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영화제 넷팩상 ‘어떤 개인 날’ 이숙경 감독
베를린영화제 넷팩상 ‘어떤 개인 날’ 이숙경 감독
“이 아줌마가 영화감독이 됐어?”
지난달, 이숙경(45) 감독이 독일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진흥기금상(넷팩상)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반응을 보였다. 여성주의 인터넷 사이트 ‘줌마네’ 대표로 더 많이 알려진 그가 40대 중반의 나이에 영화감독이 됐다는 사실은 충분히 놀랄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이 감독은 ‘밥 먹으면 배부른 것처럼’ 당연하다는 투였다.
“제가 글도 쓰고 방송도 하는 사람이잖아요.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거죠. 글보다는 영화가 감각적인 힘이 더 크잖아요. 하고 싶은 말을 더 잘하려고 영화를 택한 거죠.”
상을 받은 영화 <어떤 개인 날>은 그의 장편 데뷔작이고, 전문 제작사가 아닌 영화 학교(한국영화아카데미)가 투자·제작한 작품이다.
40대 중반에 영화감독 변신
“주변에 이혼한 이 있다면 이 영화 보여주세요 다음 작품? 소재 차고 넘쳐요”
■ 뜻밖의 반응 상을 받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 감독은 영화제 폐막식 하루 전날 독일을 떠났다. 트로피는 뒤늦게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오고 있다. 관객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많은 사람이 보러 왔고, 많은 질문을 퍼부었다. 그는 “신기했다. 대부분 독일인인 관객들은 영화의 상황과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느끼며 같이 웃었다”고 했다. 중년 주부의 이혼과 방황이라는 보편적 주제 때문일 것이다. 어떤 관객은 “외국 여성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일부러 기획한 것인가?”라고 질문하기도 했다. 그는 “동네 사람들과 소박하게 만든 영화다. 옆집 아줌마와 편하게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고 대답해 줬다.
■ 아버지와 딸 영화에는 이 감독 주변의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그의 시각장애인 아버지와 딸은 영화에서 주인공의 아버지와 딸로 출연했다. 그런데도 연기는 전문 배우 못지않다. 이 감독은 “연출의 힘”이라고 자신했다. “평소 말투나 행동의 특징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대사와 상황을 만들어주고 반복해서 찍다 보면 내가 생각했던 장면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이 ‘매직 아워’처럼 나타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영화는 다분히 자전적인 내용이다. 이 감독 역시 이혼했으며, 딸 하나를 혼자 키우고 있다. 그는 “내가 겪은 일과 겪지 않은 일이 반반쯤 섞여 있다”며 “내 경험은 (영화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고 말했다.
■ 마법 같은 밤 <어떤 개인 날>은 이혼 1년차 글쓰기 강사 보영(김보영)이 이혼의 상처에서 허우적대다 민요 강사 정남(지정남)을 만난 뒤 자신의 처지를 긍정하고 새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자극적 사건 대신 사실적인 에피소드와 자연스런 대사로 밀고 나가는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다.
보영은 남한강의 어느 연수원으로 강의를 하러 갔다가 정남과 같은 방을 쓰게 된다. 전라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는 정남은 보영을 달래고 으르며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요 언니, 안 그라면 병나요”라고 말한다. 이혼이란 경험을 공유한 두 여자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헤집기를 반복하다 각자 돌아누워 훌쩍인다. 밤이 지나고 하늘은 푸르게 갠다. 영화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이 ‘마법 같은 밤’ 장면은 대본대로 찍은 부분이 절반, 열쇳말만 주고 놀아보라고 한 부분이 절반가량이다. 술도 실제로 마셨다. 지정남씨는 “광주에서 지정남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 인사다. 마당극 배우이면서 광주 문화방송 <말바우아짐>의 진행자로 활약중인 그는 오디션의 맨 마지막 응시자였다.
■ 다음 영화는 ‘서포모어 증후군’. 두 번째 작품이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뜻의 조어다. 이 감독처럼 자전적 경험을 소재로 데뷔작을 만든 경우는 더 그렇다. 이 감독은 이런 걱정에 대해 당찮다는 듯 웃어넘겼다. “이야기는 차고 넘쳐요. 마을버스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대화도 가만히 들어보면 드라마가 얼마나 센데요. 아줌마, 아저씨들의 수다로만 이어지는 영화도 만들 수 있고, 성숙한 사람들의 멜로도 가능하죠. 나이 먹어서도 멋있는 연애 잘들 하더만요.”
<어떤 개인 날>의 순제작비는 3700만원. 앞으로도 가능하면 저예산 영화를 만들 생각이다. 2006년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간 것도 “적은 돈으로 좋은 영화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번에 제대로 연습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관객들에게 “아줌마들이 보러 왔으면 좋겠어요. 만약 주변에 이혼한 친구가 있다면, 혹은 이혼 안 했더라도 서로 괴롭히며 오래 살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영화 표 한 장 사주세요. 손잡고 같이 오시든가요. ‘세상에 힘든 게 나만이 아니구나’라고 위로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영화 속 주인공 같은 여자들 지금도 천지에 널렸던데요.” 12일 개봉.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주변에 이혼한 이 있다면 이 영화 보여주세요 다음 작품? 소재 차고 넘쳐요”
■ 뜻밖의 반응 상을 받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 감독은 영화제 폐막식 하루 전날 독일을 떠났다. 트로피는 뒤늦게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오고 있다. 관객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많은 사람이 보러 왔고, 많은 질문을 퍼부었다. 그는 “신기했다. 대부분 독일인인 관객들은 영화의 상황과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느끼며 같이 웃었다”고 했다. 중년 주부의 이혼과 방황이라는 보편적 주제 때문일 것이다. 어떤 관객은 “외국 여성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일부러 기획한 것인가?”라고 질문하기도 했다. 그는 “동네 사람들과 소박하게 만든 영화다. 옆집 아줌마와 편하게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고 대답해 줬다.
<어떤 개인 날>
<어떤 개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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