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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승객 ‘플라이트’도 ‘해피’할까

등록 2009-08-02 17:57수정 2009-08-02 18:14

승객 ‘플라이트’도 ‘해피’할까
승객 ‘플라이트’도 ‘해피’할까
김혜리의 카페 뤼미에르 /

여행의 계절이다. 비행기를 이용하는 여행자는 한 꾸러미의 화물이 된 기분을 맛보기 마련이다. 이것은 항공사 직원의 친절이나 불친절과는 무관한 불변의 사실이다. 시간표에 맞춰 공항 버스에 오르는 순간부터 수하물을 찾아 도착지의 공항 문을 빠져나갈 때까지, 승객은 엄격한 ‘공정’에 따라 ‘처리’(process)된다. 일단 진입하면 단계마다 준수해야할 규칙이 있고 이를 어기면 앞으로 되돌아가야한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나면 벗어날 방법도 없다. 때로 지상에 그어진 국경을 넘어가는 항공기 여행의 과정은 독립된 문화를 가진 작은 국가에서 보내는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길게는 십수 시간 지속되는 비행 내내 우리는 일상과 매우 다른 존재 조건에 처하며, 공식적인 규칙과 규칙 사이에는 다시 경험과 눈치로 지켜야 할 비공식적 관습법과 요령이 무수히 존재한다.

항공기 여행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낯설고 특수한 존재 조건을 고려하면 비행은 영화의 훌륭한 소재다. 비행 영화가 <탑 건>같은 공중 액션 영화나 <에어플레인!> 같은 재난 코미디에 그친다면 낭비인 이유다. 여객기 운항의 이모저모를 살핀 코미디 <해피 플라이트>는 그래서 영리한 시도다. <해피 플라이트>는 도쿄 하네다 발 호놀룰루 행 전일본공수(All Nippon Airways) 여객기 1980편이 우여곡절 끝에 정시에 이륙했다가 기계 고장과 태풍 속에서 회항하기까지를 그린다. 일찍이 <워터보이즈>,<스윙 걸즈>로 사랑스런 아웃사이더들의 합창을 이끌었던 야구치 시노부 감독은 <해피 플라이트>에서 선량한 프로페셔널들의 앙상블을 지휘한다. 감독은 코미디보다 항공기 운항의 메커니즘에 더욱 매혹된 것처럼 보인다. 기장 승급을 앞둔 부기장과 제선 데뷔를 치르는 신참 스튜어디스, 지상 근무에 진력이 난 젊은 스탭과 컴퓨터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고역을 치르는 기상 관제팀의 베테랑, 항공기 정비팀의 막내 엔지니어와 조류 퇴치요원, 심지어 공항에 상주하는 비행 오타쿠들까지 어우러진 이 소동극은 왁자지껄하지만 일사불란하다.

비즈니스 좌석으로 승급시킬 승객을 골라내는 기준부터 이륙시 기어를 넣는 순서까지 온갖 디테일이 과적된 이 영화의 코미디적 폭발력은 다소 약하다. 대신 교육적 효과는 탁월하다. 무엇보다 <해피 플라이트>는 승객으로서 우리가 냉랭하게 느꼈던 모든 프로세스 뒤에도 엄연히 인간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기내 화장실 안에서 혼자 흐느끼는 스튜어디스가 있다는 사실을, 이륙하는 비행기를 배웅하는 엔지니어들의 손 인사에 실린 복잡한 감정을 귀띔해준다. 야구치 시노부 감독은 긴장과 웃음을 버무리는 난해한 숙제를 선방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긴급 착륙이 주요 내용인 영화가, 비행기를 타러 가고픈 마음을 일으키기란 쉬운 노릇이 아니다. 다음은 승객 관점에서 찍은 항공 영화가 나올 순서 아닐까? 자기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이코노미 석의 소리 없는 신경전과 혈액 순환 장애만 해도 1시간 반짜리 희비극은 족히 나올 성싶다.

김혜리 <씨네21>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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