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D 곡괭이의 습격, 당할 자 없네
허지웅의 극장뎐 / 또래의 친구들이 플레이모빌파와 레고파로 나뉘어 생사를 논하는 가운데 조이드가 제일 우월하다 우기다가 왕따를 당했던 그 시절. 그 중에서도 온몸의 관절이 움직이는 지아이유격대의 등장으로 평화의 댐이 허물어지는 충격에 빠졌을 즈음 만화 주간지에 3D 입체만화라는 게 실리기 시작했다. 대개 <불가사리>나 <터미네이터 2> 같은 신작 장르영화의 만화버전이었고 빨갛고 파란 셀로판지가 조악하게 붙어있는 ‘입체안경’이 부록으로 주어졌다. 그걸 학교에 가져가서 여자를 볼 때만 작동되는 투시안경이라며 흥정을 하던 기억이 선명한데 벌써 이십년 전이고 나는 범죄자로 크지 않았다. 영화계가 3D 입체기술을 수용한 건 오래 전 일이다. 1950~60년대 할리우드 호러영화에서 입체기술은 주요한 홍보 수단이었다. 우리에게도 <천하장사 임꺽정>(1968)이란 입체영화의 역사가 있다. 최근 들어 아이맥스(IMAX) 3D, 리얼(REAL) 3D 등의 발전된 기술이 등장하고 제임스 카메론이나 스필버그 같은 종전의 대가들이 강한 의욕을 보이면서 입체영화가 새삼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피의 발렌타인>을 리메이크한 <블러디 발렌타인> 또한 3D 입체영화다. 호러영화가 입체기술을 차용한 건 90년대 이후 꽤나 오랜만이다. 타란티노의 익숙한 허풍을 곧이곧대로 믿고 정작 확인해볼 열의 따윈 없는 사람들에게 조지 미할카의 1981년작 <피의 발렌타인>은 <13일의 금요일>을 가볍게 뛰어넘는 걸작일 거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 영화에서 특별한 건 탄광부 곡괭이 살인마라는 아이템뿐이다. 금발의 멍청한 미녀들과 잘려나간 손발과 방금 꺼낸 심장이 별 다른 맥락 없이 난장을 이루는, 80년대 슬래셔 호러영화들 가운데 그저 그런 축에 속하는 범작에 불과했다. <블러디 발렌타인>은 원전의 궤를 크게 거스르지 않는 범위에서 최선의 모양새를 자랑한다. <화이트 노이즈> 시리즈에 투입돼 전편보다 백배정도 나은 속편을 만든 전력이 있는 감독은 영리한 편집과 효과를 동원해 영화에 기분 좋은 속도감을 부여했다. 시나리오도 최소한의 심리전이 가능할 만큼 다듬어졌다. 젠슨 애클스는 그대로 입고 <슈퍼내츄럴> 찍으러 가도 아무 문제없을 만큼 발전이 없지만 역시나 훈남이라 어깨만 보고 있어도 눈이 즐겁다. 그러나 <블러디 발렌타인>이 ‘재미있는’ 영화로 확실히 규정될 수 있는 건 3D 입체기술이 적용될 때 이야기다. 못 만든 입체영화는 보여주기 위한 기술을 남발한다. 이 영화에서 기술은 낭비되지 않는다. 이벤트나 홍보 수단도 아니다. 입체기술이 서사를 거스르거나 돌출되는 일 없이 영화 그 자체의 구성요소로 영리하게 활용되고 있다. 어디서 대충 다운받아보고 재미없다 하지 말자. 삼디 입체 곡괭이가 막 튀어나와 당신의 정수리를 겨누는데 도무지 무슨 수로 이게 재미없을 수 있단 말이야.
허지웅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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