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슬럼독 밀리어네어
세계영화상 88개 휩쓴 ‘동력’
멋진 음악에 순애보 곁들여
뭄바이 현실 흥행 이용 씁쓸
세계영화상 88개 휩쓴 ‘동력’
멋진 음악에 순애보 곁들여
뭄바이 현실 흥행 이용 씁쓸
상복이 터졌다. 2009 골든글로브 4개 부문, 아카데미 8개 부문을 포함해 전 세계 영화상 88개를 쓸어 담았다. 시사회를 본 사람들은 “역시”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성공 요인 몇 가지가 눈에 보인다.
우선 ‘대박’ 꿈의 실현. 빈민가 출신 18살 고아가 거액의 상금이 걸린 텔레비전 퀴즈쇼에 참가해 우승한다. 학교 문턱도 밟아본 적 없는 그가 거머쥔 상금은 2천만루피, 무려 100만달러다. 별 볼일 없는 자의 성공에 환호성을 지르는 게 일반 대중의 심리다. 감독은 보통 사람들의 ‘대박 판타지’에 지능적으로 편승했다.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도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갔다. 소꿉친구 자말과 라띠까. 둘과 자말의 형 살림은 어느 날 앵벌이 조폭에 잡힌다. 조폭은 맹인들이 더 많은 돈을 구걸 받는다는 점을 알고, 잡아온 아이들의 눈을 파내려 한다. 이를 눈치채고 이들은 도망을 치지만, 라띠까는 중간에 잡히고 만다. 이후 자말은 라띠까를 다시 만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한다. 퀴즈쇼 출연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영화는 라띠까를 향한 자말의 순애보인 셈이다.
영화에 완벽하게 녹아들어가는 음악도 대단하다. 주제곡 ‘자이 호’(Jai Ho, 승리하다란 뜻)는 인도 전통 악기와 테크노 리듬을 통해 절로 빨려들어가는 마약 같은 매력을 선보인다. 또한 강렬한 테크노 비트와 힙합 그룹 미아(M.I.A)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어우러진 ‘오 사야’는 영화의 배경인 뭄바이를 더욱 사실적이면서 경쾌하게 살려낸다.
물론 이런 것들은 모두 감독의 역량이라고 볼 수 있다. <트레인스포팅> <비치> <선샤인> 등에서 독특하고 매력적인 연출력을 보여준 대니 보일 감독은 이번에 좀 더 공을 들였다. 주연 자말과 살림, 라띠까를 연기한 7살, 13살, 18살 세 그룹의 배우들은 더할 나위 없는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7살 아역 배우들은 슬럼가에서 직접 캐스팅했다고 한다. <풀몬티>의 작가 사이먼 뷰포이의 각본과 인도 유명 작곡가 에이아르 라흐만의 음악도 감독의 믿음을 바탕으로 실력을 200% 발휘했다. 또 실제로 2000년 인도에 첫방송되어 2007년까지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같은 텔레비전 퀴즈쇼의 진행방식과 무대 구성, 출제 문제들을 그대로 가져온 것은 영화의 리얼리티를 한껏 높였다.
하지만 씁쓸한 뒷맛을 피할 수 없다. 영화는 추리소설을 보듯 출제되는 문제에 정답의 실마리가 되는 주인공 자말의 특별한 에피소드들을 교차시켜 보여주며 재미를 최상으로 끌어올리지만, 자말의 삶은 그저 한 개인의 일이 아닌 인도 빈민층의 냉엄한 현실이다. 영화 배경인 뭄바이의 슬럼가 인구는 1190만명으로 도시 전체 인구의 49%에 이른다. 인도 전체론 3억여 명이 극빈층이다. 5살 미만 인도 아이의 45%가 영양실조라는 보고서도 있다. 감독은 빈민층에게 너무도 절박한 이런 현실을 잘 팔리는 영화를 만들기 위한 배경 그 이상으론 사용하지 않았다.
헤어지고 몇 년 뒤, 앵벌이 조폭 밑에서 돈 버는 무용수로 전락한 라띠까를 찾은 자말은 그의 손을 잡으며 도망가자고 말한다. 이에 라띠까가 “뭘 먹고 살지?”라고 묻자, 자말은 “사랑”이라고 짧게 답한다. 정말 인도인들이 ‘사랑’을 맘껏 먹고 살 수 있는 시절은 언제 올까? 19일 개봉.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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