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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블로그] <워낭소리>가 내게 남긴 것

등록 2009-02-19 14:17

워낭소리(Old Partner, 2008)
다큐멘터리, 2009.01.15, 78분, 한국
감독: 이충렬
출연: 최원균(본인), 이삼순(본인), 최노인의 소(본인)

영화 <워낭소리>를 봤다. 재밌다는 오프라인, 온라인의 소문을 듣고 보기로 결심했다. 처음 <워낭소리>라는 영화를 접하게 된 개기는 영어회화 아침반 수업에서였다. 아침수업 때 지난 주말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같은 반 한 학생(사실 이분은 직장인이다.)이 이 영화를 봤다고 했다. 그땐 영어로 설명을 들어서 영화 제목이 (농부와 소)인줄 알고 있다. 나중에 잘못 이해한 영화제목 때문에 친구들에게 웃음거리가 됐지만, 어쨌든 영화 제목은 <워낭소리>이고 영어 제목은 나중에 찾아보니 였다.

영화는 늙은 농부와 늙은 소에 관한 이야기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영화라기보다는 TV다큐멘터리 느낌에 가깝다. 영화에는 멋지고, 잘난 배우들이 나오지 않는다. 힘든 인생을 살아왔고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는 늙은 노부부와 늙은 소에 관한 이야기이다. 처음 소의 나이를 듣고 놀랐다. 소가 40살이라는 것이다. 아니 소가 이렇게 오래 사나? 물론, 소가 들으면 섭섭할 수 있겠지만, 최근 미국산 쇠고기를 얘기하면 항상 뒤따르는 30개월 이상 30개월 미만을 언급하길래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상상하지 못했다. 영화를 보면 정말 그 소가 늙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젊은 소가 나오는데 확연히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80살 그 주변이다. 젊었을 때 남에 집에서 8년 동안 종살이를 했다고 한다. 그때 남보다 일찍 일어나서 일하는 습관이 길들여져서 지금은 나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지런 하다. 손가락으로 발목을 감쌀 수 있을 정도로 여위었고 지팡이가 없으면 올바로 걷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소와 함께 논으로 나간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소와 함께 농사를 짓는데 절대 농약이나 현대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순전히 할아버지의 고집 때문인데 농약은 소에게 먹일 음식인데 먹으면 건강이 나빠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 기기는 손으로 하는 것만큼 못 따라 온다는 할아버지 나름의 변명이 있다. 카메라 앵글은 할아버지가 소로 논을 갈아 엎으면 옆에 논에서는 다른 동네 주민이 기계로 순식간에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대조적으로 볼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추구하는 속도, 빠름, 경쟁은 할아버지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가장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장면은 소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소의 수명이 얼마남지 않았고 할아버지는 긴 세월을 같이 해온 소에게 고마워하며,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소가 할아버지 눈물에 감동해서 일까? 소의 큰 눈망울에서 눈물 줄기가 흘러내린다. 소도 운다. 어쩌면 당연한 사실인데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이다. 한 대상에 사랑을 주면 그게 사람이건 동물이건 식물이건 감동한다.

할아버지는 나이가 들어서 볼품이 없다. 옷은 다 낡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귀가 잘 안 들려 할머니 말을 무시하기 일쑤다. 허리도 곧게 펴지지 않고, 발음도 부정확하다. 매일 “골(머리)이야 골(머리)이야”하며 두통을 호소한다. 약해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난 할아버지에게서 누구보다 강한 힘을 발견했다. 8남매를 농사를 지어서 다 출가 시키고 이제는 할머니와 그리고 늙은 소와 함께 한 평생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농사를 지어가며 살아가는 모습은 이 세상 누구보다 강한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소가 매고 있는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영화 전반에 은은하게 들리는 종소리는 소의 이미지와 결함 되어 나중에는 종소리만 들어도 소가 떠오르게 되었다. 또, 영화는 자연을 잘 담아냈다. 한국의 4계절을 아름답게 담아냈고 우리가 흔히 놓치기 쉬운 부분에 카메라를 줌인 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사색에 잠길 수 있게 하였다.

영화를 벗어나 감독의 행보를 통해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본다.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는 안정됨을 추구한다. 그리고 남들을 의식해 남들 보다 조금 더 잘 살길 원한다. 새로운 도전은 무모한 짓이라며 정신 차리고 공부나 해라고 한다. 감독의 이력은 독특하다. 그는 방송사 PD였다. 안정보다는 그는 새로운 세계의 도전을 택했다. 젊은 나도 그런 도전정신, 실패를 값진 교훈으로 여길 줄 아는 겸허한 마음을 본받고자 한다.

평소에 말이 없던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막걸리와 함께 동네 남자 이웃주민들을 만나니 입이 열렸다.

“내가 그땐 장에 갔다가 소 달구지를 타고 오는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든기라. 그땐 피곤했었지. 근데 이 소가 집까지 나를 데리고 왔다아이가. 차는 어떻게 피하고 집은 어떻게 찾았는지 모르제. 용하제.”

“난 이 소 없으면 이미 죽었다. 이 소 죽으면 장사 지내줄끼라. 당연한거 아니가?”

미국산 쇠고기건, 한우건 따지기 이전에 이 영화는 내게 ‘생명’이라는 가치 그리고 인간과 동물의 끈끈한 유대를 생각해 보게 하는 그런 작품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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