡았는데, 첫 주에 22만명밖에 안 봤어요. <과속스캔들>과 대비되죠. 결국 완성도가 중요하다는 거죠.
이=그치만 개봉은 운도 있는 것 같아요.
박=<쌍화점>의 대진운이 진짜 부러워요.
이=연말, 특히 크리스마스 주간에는 정말 많은 영화들이 있으니까 마케팅 비용을 적게 쓸 수도 없고, 비교우위에 못 들면 도태되죠. <달콤한 거짓말>이 경쟁 우위를 점하지 못했는데, 다른 시기에 잡았더라면 더 좋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사회=지난해 12월까지 개봉한 영화는 110편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연초만 해도 60~70편으로 예상했는데, 이른바 창고 영화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영화가 별로 없다고 하니까, 묵혀 놓았던 장롱 영화들이 풀리면서 한국영화에 대한 기대를 더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어요.
박=내 생각에는, 사람들이 한국영화에 대해 거부감 내지는 적개심까지도 느끼는 것 같아요. 스크린쿼터 싸움에서도 인상이 안 좋았고, 뭔가 거부감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영화들이 비슷비슷하고, 활력을 잃었구요. 어떤 의미에서든 새로운 작품을 찾는 조정기에 있는 것 같아요. 뭔가 재편기로 접어드는 게 아닌가. 올해 신인 작품이 많고. 배우도 하정우나 김윤석 같은 새로운 배우들이 떠오르고 있어요.
사회=한국영화 점유율이 떨어지는 게 스크린쿼터 축소 영향을 분명히 받고 있어요. 전국 기준으로 40% 아래로 떨어진 건 올해가 처음입니다.
박=구시대적인 방식으로 싸워서 그런가? 배부른 사람들이 자기 밥그릇 챙기려고 그런다, 그런 인상을 지우는 데 실패했어요.
이=가장 쉬운 방식이 배우들 내세우는 것인데 너무 쉬운 방식이었죠. 경제도 어려운데, 문화는 가장 첫 번째 희생되는 것이니까.
사회=볼 만한 한국영화에 대한 갈증이 여전히 있는 것 아닌가요. 잘만 만들면 시장은 있는데, 최근 한국영화가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 같아요.
박=맞는 말인데. 전엔 웬만하면 봐줬는데. 관객들 눈이 높아진 것 아닌가요.
사회=1천만 넘는 시절엔 지금보다 영화의 전반적인 질이 높았나요?
박=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이=싫증이 난 게 아닌가 싶네요.
사회=돌파구가 필요한 게 아닌가요. 30~40년대 할리우드 영화가 스튜디오 시스템을 기반으로 전성기를 맞았다가 1950년대 들어 텔레비전이 출현하고, 매카시즘이 횡행하고, 영화도 자기복제를 반복하면서 관객이 떨어져나갑니다. 할리우드가 시들해지니까 프랑스에서 누벨바그라는 새로운 영화운동이 나타나고, 일본 같은 변방에서 구로자와 아키라 같은 거장이 출연하거든요. 그러다가 텔레비전이 보여주지 못하는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데 성공하면서 영화의 중심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죠. 90년대 애국주의 앞세운 영화들이 많아지면서 또 시들하다가 최근 할리우드가 다시 살아나고 있구요. 한국영화도 신상옥, 유현목, 김기영 감독이 활동했던 60년대에 전성기를 한번 맞았다가 30년만인 90년대 후반에 한국 영화 르네상스가 오지 않습니까? 그 주역 중에 한 분인 박 감독님은 통시적으로 볼 때 한국 영화가 어떻게 변모해 갈 것으로 보십니까?
