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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천태만상 무대 인사, 영화 흥행 보이네

등록 2009-06-28 19:32

천태만상 무대 인사, 영화 흥행 보이네
천태만상 무대 인사, 영화 흥행 보이네
허지웅의 극장뎐 /

언제나 그렇다. 영화 개봉을 두 주 정도 남겨두고 언론 시사회가 열린다. 영화라는 매체 주변부에서 어떻게든 밥벌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스멀스멀 나타나 손님 행세를 한다. 한국 영화의 경우에는 상영 전 반드시 무대 인사가 앞선다. 제작자와 감독과 배우를 한자리에 불러 모아 한마디씩 듣는 것도, 그걸 두고 사진을 찍는 것도 여러모로 시간이 드는 일이라 정작 상영은 뒤처지기 마련이다. 심하면 30, 40분도 걸린다. 그럴 땐 조용히 보도 자료에 불을 붙여 무대에 던지고 싶지만 엄연히 누군가의 밥줄이 걸려 있는 일이다보니 쉽고 편하게 짜증내기도 영 미안하다.

무대 인사를 보면 영화가 보인다. 사실 과장이고 오만이다. 그날 그 무대 위에 올라갔던 사람들의 곱절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매달려 만든 영화다. 감독이나 배우의 손짓 하나, 말투 정도로 가늠될 만한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유사한 사례들이 몇 차례 쌓이다 보니 다음과 같은 심증 정도는 확실히 생긴다.

지명도 있는 감독의 입에서 “후회 없이 만들었다”는 말이 나오면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영화가 뒤따른다. 장르영화의 경우, 그 내용이야 어쨌든 제작자 말이 길어지면 영화가 후지다. 심지어 제작자가 유머를 시도했다면 극장을 나서도 좋다. 감독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앞뒤가 꼬이거나 부들부들 떨어 무대에서 웃음이 나오면 최소한 2, 3년 이상 거론될 만한 영화가 나온다. 가장 최근에는 <추격자>가 그랬다.

특히, 누구 입에서든 한국 영화 운운이 시작되면 당장 일어서 있는 힘껏 도망쳐야 한다. 요즘 한국 영화가 어려운데 활력소가 될 수 있다면, 정도는 괜찮다. 그러나 갑자기 한국 영화 위기론부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물량 공세를 짚어내더니 기자들의 사명감과 애국심을 지적하는 수준에 다다르면 답이 없다.

얼마 전 <여고괴담 5 : 동반자살> 무대 인사가 꼭 그랬다. 이춘연 대표가 장악한 무대 위에서 감독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감독과 배우들에게 차려, 경례를 시키는 건 이제 그러려니 싶지만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참기에 고된 무대 매너와 한국 영화 운운은 이제 정말 견디기 힘들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시리즈의 종말을 고하는 종소리와 같았다.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 장치가 효과적으로 쓰였는지 낭비됐는지를 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감독이 온전히 지휘한 결과물이 아니라는, 더불어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선 무대 인사의 풍경이 더욱 불쾌해졌다.

잘 만든 한국 영화가 반드시 흥행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잘 만든 한국 영화의 무대 인사에선 굳이 사명감과 나팔수를 독려하지 않는다. 다른 무언가를 주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수줍게 소개할 뿐이다.


허지웅 문화칼럼니스트 ozzyzz@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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