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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블로그 <체인질링>, 바꿔치기당한 어떤 것

등록 2009-02-09 14:25

바꿔치기당했다. 어렵게 얻어 10년을 품어 키운 소중한 아이를 바꿔치기당했다. 이런, 세상에…

그들은 어느 날 닮았으나 같지 않은(似而非) 아이를 데려오더니 시험 삼아 키워보라고 했다. 한 눈에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엄마는 순간적으로 혹시 자신이 착각한 걸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의심했다. 5개월 동안 힘들었고 혼란스러웠으며, 무엇보다 시끄러웠다. 힘 있는 자들은 윽박지르듯 회유하고, 우르르 몰려든 기자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엄마만 눈 질끈 감고 아이를 받아들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다. 모두가 만족할 것 같았다. 평온한 일상을 되찾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닌 줄 알면서도 아이를 끌어안았다. 시험 삼아…

아이는 가증스럽게 엄마라고 부르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가짜였다. 엄마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뒤바뀐 상황을 바로잡아야 했다. 하지만 키가 줄었는데도, 치과의사가 증언을 하고 학교 선생님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데도, 무를 수 없단다. 네가 데려가지 않았느냐. 신문에도 아이를 끌어안은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리지 않았느냐. 이제 와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거냐. 시끄럽게 문제를 일으키려는 거냐.

권력의 평화로운 부정부패를 위해 엄마는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아직 찾지 못한 진짜 아이가 어딘가에서 고통 받고 있는데, 정신병자의 손아귀에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이미 많은 아이가 희생됐고 그대로 방치하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이 뒤따를지 알 수 없는 지경인데, 비록 시험 삼아 아이를 데려간 잘못이 있다지만 지금이라도 진실을 밝혀서 문제를 해결하자고 외치는 목소리만 가두면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정체를 폭로하려는 자에게 겁을 주고 본때를 보여 사회 전반에 침묵의 덕목을 가르치면 세상이 순조롭고 평화로울 거라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가장 힘없고 연약한 존재들이 폭력에 노출된 채 비명 한 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사라져도, 마땅히 그들을 보호해야 할 권력은 자신들의 평화로운 부정부패를 위해 그저 말없이 순종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려들 뿐이다. 그것이 회유건, 협잡이건, 공권력에 의한 납치나 감금이건, 그로 인한 죽음이건, 언론장악과 여론호도건 상관없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조용히만 시키면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바꿔치기 당한 아이. 진실을 정신병자 취급하고, 다른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려는 권력. 남의 일이라는 이유로 무관심하며 생계를 핑계로 악에 부역하는 다수. 어떻게 해야 할까? 하루하루 고통 받는 내 아이. 이러다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소중한 내 아이.

희망은 가혹하다. 잃어버렸다고 포기하면 차라리 편할지도 모른다. 비록 고통의 짐을 평생 지고 살아야 한달지라도, 희생자에게 허락되는 연민과 위로, 울음 후에 뒤따르는 잠깐의 잠처럼 한숨과 비통을 쏟아낸 후에 빠져드는 약간의 휴식조차 거부해야 하는 희망은 가혹한 운명이다. 그러나 책임이라는 소포와 함께 배달된 아이를 소중히 품어 키웠던 엄마는, 단 하루의 오판으로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는, 희망을 포기할 수 없다. 힘겨운 싸움을 그만둘 수 없다. 아이는 아직 어딘가에 살아 있으니까.

이게 실화라는 사실은 놀랍고, 거기에 우리의 현재가 고스란히 투영된다는 사실은 참담하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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