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일 감독 ‘반두비’
신동일 감독 ‘반두비’
새 영화 <반두비>는 지난해 봄 거리를 뒤덮었던 ‘촛불’에 대한 영화의 응답이다. 한발 늦게 반응하지만 한발 앞서 세상을 이끄는 영화(예술)의 미덕을 <반두비>는 함축하고 있다. 정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는 아니지만, 유머의 소재로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정치의 유머화 혹은 유머의 정치화에 성공한다. <반두비>는 영민한 작가의 상상력이 세계를 역동적으로 포착한 희열의 순간을 맛보게 해주는 수작이다.
기본권 박탈된 상징적 인물들
‘특별한 교감’으로 현실 들춰내
직설적 정치 야유 웃음 만발 주인공 민서(백진희)는 배낭에 ‘촛불 소녀’ 배지를 달고, 반이명박 부채를 들고 다니는 여고생이다. 광장에서 정치적 의사를 표출해본 경험이 있는 이 세대의 여학생들은 자기 운명을 주체적으로 개척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신동일 감독(<방문자> <나의 친구, 그의 아내>)이 창조한 민서라는 인물은 이 세대를 전형적으로 대변한다. 민서는 (남자)어른, 백인으로 대표되는 기성의 권위를 우습게 보고 반말로 대한다. 담임교사를 포함한 모든 (남자)어른들이 욕망의 포로라는 사실을 민서는 잘 알고 있으며, 약점(남근)을 적극적으로 공략한다. 원어민 영어학원비 마련을 위해 스포츠마사지업소(속칭 ‘대딸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어른들의 질서에 들어가긴 하지만 민서는 파우스트(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저당잡힌)가 되지는 않는다. 민서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건 당연하다. 기성세대는 이런 10대를 불편해 하기 마련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재심의 끝에 이 영화의 등급을 청소년 관람 불가로 결정한 것은 그런 불편함의 표현 아닐까.
또다른 주인공 카림(마붑 알엄)은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다. 고국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1년치 임금을 받지 못했다. 청소년과 이주노동자가 기본권을 박탈당한 대표적 두 존재라는 데 동의한다면, 민서와 카림의 우연한 만남은 자못 상징적이다. 민서는 버스에서 카림의 지갑을 주워 도망가다가 잡히고 만다. 우리 사회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이주노동자보다도 더 열악한 청소년의 경제적 조건을 제시하는 장면이다. 카림을 벌레 대하듯 하던 민서가 카림에게 먼저 다가가 처음 거는 말도 “나 밥 좀 사줄래요”다. 민서는 절도 미수의 대가로 카림의 임금을 체불한 악덕 사장의 집을 찾는 길에 동행하게 된다. “때는 무슨 색깔이냐”고 묻는 민서의 호기심은 카림이 만든 방글라데시 음식을 나눠 먹으며(문화를 이해하며) 친밀함으로 발전한다. 둘의 만남은 촛불이라는 ‘소문자’가 타자에 대한 이해와 연대라는 ‘대문자’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대한 은유다.
영화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야유를 곳곳에 담고 있다. 편의점의 한 취객은 “명박이 믿고 뉴타운 믿었다가 ×된 사람”이라며 푸념하고, 영어학원에서 원주민 영어강사는 “왜 이명박 대통령을 쥐라고 부르느냐”고 질문한다. 민서 친구들을 학원으로 싣고 가는 노란 버스에는 ‘MB수학’이라는 로고가 새겨져 있고, 피시방 화면에서는 이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 것처럼 꾸민 합성 사진이 뜬다. 직설적이긴 하지만, 아니 오히려 직설적이라서 웃음을 이끌어낸다.
반두비는 여자 친구라는 뜻의 방글라데시어다. 카림의 반두비가 된 민서는 카림을 대신해 악덕 사장의 집에 찾아가 복수한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모든 차별과 억압을 한방에 날리는 통쾌한 결말이다. 25일 개봉.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인디스토리 제공
‘특별한 교감’으로 현실 들춰내
직설적 정치 야유 웃음 만발 주인공 민서(백진희)는 배낭에 ‘촛불 소녀’ 배지를 달고, 반이명박 부채를 들고 다니는 여고생이다. 광장에서 정치적 의사를 표출해본 경험이 있는 이 세대의 여학생들은 자기 운명을 주체적으로 개척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신동일 감독(<방문자> <나의 친구, 그의 아내>)이 창조한 민서라는 인물은 이 세대를 전형적으로 대변한다. 민서는 (남자)어른, 백인으로 대표되는 기성의 권위를 우습게 보고 반말로 대한다. 담임교사를 포함한 모든 (남자)어른들이 욕망의 포로라는 사실을 민서는 잘 알고 있으며, 약점(남근)을 적극적으로 공략한다. 원어민 영어학원비 마련을 위해 스포츠마사지업소(속칭 ‘대딸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어른들의 질서에 들어가긴 하지만 민서는 파우스트(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저당잡힌)가 되지는 않는다. 민서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건 당연하다. 기성세대는 이런 10대를 불편해 하기 마련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재심의 끝에 이 영화의 등급을 청소년 관람 불가로 결정한 것은 그런 불편함의 표현 아닐까.
신동일 감독 ‘반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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