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기자 100여명 참석한 기자회견
"눈과 귀로 보고 듣고, 때로는 냄새까지도 맡아지고, 촉감도 느껴질 수 있는, 감각기관으로 하나하나 느껴지는 영화를 의도했습니다"
제62회 칸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초청된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가 15일 낮 12시30분(이하 현지시간) 영화제 메인상영관인 뤼미에르 대극장 기자회견장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했다.
14일 언론 시사회에 이어 열린 이날 기자회견에는 세계 각국 100여 명의 취재진이 참석해 '박쥐'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으며 질문 대부분은 '올드보이'로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던 박 감독에게 집중됐다.
주연배우 송강호, 김옥빈과 함께 등장한 박 감독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여유로운 자세 속에서도 진지하게 자신의 영화에 대해 설명했다.
먼저 박 감독은 관객에게 의도한 반응에 대한 질문에 "내 영화 중에 가장 감각적인 작품을 의도했다"며 "따라가는 데에 어려움을 겪어서 자꾸 생각해야 하는 일이 없도록 친절하게 스토리 진행을 했지만 눈과 귀로 보고 듣고, 때로는 냄새까지도 맡아질 수 있고 촉감도 느껴질 수 있는, 감각기관으로 하나하나 느껴지는 영화를 의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처음에 뱀파이어가 되는 순간을 묘사할 때 상현의 모든 감각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확장되는 장면이 등장한다"며 "보통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감각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홍수처럼 밀려드는 이 장면이야말로 관객이 느끼게 하고 싶었던 장면"이라고 말했다.
뱀파이어가 된 신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박쥐'와 관련해 종교적인 소재와 관련된 질문도 빠지지 않았다.
"'천사와 악마'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박쥐'는 신부가 흡혈귀면서 간통까지 하기 때문에 교황청에서 안 좋아할 것 같다"는 지적에 박 감독은 "톰 행크스 영화와 비교할 정도로 '박쥐'에 관심을 가져 주면 정말 고마운 일"이라고 웃으며 신부 캐릭터에 대해 설명했다.
"신부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은 신부를 조롱하려 한 게 아니라 가장 존경스러운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숭고한 휴머니스트를 생각하다 나온 직업이죠. 그런 숭고한 사람이 좋은 일을 하려다가 흡혈귀가 됐을 때, 남의 피를 먹어야만 살 수 있다는 조건에서 얼마나 고통이 클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진지하게 본 신자라면 제 선택을 존중해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2007년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밀양'에 이어 천주교 관련 소재의 한국 영화가 칸을 찾은 것에 대한 질문에는 "'밀양'과 '박쥐'는 한국에서 2년간 만들어진 여러 영화 중 두 편으로 모든 한국 영화가 그 문제에 관심을 둔 것은 아니다"라며 "한국인의 현대 생활에서 기독교와 천주교는 엄청난 영향력이 있어 현대 한국을 다루는 영화가 이 종교의 이슈를 다루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박 감독은 영감을 받은 에밀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캥'에 대해서는 "이 소설을 처음 읽는 순간 내가 뛰어난 소설가가 된다면 이런 소설을 썼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사실주의, 자연주의 문학이라고 분류되는 졸라의 작품을 뱀파이어 소재와 결합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뱀파이어 영화치고는 상당히 사실주의적인 작품이 나온 셈이고 졸라의 소설을 각색 작품치고는 가장 환상적인 영화가 나왔죠"
뱀파이어를 소재로 삼은 이유로는 "숭고한 인류애를 지닌 사람이 이런 조건에 놓였을 때의 고통은 현실의 냉정함을 말하는 것"이라며 "이 사람은 왜 자기가 뱀파이어가 됐는지 아무런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데 이는 우리가 어디서 왔고 왜 이 세상에 던져졌는지 알 수 없는 것과도 같다"고 말했다.
'박쥐'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뱀파이어는 송곳니가 없는 등 기존 뱀파이어와는 다른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영화 역사의 수많은 뱀파이어 영화에 하나를 보탤 때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다"며 "뭔가 새로운 면을 집어넣기보다는 그동안 이 장르의 역사와 전통에 있던 클리셰(상투적표현)를 빼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해 길게 자란 송곳니, 오래된 성, 긴 망토, 십자가, 마늘 등의 클리셰를 뺐다"고 밝혔다.
영화 속 정사 장면에 대해서는 "손가락과 발가락을 애무하는 것은 고독과 열정을 이겨낼 수 없어 밤에 혼자 나가 뛰느라 발바닥이 갈라진 여자에게 연민을 느끼는 남자주인공이 발에 키스를 해주는 것"이라며 "가톨릭에서 발을 씻겨주는 아름다운 행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박 감독과 송강호, 김옥빈, 신하균, 김해숙 등 '박쥐' 출연진은 기자회견에 이어 이날 오후 10시30분부터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리는 공식 스크리닝 행사에 참석한다.
강종훈 기자 double@yna.co.kr (칸<프랑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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