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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쉘 위 키스’의 입맞춤

등록 2009-07-19 20:26

‘쉘 위 키스’의 입맞춤
‘쉘 위 키스’의 입맞춤




김혜리의 카페 뤼미에르 /

여자와 친밀해지는 관문으로 키스를 건너뛸 수 없는 남자 니콜라가 있다.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키스가 별로면 육체적 관계로 진전하기 어려운 여자 주디트가 있다. 둘은 죽마고우다. 연인과 이별한 뒤 육체적 애정결핍증에 시달리는 친구를 위해 여자는 우정 어린 ‘도움’을 베풀기로 한다. 그런데 그만, 두 사람이 조심스레 나눈 키스가 환상적이다. 결국 기존의 파트너를 상처 없이 떠나보내고 싶은 남녀는 선의의 속임수를 도모하고, 이에 따르는 소동과 여운이 <쉘 위 키스>의 나머지 이야기다.

<쉘 위 키스>는 한 번의 키스가 여러 사람 인생에 일으킨 여파에 관한 영화다. 그런데 과연 키스가 문제였을까? 한 번의 키스가 아니었다면 영화 속 커플들은 영구히 제자리를 지켰을까? 육체의 끌림을 얕잡아보자는 얘기가 아니다. 확실히 키스는 특별한 대화다. 두 사람의 들숨과 날숨이 하나 되는 경험이며, 영혼에 이르는 입구가 마주치는 의례다. 그러나 달리 보면 <쉘 위 키스>의 키스는 물 위에 뜬 부표와 같다. 그것은 운명의 시침을 돌려놓은 힘일지는 모르나, 시간 그 자체는 아니다. 본디 사람의 마음은 흐르는데, 행동하기 위해 물증이 필요한 심약한 사람들은 키스라는 매혹적인 부표를 이용한다. 어디까지가 우정이고 어디부터가 사랑인지 가늠하는 잣대로 키스를 끌어다 쓰고, 그것에 기대어 다시 변한 마음을 공고히 한다.

기실 <쉘 위 키스>가 이야기하는 것은, 예측 못할 방향으로 이리저리 흘러다니는 우리의 정념이다. 재차 뜯어보면 이 영화의 진짜 주제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취급하는 현대인의 바람직한 태도다. 영화 속 인물들은 사랑을 다루는 데에 있어 대단한 관용을 보여준다. 극중 남녀의 감정은 한꺼번에 대뜸 자리를 옮기지 못하며 인물들은 그 사실을 인정한다. 이별을 통보 받은 니콜라의 여자 친구 칼린은 화내지 않는다. “자전거에 치였을 때 상대가 작심하고 친 것도 아닌데 원망한다고 상처가 빨리 낫는 건 아니잖아.” 감격한 니콜라는 탄식한다. “네 숨은 매력을 알라고 신이 이별을 주셨나봐.”

한편, 가정을 깨기로 한 주디트는 남편이 듣지 않을 때 속삭인다. “내 맘 한켠은 당신 위해 비워놓을게. 떠나는 거 미안한데 안 떠나면 더 미안할 거야.” 마침내 사태가 마무리되자 그는 애인에게 안기며 분명히 말한다. “(전남편) 클로디오가 불행하면 나도 불행할 거야.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다면 모를까.”

<쉘 위 키스>에서 키스는 언젠가 읽힐 것을 염두에 두고 쓰는 일기장에 채운 조그만 자물쇠와 같다. 어차피 감정은 못 박아둘 수 없는 물건임을 아는 어른들은 대신 키스를 단속해 평안을 얻고자 한다. 니콜라와 주디트의 일화에서 배운 <쉘 위 키스>의 다른 한 쌍은 딱 한 번 키스하되 아무 표정도 말도 없이 헤어지기로 약속한다. 이 키스는 앞서 우리가 들은 이야기와 그 교훈을 실천하려는 안간힘을 함축한 순간이라 사랑스럽다. 오늘날에도 키스가 여전히 영화의 충만한 절정이 되는 기적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쉘 위 키스>는 보석이다.


김혜리 <씨네21>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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