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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내 안에 죽어있던 세포가 살아났어”

등록 2009-05-27 22:07

영화 ‘마더’의 핵 김혜자
영화 ‘마더’의 핵 김혜자
영화 ‘마더’의 핵 김혜자
봉준호 감독은 어느 날 텔레비전 속 ‘국민 엄마’로부터 음습한 히스테리의 기운을 엿봤다. 그리곤 영화 하나를 구상했다. 그렇게 만든 <마더>를 두고 봉 감독은 “모든 힘을 실어 중심 핵을 향해 돌진하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마더>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이 된 그 ‘핵’은 다름 아닌 배우 김혜자다.

칸에서 50대로 봐줘
평생 소녀처럼 살래

지난 25일 만난 김혜자는 영락없는 ‘소녀’였다. “소녀 같다”는 말을 건네자 “고마워. 정말 그렇게 살다 죽고 싶어요”라며 해맑게 웃었다. “이런 얘기 해도 되나?” 하더니 “칸 영화제 갔을 때 외국 기자들이 50대 엄마로 봐줬다”며 발그레해진 볼에 웃음을 머금었다. 하얀 도화지 같은 소녀적 감성 덕에 광기 서린 엄마로 ‘빙의’하기가 더 쉬웠던 걸까?

“2004년 봉 감독이 영화 제안을 해왔어요. 이전에 들어온 영화들은 텔레비전 이미지랑 비슷해서 나도 흥미 없고 보는 사람도 흥미 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이번 엄마 역할은 전혀 지루하지 않겠더라고.”

그래서 수락한 영화는 4년이 지나서야 본궤도에 들어섰다. 그토록 기다리던 촬영에 막상 들어가니 걸리는 게 한둘이 아니었다. 첫 촬영 때부터 같은 장면을 18번이나 찍더니 클라이맥스 장면은 31번을 찍었다.

클라이맥스 31번 촬영
봉 감독 영리하고 정확해

“봉 감독 머릿속에 완벽한 그림이 짜여져 있는 게 느껴졌어요. 그렇다고 배우를 채근하는 건 아닌데, 내가 스스로 초조해지더라고. 봉 감독이 너무 영리하고 정확해서 꼴 보기 싫을 때도 있을 정도라니까.”(웃음)


영화 ‘마더’의 핵 김혜자
영화 ‘마더’의 핵 김혜자
영화 후반부 버스터미널 장면의 시나리오 지문에는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기가 차서 봉 감독에게 “그런 표정을 직접 지어보라”고 했더니 “그냥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면 돼요”라는 허무한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밤새 고민했다. “넘을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벽이 막아선 느낌”에 죽고만 싶었다. 아무리 연기해도 스스로 성에 안 찼다. 끝내 촬영을 중단하고 차 안에 들어앉아 펑펑 울었다. “너무 힘들어서 결국은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 자연스레 나오지 않았을까?” 이제서야 웃으며 말할 수 있다.

들판에서 홀로 춤추는 도입부 장면을 찍을 땐 무안한 나머지 스태프들에게 다함께 춤춰 달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큐 사인이 떨어지고 “흔들리는 갈대처럼 일렁이는 바람처럼 구름처럼 몸을 맡기는” 순간 다른 사람들이 뭘 하는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아지경’의 몸사위에 빠져든 것이다.

다음 작품 또 제안
마음이 고마울 따름이지

“이번 영화를 하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봉 감독이 내 안에 느른하게 죽어 있던 세포를 깨우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땅을 갈아엎어 비옥한 땅으로 일군 것 같다니까.”

그는 아직도 영화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했다. 아들을 연기한 원빈을 부를 때는 꼭 극중 이름인 ‘도준이’로 부른다. 칸에서 <마더>를 상영할 때도 “조마조마해서 도준이 손을 꽉 잡고” 봤다. 영화를 같이 찍기 전에는 알지도 못한 사이였다. 그저 “눈빛이 참 좋아 보여” 아들 역으로 추천했고, 봉 감독도 선뜻 받아들였다. “걔만 보면 지금도 가슴이 아파. 사랑하는 만큼 미울 때도 있는 아들 …. 영화를 처음 제안받은 이후 너무도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놨더니 더더욱 빠져나오기가 힘든 것 같아요.”

그는 이제 쉬고 싶다고 했다. 영화고 드라마고 아무런 계획이 없다. 마지막 행사인 지방 무대인사까지 마치고 나면 앓아누울 거라고 했다. “마지막 촬영을 마친 날 봉 감독이 콘티 한 장과 대사 한 줄 담긴 봉투를 건넸어요. 차기작 <설국열차> 이후 찍을 영화라는데, ‘감독 봉준호 주연 김혜자’ 이렇게 돼 있더라고. 그런데 앞으로 있을 일을 어찌 알겠어요? 그저 그 마음이 고마울 따름이지.”

글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ai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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