박=어떻게 갈 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가야 하는가는 알겠어요. 장르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봐요. <과속스캔들>도 그렇고, <추격자> <영화는 영화다>도 그렇고 장르적으로 자리를 잡아야 대중이 그에 따라 움직여요. 두 번째는 시대 정신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많이 나와야 해요. 할리우드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을 때, 그때 새로운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영화 역사를 바꾼 것처럼. 굉장히 큰 흥행작들은 장르적으로 잘 세공된 것일 수도 있지만, 좀 더 거시적인 안목에서 시대정신을 끌어가는 건 그런 영화들인 것 같아요.
사회=<공동경비구역 JSA>가 그랬죠.
박=그게 잘 맞아 떨어졌던 거죠. 가 지금 나왔다면 그렇게 큰 호응을 받지 못했을 거에요. <추격자>는 장르영화이긴 하지만 뭔지 몰라도 그 시대 공기가 느껴지는 영화였어요. 그런 영화가 필요해요.
사회=그런 영화가 왜 적을까요?
박=지금 기획하면 2년 후에나 영화로 나오잖아요. 그걸 좀 더 민첩하게 만들 수 있으면 대응할 수 있을 텐데. 더 기민하게 움직여야 해요.
사회=몸집을 더 줄여야 하나요?
박=지금은 모두 그렇게 하고 있죠. <…앤티크>는 얼마나 들었어요?
이=30억원. 생각해 보면, <쉬리> 30억짜리 한다고 할 때 사람들 다 미쳤다고 그랬어요. 그동안 물가나 제작비는 상승했지만, 관객이 그만큼 늘어난 건 아니거든요. 저예산 영화든 큰 예산의 영화든 여러 가지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져야 해요. 내적으로 콘텐츠에 집중하고, 불법 복제를 막기 위한 노력을 하고, 부가 판권을 창출하든 수출을 좀 더 하든 아니면 외국에서 투자를 받던가 해야죠. 그러려면 박 감독님 같은 분들이 좀 뚫어주셔야 해요. 아무튼 한국 영화의 시장성이 커져야 한다는 절실한 느낌이 있어요.
박=불법 다운로드에 대해 한 마디 해야겠어요. 우리 딸 학교 선생님들이 자율학습 시간에 가끔 불법 다운 받은 영화를 틀어준대요. 교사들이 그러면 정말 말 다 한 거죠.
이=불법에 대한 개념이 없는 거네요.
사회=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없는 거죠. 그렇다고 부가 판권 시장이 커질 가능성이 있나요?
박=새 매체들이 있지 않나요?
이=아이피티브이(IPTV)나 이런 거요. 양성화해서 분배할 수 있는 구조가 되면 하나의 방법일 수 있어요. 다만 만든 사람도 전혀 모르게 유통돼서는 안 돼요. <추격자>는 다운로드로 어느 정도 매출이 있었다는데, 대체할 부가판권 시장이 나와야해요. 불법 다운이 계속 이뤄지면 다 망하는 거니까.
박=이미 맛들인 사람들을 끊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그러려면 교육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교육 현장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니까 미래가 없는 거죠.
사회=지금 한국 영화산업이 대공황이라는 주장부터, 영화 관람료만 현실화시키면 풀릴 수 있는 일시적 경색 국면이라는 의견까지 다양합니다. 관람료 인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나는 올려야 한다고 봐요. 지금 얼마로 올린다는 거지?
사회=7천원에서 9천원으로요. 주말에는 1만원이 되겠죠.
이=그래도 다른 나라에 견줘 싼 편이에요. 제작자로서는 인건비, 기름값, 밥 값 다 오르고, 재료비도 오르는데 파는 값은 몇 년 째 계속 그대로니까.
사회=<영화는 영화다>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개런티를 투자 지분으로 전환해 제작비를 줄였잖아요. 제작비 거품을 줄이는 노력은 어떻게 진행 중인가요?
박=제작비는 굉장히 줄이고 있어요. 하지만 받을 돈을 안 받고 하는 것은 손쉬운 방편일 수는 있어도 대안은 아니에요. 그렇게 해서라도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에요. 정상적이지 않아요. 스태프들은 받아봐야 얼마 안되는 돈인데, 투자사는 그것만이 모델인 것처럼 강제하죠. 그건 아니죠. 제작비는 계속 줄여 오고 있고,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단계까지 검소하게 하고 있어요.
