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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끔찍한 세상 투영한 불온한 피범벅

등록 2009-07-26 18:33

끔찍한 세상 투영한 불온한 피범벅
끔찍한 세상 투영한 불온한 피범벅




허지우의 극장뎐 /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들이 있다. 문명과 상식, 인권, 교양, 종교, 자유민주주의, 하다못해 보편타당한 취향의 이름으로 금기시된 모든 것들에 도전하는 영화다. 대개의 경우, 관객은 눈앞에 던져진 무례함에 분노한다. 더불어 매도한다. 그러나 영화라는 그릇이 담을 수 있는 세상의 깊이와 폭을 꾸준히 확장시켜온 것 또한 이런 종류의 불편함이라는 사실을 모른 척 지나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 최전선에 고어 영화가 있다. 피가 튀는 장면을 묘사하는 의성어로부터 유래된 스플래터 영화가 과도한 신체 훼손을 통해 기괴한 웃음을 유발한다면(<데드 얼라이브>), 고어 영화는 좀더 넓은 의미로서 인간의 신체에 가해지는 가혹한 폭력을 온전히 담아낸다. 그 쓰임새로 미루어 판단해볼 때 지금에 와선 완전한 형태의 장르라기보다 효과나 장치, 혹은 하나의 사조로 인식하는 게 편하다.

고어 장르를 설명한답시고 허셜 고든 루이스의 1960년대 피범벅 영화들을 복기하려는 노력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대부분의 악명 높은 고어 영화들은 상술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오해도 많이 샀다. 시체와의 성교를 다룬 <네크로맨틱>은 영화사에 기록될 만한 작가적 화두에도 불구하고 급진성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엉뚱한 전설이 되었다. 훌륭한 고어 영화들은 극단적인 폭력을 정색하고 들여다봄으로써 착취-피착취라는 세상의 구조를 파고드는 명민함을 드러내 왔다. 일라이 로스의 <호스텔> 연작도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파스칼 로지에의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8월 6일 개봉)은 근래 등장한 고어 영화 가운데 가장 논쟁적인 작품이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과격한 형태의 학대와 고문으로 점철된 이 불쾌한 영화는 <퍼니 게임>이나 <이든 레이크> 같은 방식으로 관객의 참을성을 유린한다. 관객의 시선을 피해자의 입장에 묶어두고 고통을 감내하게 강요하는 것이다. 폭력은 계속해서 더 큰 강도로 반복되고, 채 설명되거나 결코 납득될 수 없는 폭력의 이유는 보는 이의 불쾌함을 파괴적으로 끌어올린다.

폭력을 다룬 많은 수의 영화들은 기존의 권력(부모의 권위, 공동체의 안전, 국가 치안의 절대성)을 강화하는 데 주력한다. 가장 급진적인 풍경으로 채워지는, 하늘 아래 가장 안전한 영화들이다. 정반대 지점에서,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은 바로 그 기존의 권력이 당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주체라고 설명함으로써 더할 수 없이 불온하고 위험한 영화가 된다. 영화를 그저 두 시간짜리 유흥이라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런 불온함은 불쾌한 낭비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세상은 정말 그리 끔찍하게 굴러간다. 이 영화는 다만 그걸 살짝 엿보았을 뿐이다.


허지웅/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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