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나’의 침묵, 영화를 침묵시키다
김혜리의 카페 뤼미에르
김혜리의 카페 뤼미에르 /
군더더기 없는 말투, 바짝 깎은 머리칼, 몸에 적당히 달라붙는 수수한 옷, 틈을 보이지 않는 걸음걸이. 그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로나(아르타 도브로시)는 마음을 여미고 숨기는 데에 익숙한 여자다. 우리를 향해 아무것도 설명할 의사가 없는 여자. 그가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알바니아 출신 로나는 마약중독자 클로디와 위장결혼해 벨기에 국적을 얻는다. 클로디와 이혼하고 다른 불법이민자와 재혼하는 대가로 돈을 받아 자기 가게를 여는 것이 큰 꿈이다. 그런데 클로디가 로나에게 자꾸 손을 내민다. 중독의 수렁에서 건져 달라며 휘청휘청 기대온다. 불법이민 거래를 주선했던 갱은, 사업의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 된 클로디를 제거하려 든다. 로나는 읽어낼 수 없는 표정으로 망설인다. (물론 우리는 계약결혼이 영화에 등장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익히 알고 있다.) 로나의 비극은 ‘시차’에서 나온다. 사랑과 양심의 각성은 한발 늦게 찾아와 그의 심장을 할퀸다.
장피에르 다르덴, 뤼크 다르덴 형제는 고밀도의 리얼리즘 영화를 만들어왔다. <아들>은 아들을 살해한 소년과 만나는 아버지, <더 차일드>는 갓난아이를 유기하는 젊은 부부의 등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숨가쁜 카메라는 관객을 상황 속에 내던지고 인물과의 동일시를 부추겼다. <로나의 침묵>에서도 카메라는 자연스럽게 인물을 좇지만, 캐릭터의 전모는 안개에 뒤덮인다. 그래서 관객의 촉각을 더욱 곤두세운다. 우리는 붕괴의 순간이 올 때까지 로나의 얼굴에서 동요를 읽어내기는 어렵다. 그리고 뒤늦게 깨닫는다. “난 상관없어”라는 그의 대꾸가 연민을, “네가 죽게 놓아둘 수도 있어”라는 엄포가 결코 그럴 수 없음을 표현하는 말이었음을. 장피에르 다르덴, 뤼크 다르덴 형제 감독은 로나의 침묵을 존중한 나머지 영화마저 침묵시킨다. <로나의 침묵>의 시나리오에는 서사를 뒤흔드는 육중하고 결정적인 장면들이 번번이 지워져 있다. 영화는 불길한 징조가 떠오르고 한 생명이 사라지고 반전이 찾아오는 장면들을 성큼성큼 뛰어넘는다. ‘점프-컷’이 아닌 ‘점프-신’을 맞닥뜨릴 때마다 관객의 심장은 허방을 디딘 듯 철렁거린다.
대개 영화는 현실에서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무료한 시간을 덜어낸 판본이다. <로나의 침묵>의 미학적 전략은 반대다. 다르덴 형제는, 현실의 삶에서 타인의 결단은 결정적 모멘트를 감춘 채 거의 언제나 갑작스럽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로나의 침묵>은 묵음과 암전의 영화다. 모스 부호처럼 ‘사이’를 통해 스토리를 타전한다. 극중 인물에 대해 무책임하지 않은 동시에 섣불리 규정하지도 않으려는 안간힘이 빚어내는 긴장. 그것이 <로나의 침묵>을 고결한 영화로 만든다.
김혜리 <씨네21> 편집위원 vermeer@c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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