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3D 곡괭이의 습격, 당할 자 없네

등록 2009-07-12 18:45

3D 곡괭이의 습격, 당할 자 없네
3D 곡괭이의 습격, 당할 자 없네




허지웅의 극장뎐 /

또래의 친구들이 플레이모빌파와 레고파로 나뉘어 생사를 논하는 가운데 조이드가 제일 우월하다 우기다가 왕따를 당했던 그 시절. 그 중에서도 온몸의 관절이 움직이는 지아이유격대의 등장으로 평화의 댐이 허물어지는 충격에 빠졌을 즈음 만화 주간지에 3D 입체만화라는 게 실리기 시작했다. 대개 <불가사리>나 <터미네이터 2> 같은 신작 장르영화의 만화버전이었고 빨갛고 파란 셀로판지가 조악하게 붙어있는 ‘입체안경’이 부록으로 주어졌다. 그걸 학교에 가져가서 여자를 볼 때만 작동되는 투시안경이라며 흥정을 하던 기억이 선명한데 벌써 이십년 전이고 나는 범죄자로 크지 않았다.

영화계가 3D 입체기술을 수용한 건 오래 전 일이다. 1950~60년대 할리우드 호러영화에서 입체기술은 주요한 홍보 수단이었다. 우리에게도 <천하장사 임꺽정>(1968)이란 입체영화의 역사가 있다. 최근 들어 아이맥스(IMAX) 3D, 리얼(REAL) 3D 등의 발전된 기술이 등장하고 제임스 카메론이나 스필버그 같은 종전의 대가들이 강한 의욕을 보이면서 입체영화가 새삼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피의 발렌타인>을 리메이크한 <블러디 발렌타인> 또한 3D 입체영화다. 호러영화가 입체기술을 차용한 건 90년대 이후 꽤나 오랜만이다.

타란티노의 익숙한 허풍을 곧이곧대로 믿고 정작 확인해볼 열의 따윈 없는 사람들에게 조지 미할카의 1981년작 <피의 발렌타인>은 <13일의 금요일>을 가볍게 뛰어넘는 걸작일 거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 영화에서 특별한 건 탄광부 곡괭이 살인마라는 아이템뿐이다. 금발의 멍청한 미녀들과 잘려나간 손발과 방금 꺼낸 심장이 별 다른 맥락 없이 난장을 이루는, 80년대 슬래셔 호러영화들 가운데 그저 그런 축에 속하는 범작에 불과했다.

<블러디 발렌타인>은 원전의 궤를 크게 거스르지 않는 범위에서 최선의 모양새를 자랑한다. <화이트 노이즈> 시리즈에 투입돼 전편보다 백배정도 나은 속편을 만든 전력이 있는 감독은 영리한 편집과 효과를 동원해 영화에 기분 좋은 속도감을 부여했다. 시나리오도 최소한의 심리전이 가능할 만큼 다듬어졌다. 젠슨 애클스는 그대로 입고 <슈퍼내츄럴> 찍으러 가도 아무 문제없을 만큼 발전이 없지만 역시나 훈남이라 어깨만 보고 있어도 눈이 즐겁다.

그러나 <블러디 발렌타인>이 ‘재미있는’ 영화로 확실히 규정될 수 있는 건 3D 입체기술이 적용될 때 이야기다. 못 만든 입체영화는 보여주기 위한 기술을 남발한다. 이 영화에서 기술은 낭비되지 않는다. 이벤트나 홍보 수단도 아니다. 입체기술이 서사를 거스르거나 돌출되는 일 없이 영화 그 자체의 구성요소로 영리하게 활용되고 있다. 어디서 대충 다운받아보고 재미없다 하지 말자. 삼디 입체 곡괭이가 막 튀어나와 당신의 정수리를 겨누는데 도무지 무슨 수로 이게 재미없을 수 있단 말이야.


허지웅 문화칼럼니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