이=예전에는 진행성 경비나 그런 것들이 많았어요. 이제는 필요 없는 경비나 촬영 기간도 줄이고. 에이치디(HD) 얘기도 나오고 있고 많이 줄이려고 하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는 영화다>의 케이스가 전체로 확산될 수는 없어요. 제작비를 최소화했는데, 반응이 좋고 해서 주목을 받은 거죠. 모두에게 무조건 5억에 찍어라 할 순 없어요. 영화에 맞는 크기가 있는 거니까요.
사회=스타들 개런티는 어떻게 돼가고 있나요?
이=일본 배우들 개런티를 보고 놀라긴 했어요.
박=배우들이?
사회=일본은 배우 개런티에 연공 서열이 있더라구요. 오다기리 조가 세계적으로 아무리 유명하다고 해도 나이에 맞게 받는다고 해요.
이=상당히 적더라구요. 그래서 깜짝 놀랐는데, 배우 개런티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더라구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말할 순 없는데 좀 융통성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올라가기는 쉬워도 내려가기는 힘들잖아요. 그런 면에서 내려가는 데 좀 유연했으면 좋겠어요. 연기에서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나는 얼마 짜리라고 정해놓으면 좀 힘들어요.
박=규모에 따라 출연료를 줄이기도 하고, 작은 독립영화에는 얼마 안 받고 출연하기도 하고, 그런 융통성이 이미 도입됐어요. 이제는 그런 것들이 좀 더 가속화 돼야죠. 별로 믿을 수 없는 흥행성 때문에 배우만 보고 큰 돈을 쓸 순 없지.
이=이 배우 아니면 안 된다 하는 경우에는 달라는 대로 줄 수 밖에 없어요.
박=매니저들 구실이 참 중요해요. 특히 젊은 배우들은 뭔지 잘 모르니까 많이 흔들려요. 업계의 한 부문으로서 매니지먼트 회사들이 제 구실을 해주면 훨씬 좋아져요. 배우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배우가 속한 매니지먼트 회사의 문제죠.
사회=투자쪽 얘기를 해볼까요. 눈 먼 돈들이 달려들던 상황이 엊그제인데, 이제 투자가 안 돼서 영화를 못 찍고 있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박=유피(UP)라는 거 만들었잖아요. 어떻게 됐어요?
이=영화사 집(이유진), 보경사(심보경), 오퍼스픽쳐스(이태헌) 이렇게 세 프로듀서들이 연합한 건데요. <고고 70> <앤티크> <쌍화점> 등에 공동 투자했어요. 처음에는 이렇게 어려워질지 몰랐죠. 투자환경이 나빠진 것은 좀 다른 얘기가 있어요. 엠앤에이(M&A) 바람으로 영화계에 정말 많은 돈이 들어왔었어요. 굉장히 거품이 많았죠. 매니지먼트사, 영화사, 투자사들이 외형적으로 급속하게 덩치만 커진 상태에서 돈이 빠져나가고 나니까 문제가 생긴 거죠. 그때 시작하지 말아야 할 영화도 많이 들어갔고. 유피는 어려운 시기에 대한 준비일 수도 있어요. 투자를 받으려면 시나리오도 써야 하고 캐스팅도 해야 하는데 프로듀서들이 돈이 없으니까요. 프로듀서들이 모여 펀드를 만들면 투자를 처음 받게 될 때까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도 있고, 본 투자에 조금 들어갈 수도 있고, 그런 생각이었는데, 영화계가 급격히 나빠지면서 지금 어려워졌어요. 시작할 때는 가능했던 것들이 어려워진 게 많아요. 계획이 100이었다면 60정도를 가지고 가는 거니까.
