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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블로그]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 기억이란 무얼까

등록 2009-02-18 14:05수정 2009-02-18 14:07

2008년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네요.
2008년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네요.
일찌기 아테네 사람들은 자기네 언어인 라틴어를 알지 못하는 이들을 야만인(바바리안)이라 불렀다 한다. 그러니 문명인로서 이들 야만인을 문화(文化)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였다. 문명인을 뜻하는 시빌리안은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 또는 시민을 뜻하기도 한다) 유사 이래 야만인들을 문화하는 방법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야만적인 폭력을 앞세웠다. 아울러 문명인들이 가장 먼저 식민(植民)한 것이 그들의 종교, 즉 문명화된 종교였다.

어찌보면 문자를 가르치는 문명(文明)과 으뜸의 가르침이라는 종교(宗敎)는 이처럼 잔혹한 야만의 행위를 일컫는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겠다. 그리하여 문명한 자의 의무와 책임감으로 야만인들에 대한 숱한 학살이 자행되곤 하였으며 그 내용은 쉽사리 묻혀지고 왜곡되고 부정된 채 문화(文化)와 교화(敎化)란 이름으로 버젓이 미화(美化)되었다.

애니메이션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은 1982년 레바논 지역을 침공한 이스라엘의 묵인 아래 기독교계 레바논 민병대들이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주거지인 사브라-샤틸라 지역에서 사흘동안 사람들을 도살한 만행에 대한 증언이며 그 ‘기억’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드물게도 피해자의 것이 아니라 당시 가해자의 한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 병사의 것이다.

영화 속 대사처럼 사람의 기억은 살아있는 것이어서 항상 변하는 것이며 그것은 왜곡되고 쉽게 조작되기도 한다. 때로 그것은 실제로 겪은 일조차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기도 하고 부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잠재적 의식이나 알지 못하는 형태로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기 마련이다.


영화의 연출가이기도 한 아리 폴만은 학살이 있은 지 20년이 지난 뒤 이런 자신의 부정되거나 잊혀진 기억을 찾아 당시 같이 참전한 친구들과 관련자를 찾아다니며 퍼즐 조각 맞추듯 기억을 복원해낸다. 그 과정이 이 영화의 내용이며 이를 애니메이션으로 찍었다. 첫 장면 사나운 개떼들이 도심을 휘저으며 달려가는 그림은 사실보다 더 인상적인데 영화는 전체적으로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영상과 몽환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오히려 사실적 내용이 다큐식 ‘기법’으로 보여짐으로써 주인공(또는 가해자)의 내면적 의식과 실제의 일들이 그 경계를 넘나들면서 더 큰 울림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이 모든 일들이 명백한 ‘사실’임을 생생한 학살의 현장을 실사(實寫)로 보여줌으로써 충격적으로 마무리 짓는다. 아마 오래도록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기억이란 무얼까. 우리 삶속에 차지하는 기억의 자리가 온전한 것이 아니라면 편리한 대로 또는 의식하지 못한 채로 왜곡되고 조작되고 부정되는 그 숱한 기억의 집합체로서의 삶이란 얼마큼 진실한 것이며 삶의 ‘진정성’은 어떻게 구해지고 ‘진실’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혹 아리 폴만은 진실이란 이처럼 자신의 의식을 헤집으며 부단히 기억의 조각을 짜맞추고 고통스럽게 깨어있는 일임을 말하려 한 것일까. 그것은 그냥 고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는 ‘인간다움’의 맛을 느끼고 한결 익고 자란 자신을 만나는 일임을.

그리하여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참으로 문화(文化)이고 문명(文明)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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