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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욕망의 늪에서 나를 구해줘

등록 2009-04-26 20:51

박찬욱표 치정 멜로 ‘박쥐’
박찬욱 감독은 ‘박쥐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동안의 다른 영화들을 만들어 온 건지도 모른다. 그가 10년 전부터 구상하고 준비해 온 ‘꿈의 프로젝트’에는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등 전작들에서 쌓아 온 장기가 집대성된 듯하다. 그렇게 완성돼 오는 30일 개봉을 앞둔 <박쥐>는 주제부터 스타일까지 박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영화세계가 축약된 작품이라 할 만하다. 그런 만큼 박 감독의 전작들보다도 더욱 호오가 극명하게 갈릴 가능성이 높다.

‘뱀파이어 치정 멜로’ 장르라는 홍보 문구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영화는 기존의 장르적 관습을 요리조리 꼬아서 전복한다. 뱀파이어 영화이자 멜로물·치정극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욕망·죄의식·구원의 문제를 껴안은 종교·철학적 사유와 블랙 코미디의 웃음까지 머금고 있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어떤 면을 중심에 놓을지는 순전히 보는 이에게 달려 있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가톨릭 신부 상현(송강호)은 죽어가는 환자들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자신의 무기력함에 괴로워하다 아프리카에서 진행중인 백신 개발 실험에 피실험자로 자원한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렀다가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받고 살아나지만, 뱀파이어가 되고 만다. 상현의 소생 소식이 알려지자 기적을 바라는 신자들이 주변에 몰려들기 시작하는데, 그중에는 상현의 어릴 적 친구 강우(신하균)도 있다. 상현은 강우의 집에 드나들다 그의 아내 태주(김옥빈)에게 끌리게 된다. 덜떨어진 남편과 모진 시어머니(김해숙) 밑에서 노예처럼 살아 온 태주 또한 상현에게 다가가고, 둘은 서로의 몸을 탐하는 사이가 된다. 급기야 둘이서 강우를 죽이기로 작당하면서 상황은 예기치 못한 핏빛 터널 속으로 폭주한다.

뱀파이어 된 신부 송강호
살인·간음…치명적 유혹 ‘허우적’

10년 전 구상 닦고 보듬어
주제·스타일 등 전작들 흔적 또렷

박쥐
박쥐


박 감독은 에밀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캥>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박쥐>의 스토리를 구상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 ‘복수 3부작’에서 줄곧 다뤄 온 ‘죄’와 ‘구원’이라는 주제 의식을 이어나간다. <박쥐>에서 욕망과 신념 사이의 갈등은 끝내 자기희생으로 종결되지만, 그게 진정한 구원으로 승화하는지는 모호하다. 다만 전작과 확연히 차별화되는, <박쥐>만의 또다른 주제인 ‘사랑’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써 완결성을 지닌다.

주제뿐 아니라 스타일 면에서도 전작들의 흔적이 낙관처럼 또렷하다. <올드보이>의 오대수, <친절한 금자씨>의 이금자가 <박쥐>의 두 주인공에게 투영되는가 하면, 특유의 미장센(화면의 전체적인 구성)이 어김없이 재현된다. 영화 후반부에서 온통 하얀색으로 칠한 집안에서의 상현과 태주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미장센과 캐릭터를 떠올리게도 한다. 전작들에서 호흡을 맞춘 스태프가 이번 영화에도 대부분 참여했다.

10년 전 <공동경비구역 JSA> 촬영 당시 박 감독으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은 송강호는 그동안 축적해 온 연기 경력을 응축해낸다. 갈등과 고뇌를 충분히 표출하는 정공법 대신 상징과 생략을 통해 안으로 침잠해가는 내면을 표현한다. 보는 이에 따라선 감정의 굴곡이 쉽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 김옥빈은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연기자’로서의 숨겨진 면모를 내보인다. 차기작을 눈여겨보게 한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올댓시네마 제공


또 ‘칸’ 진출…“상 받은 기분”

<박쥐>는 62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이와 관련해 박찬욱 감독은 지난 24일 <박쥐> 언론 시사회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올해는 훌륭한 감독들이 유난히 많아 경쟁 부문에 못 갈 수 있다는 각오를 하고 있었”으며 “경쟁 부문 진출만으로도 마치 상이라도 받은 기분이 들 만큼, 나란히 있는 이름들의 무게가 대단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틴 타란티노, 리안, 페드로 알모도바르, 제인 캠피언, 켄 로치, 라스 폰 트리에 등 세계적인 거장들과 황금종려상을 놓고 경쟁한다. 서정민 기자,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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