박= <쌍화점> 한 방에 해결 되겠네.
이= <고고 70>이 안 됐고, <앤티크>도 선방했다고 하지만 조금 손해를 봤고, 그리고 <전우치>가 있죠. 그런데 <전우치>가 너무 커져서 큰 일이에요. 115억원, 120억원 정도 들 것 같아요. 최동훈 감독이 빨리 찍는 사람인데도, 찍을 분량이 너무 많고, 할리우드처럼 도심 세트를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민들에게 피해를 안 줘야 하는 것도 어렵고요. 밤에 빈 택시와 취객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촬영하기가 너무너무 어려워요. 그래도 전주는 많이 도와주는 편인데도 그래요. 이번에 가보니까 전주시에서 생수 300박스 가져다줬더라고요. 그런 지원 해주시면 도움이 되죠. 저희도 지어놓았던 세트를 보존해서 다시 쓰고 그러면 좋은데. 할 때마다 다시 만드니까. 나무 하나에 얼만데.
사회=보관하는 데 돈이 더 든다고 하더군요. 감독님은 미국에서 투자도 받고 하니까 투자 문제는 별로 체감을 못하시나요?
박= <미쓰 홍당무> 할 때 힘들었죠. 여기저기 다 딱지 맞고. 그때 체감했어요. 큰 영화도 아닌데, 저예산 영화도 쉽지는 않구나. 10억짜리 영화라고 해도 마케팅과 프린트 비용 합치면 20억 들어요. 투자사 입장에서도 망설이게 되죠. 시나리오도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소위 그린 라이트가 켜지기가 힘들더군요.
이=재미있는 건, <추격자>도 그렇고, <우생순>이나 <과속스캔들>도 그렇고, 잘 된 영화들 제작자 인터뷰를 보면 다들 (투자가) 힘들었다고 그래요. 누구나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꼭 흥행이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박=맞아요. 충무로에서 보면, 단번에 그린 라이트 켜지는 것은 막상 영화가 잘 안 돼요. 노란불, 빨간불이 오히려 크게 되요. 신선한 시도나 모험들이니까. <쉬리>는 모두 다 돌았다고 했으니까, 간이 부었구나 다 그랬지.
사=<미인도>나 <쌍화점> 보셨나요? 에로까지는 아니어도 한국영화가 다시 노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던데요.
이=기획해서 시나리오 쓰고 하는데 몇 년 걸리니까 2008년 말에 에로가 히트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못해요. 이런 거 하고 싶다, 해서 하게 되는 거죠. 그렇지만 아무래도 요즘처럼 힘들 때는 심각한 영화보다는 코미디나 야한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것 같기는 해요.
박=우연의 일치처럼 보이지만, 워낙 충무로에서는 우연의 일치가 많으니까 꼭 우연의 일치라고만 보기는 어려워요. 뭔가 관능적인 영화 보고 싶을 때 되지 않았어,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까 비슷한 영화가 나오는 측면도 있는 거죠.
이= <색계>가 부러웠던 것은 양조위 같은 스타가 그런 영화를 한다는 거였어요. 사실 남자배우들도 (벗는 연기) 잘 안 하려고 하거든요. <쌍화점>은 조인성 같은 스타급 배우가 아낌없이 연기한 것은 영화에 대한 열정과 감독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박=배우들이 보기에도 시나리오로 뒷받침이 돼야죠.
이=<박쥐>는 노출이 어느 정도입니까?
박=아휴 뭐 명함도 못 내밀지.
사회=항간에는 김옥빈씨가 아낌없이 벗는다는 소문도 있던데요.
박= (정사 장면이) 영화의 중심에 있는 것은 확실해요. 사제가 뱀파이어가 되면서 금지된 욕망에 눈을 뜨게 되니까. 욕망과 억제에 대한, 그래서 섹스가 매우 중요한 요소고.
사회=<박쥐>는 순제작비가 얼마나 됩니까?
