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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소주로 빚은 영화에 세계가 취한다

등록 2009-01-28 18:52수정 2009-01-29 15:51

노영석(33)
노영석(33)
독립영화 ‘낮술’ 노영석 감독

제작비 1천만원…술값이 절반
국제영화제 호평…미국 개봉도
잇단 욕망과 오해의 에피소드
“술 취한 기분 세계적으로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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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독립영화 <낮술>의 순제작비는 1000만원이다. 1000만원으로 어떻게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노영석(33) 감독은 “숙박비 150만원, 휘발유값 150만원, 배우 출연료 및 스태프 교통비로 150만원 정도 들었다”며 “제작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술값이었다”고 말했다. 제작비가 모자라 나중에 주종을 소주로 제한하긴 했지만, “다른 건 몰라도 술은 무제한 제공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켰다. 술 마시는 장면이 많아 배우들은 물론 스태프들도 한두 잔씩 걸치고 촬영할 때가 많았다. 노 감독은 촬영 당시부터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술 먹고 찍은 영화”를 마케팅 포인트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술 먹고 찍은 영화 같지 않다. 시나리오는 한 달 만에 완성했고, 촬영은 14일 동안 11회차로 끝마쳤다. 국내외 관객들은 이 1000만원짜리 영화에 환호했다. 2008 전주영화제 ‘제이제이 스타상’과 ‘관객평론가상’을 필두로,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에서 ‘넷팩상’(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과 ‘특별언급’(아차상에 해당)을 받았다. 캐나다 토론토국제영화제와 그리스 테살로니키국제영화제에도 초청받았다.

노 감독은 “남녀 관계에 대한 관심이나 술 취한 기분은 세계적으로 통한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은 “소주는 몇 도짜리 술이냐” “방에 왜 침대가 없느냐” “강원도는 어떤 곳이냐” 등의 질문을 퍼부었다. 외국 관객들의 호응에 용기를 얻은 노 감독은 3~4월께 미국에서도 <낮술>을 개봉할 계획이다.

그에게 <낮술>은 실패와 시련의 산물이다.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실력이 안 돼” 서울대 미대에 진학했고, 음반을 만들었지만 자신이 들어도 “영 아닌 것 같아” 온라인으로만 발표했다. 영화를 하고 싶어 <남극일기> 연출부에 지원했다가 나이 많다고 퇴짜를 맞았고, 각종 시나리오 공모전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그러다 (공모전에) 떨어지더라도 스스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나리오를 준비해보자고 “독을 품고 써내려간” 게 <낮술>이다. 아니나 다를까, <낮술>도 공모전에서 떨어졌고, 어머니로부터 1000만원을 받아 촬영을 시작했다. 미술과 음악을 모두 해본 덕에 혼자 영화 만들기는 어렵지 않았다. 배우와 스태프들은 한겨레영화연출학교에서 만난 동기생들이 맡아줬다.

<낮술>은 욕망과 오해로 인해 벌어지는 우스꽝스런 에피소드의 연속이다. 술 마시다 함께 놀러가자고 의기투합했지만 버스터미널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주인공 혁진(송삼동)뿐이었고, 혼자 왔다고 주장하는 펜션 옆방 여자는 알고보니 ‘꽃뱀’이었다. 팬티만 입은 채 벌벌 떨다 몇 시간 만에 히치하이킹에 성공해 차에 올라탔지만 차 주인은 다른 속셈이 있었다. 노 감독은 “남자들은 여행할 때 옆자리에 예쁜 여자가 앉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늘 갖고 있다”며 “남자들의 그런 속내를 드러내, 바보스러움과 이중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독립영화는 무겁다는 인식이 많아서 가볍고 재밌는 독립영화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첫 반응은 “홍상수 같다”는 것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착한 홍상수’ 혹은 ‘가벼운 홍상수’라고 할 수 있다. 홍상수 감독은 남자의 욕망(의지)에 따라 플롯을 진행하고 끝을 보는 데 반해, 노영석은 착하고 거절 못하는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곤혹스런 상황을 보여준다. 욕망 혹은 의지의 강도가 홍상수보다 덜한 그의 영화는 우연에 기댄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저예산으로도 얼마든지 괜찮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젊은 감독에게는 비판보다는 격려가 어울릴 것 같다. “성장영화, 액션영화, 스릴러, 범죄물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는 노 감독은 “거품 없고 재밌는 영화를 꾸준히 만드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씨지브이 상암·강변, 시네코드 선재, 시너스 이채, 강남 시네시티 등에서 2월5일 개봉.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스틸 영화사 진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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