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사동 스캔들〉 촬영현장
미술담당기자 ‘인사동 스캔들’을 말하다
영화 <인사동 스캔들>은 화랑계 큰손과 복제 기술자의 속고 속이는 이야기다. 주된 소재는 조선초 안견의 그림 <몽유도원도>와 짝을 이룬다는 가상의 그림 <벽안도>. 오락 영화를 두고 사실을 다투기는 적절치 않다. 하지만 ‘당신이 본 그림은 모두 가짜’라는 자극적 문구로 호객하는 데 이르면 “영환데 뭘 그래?” 하고 지나칠 일만은 아닌 듯하다.
우선 영화처럼 옛 그림을 복원하지는 않는다. 주인공 이강준(김래원)은 <벽안도>에 쓴 종이와 물감을 찾아내 훼손 부분을 복원한다. 하지만 복원이란 바탕 종이의 불순물을 제거해 그림 색을 선명히 하고 더는 훼손되지 않도록 새로 배접하는 것을 말한다. 떨어져 나간 부분을 비슷한 종이로 잇대어 흉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강준이 하듯 그림의 없어진 부분을 그럴 듯하게 그려넣거나 희미해진 그림에 덧칠하지는 않는다.
물에 고서를 담가 먹물을 빼고 다시 종이로 쓴다는 ‘세초’의 경우 실제로 깨끗한 물에 담그면 불순물을 제거할 수는 있다. 그늘에서 책 말리고 먼지를 떨어내는 ‘포쇄’와 같은 이치다. 하지만 아무리 오래 물에 담가두어도 먹물은 빠지지 않는다. 계속 두들겨 한지의 섬유질이 파괴되면 종이의 물성과 함께 먹물이 없어질 따름이다.
인사동 토박이 권마담(임하룡)은 ‘상박’을 일컬어 “한지 옛 그림을 얇게 벗겨내 똑같은 두 장의 그림으로 만들 수 있는 복제의 최고 경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할 경우 어느 것도 완전하지 않아 그림을 망칠 뿐이다. 비교적 두꺼운 중국산 종이를 두고 1960~70년대 사기꾼들이 장난삼아 해 본 것이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이강준이 희미한 붓자국에 뿌려 선명한 그림을 회복하는 ‘회음수’는 현실에 없다. 적외선 카메라로 맨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판독할 수 있지만, 분석 과정일 뿐 복원이 아니다. 회음수는 워낙 황당한 것이니 ‘팩션’ 범주로 이해하는 편이 나을 법하다. 또 미술품 복제 공장이나, 도난 미술품 사설 경매장도 재미를 의식한 허구적 설정에 가깝다.
영화적 상상력은 현실과 거리를 두게 마련이다. 하지만 옛 그림 기술에 얽힌 <인사동…>의 초보적 오류들은 제작진의 무지와 안일함에서 비롯됐다는 느낌이다. 박희곤 감독은 <몽유도원도> 원작이 국내에 없다는 것을 시나리오를 쓰면서 비로소 알았다고 했다. (도움말: 국립현대미술관 보존과학실 차병갑)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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