박=60억원이요.
사회=일본의 예를 보면, 작은 영화는 여전히 잘 만들어요. 그런데 지난해 가을 개봉했던 <20세기 소년> 같은 영화를 보면 역시 대작은 못 만들더라구요. 한때는 구로자와 아키라 같은 엄청난 감독을 배출했던 일본 영화계가 이렇게 쪼그라들었어요. 이누도 잇신 감독도 인정하더라구요. 할리우드가 덩치로 밀어붙이니까 일본 영화가 할 수 있는 것을 찾다보니 이렇게 작아졌다고요. 한국 영화는 100억 정도 되면 블럭버스터인데, 이제 한 두 번 더 큰 영화가 망하면 대작 영화는 못만들게 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규모로 치면 큰 영화, 작은 영화 다 있어야 건강한 생태계가 유지될 것 같은데요.
박=일본 대작 영화가 있긴 있는데 잘 못만드는 거죠. <일본 침몰>이나 <망국의 이지스>처럼.
이=확실히 작은 영화가 강하긴 해요. <매직 아워> 같은 거. 그런 얘기가 돌고 돌아요. 97, 98년에 신인감독이 죽 쑨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는 신인감독들 다 망했어요. 그러니까 경험 있는 감독 찾아야 한다, 그랬어요. 그런데 2007년에는 신인 감독들이 선전했잖아요. 또 <아 유 레디> <성냥팔이 소녀> 다 망하니까 우리는 대작 못 만든다, 그랬구요. 그러다가 몇 편의 큰 영화들은 또 잘 됐어요.
박=대작 영화는 반드시 만들어져야 해요. <놈놈놈> 같은 영화를 보면서 느꼈지만, 큰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호쾌함이 있어요. 영화 보기의 즐거움인데 그런 영화가 위험하다고 안 만들다 보면, 점점 작아져요. 영화관에서 텔레비전으로, 컴퓨터로. 장대한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되죠.
사회=그런 면에서 보면, 올해가 좀 기대가 되긴 해요. <박쥐> <전우치> 등 기대작들이 많아서요.
이=최동훈 감독하고 대작 영화로는 막차라고 농담도 했어요. 손익분기점이 올라가니까 아주 부담스러워요. 수출 등을 통해서 손익분기점이 200만~300만명으로 내려가면 무지 행복할 것 같아요.
사회=올해 서울독립영화제는 유난히 좋은 작품이 많았어요. 주류 영화계가 투자가 안 되니까 그쪽으로 많이들 간 건지. 아무튼 희망적이었어요.
박=듣던 중 반가운 얘기네요. 디지털 장비들의 발달이 좋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대부분 1억~2억짜리 영화들일 거 아니에요?
이=홍상수 감독은 이제 그런 규모로만 찍는다면서요.
사회=고현정씨가 노개런티로 출연했대요. 홍 감독이 처음에 전화 걸 때 개런티 못준다고 얘기했대요. 그리고 고현정씨가 현장 스태프들 밥을 거의 매일 샀답니다. 워낙 어려운 시기라 발언하기 미묘한 시점이었을 텐데,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씩 하신다면.
박=잘 되는 영화들은 꾸준히 돼요. 대공황으로 느껴지지는 않아요. 내년 라인업도 괜찮아 보이고. 관객들이 한국 영화를 무조건 보는 시대를 지나, 탐색하듯이 좀 골라 보겠다는 조정 국면이죠. 어떤 것들을 원하는지, 충무로 사람들이 감을 잡으면 만날 일이 많아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영화계 어렵다 어렵다 할 때마다 선배님들이 “한국영화는 안 어려울 때가 없었다”고들 했어요. 2~3년 전에 상장 바람을 타고 호황이었는데, 그때와 비교해서 (불황이) 좀 세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내년에는 좋은 작품들이 있으니까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박=내가 영화 시작한 뒤로 늘 어려웠는데, 엠엔에이 바람불던 시절에 딱 한 번 ‘흥청망청’이라는 걸 느껴봤어요. 그때 혜택 본 사람들은 소수죠. 그때 나도 여러 제의 받았는데, 뭘 해볼 걸 그랬나, 그런 생각도 해보지만, 큰 돈을 쥐는 것보다 내 자유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어요. 우리는 늘 검소하게 살아왔고, 나로서는 큰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보다는 관객들이 새로운 영화를 요구하고 있으니까, 안이한 기획에서 벗어나야 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 잘 따져봐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이=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쩌면 그대로였는지도 모르겠어요.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까, 시장성이나 부가판권은 어떻게 창출할까, 계속 고민해야죠.
사=새해 덕담 한마디씩 해주시죠.
박= <쌍화점>이 올해 개봉이지만, 사실상 내년 영화니까 <쌍화점>이 새해를 잘 열어야죠.
이=모든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다 넘어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내년 <박쥐> 기대하고 있으니까,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고, 미국 시장에 미국 배급라인을 타고 본격적으로 배급되는 첫 영화니까 길을 잘 닦아주셔야죠.
박=학교에서 불법 다운로드가 사라지는 해가 됐으면 좋겠어요, 꼭 한마디만 한다면 그말을 하고 싶네요.
사회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정리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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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쌍화점>은 잘 팔렸잖아요. 이=1억2천만엔이니까 15억원 쯤 되죠? 시사회 때 일본 팬들이 정말 놀랐다고 해요. 그쪽이 기본적으로 판타지 성격의 멜로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박=첸카이거나 장이모 등도 한국에서는 잘 안 되는데 일본에서는 잘 돼요. 이=색감 같은 게 예쁘다고 하더라구요. 조인성이라는 배우도 있고. 박=좋겠다. 부럽다. 이= <적벽대전>도 잘 됐잖아요. 한국에서는 안 됐는데, 중국이랑 일본에서는 잘 됐어요. 박=그러게. 영화가 힘드니까 해외에서라도 돌파구가 나와야 하는데. 그런데 중국은 배급이 힘들잖아요. 이=그래서 중국과 시작부터 같이 하는 프로젝트가 많아요. 중국 사람들 놀라운 게, 외국에서 자본을 끌어들일 줄 알아요. <와호장룡>도 미국 소니랑 같이 했고, <적벽대전> 제작자 테렌스 창도 거의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서 대규모 영화를 제작해요. 그런 면에서 감독님 <박쥐>가 유니버설에서 투자가 됐으니까 기대가 돼요. 한국 영화 가운데 처음이죠. 그런 게 쉽지 않아요. 시나리오만 보고 50% 들어온 거니까. 박=영어 영화가 아니라도 미국에서 와이드 릴리즈할 가능성이 있어요. ‘포커스 피처스’ 이름으로 배급하게 될 텐데, 그게 내 몇 가지 소원 가운데 하나였어요. 아주 잘 됐어요. 사회=한국 영화가 어려워진다는 얘기는 <괴물>이 1300만명 흥행 신기록을 작성하던 2006년부터 있었습니다. 2007년에도 위기에 관한 무수한 얘기가 나왔죠. 2008년은 2007년보다 더 어려웠던 것 아닌가요?
이유진 7년간 광고회사에서 일하다 이재용 감독의 <정사>로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달콤한 인생> <너는 내 운명> <그놈 목소리> <행복> 등을 제작했다. 미국의 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가 2007년 발표한 ‘주목할 만한 10인의 프로듀서’에 아시아인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됐다.
박찬욱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의 대성공으로 스타 감독 자리에 올랐다. <올드보이>로 2004년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거머쥐며 세계적 명성을 갖게 됐다. <올드보이>와 함께 ‘복수 3부작’으로 불리는 <복수는 나의 것>(2002), <친절한 금자씨>(2005) 등이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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