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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이야기 힘’만으로 이렇게 무섭다니

등록 2009-08-09 19:09

이용주 감독 ‘불신지옥’
이용주 감독 ‘불신지옥’
이용주 감독 ‘불신지옥’
여름은 공포영화의 계절이라지만, 그래서 여름을 싫어하는 영화 팬들도 많다. 논리적 맥락 없이 사람을 죽이고 내장을 파헤치는 장르적 관습에 지쳤거나, 원래 무서운 것을 견디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여름은 얼른 건너뛰고 싶은 계절일 수밖에 없다. 13일 개봉하는 <불신지옥>은 공포영화를 싫어하는 관객도 충분히 즐길 만한 ‘신개념’ 공포물이다. 음향이나 특수효과로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여느 공포영화와 달리, 이야기의 힘으로 영화를 끌고 간다. 그렇다고 무섭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팽팽한 줄을 놓지 않는 내러티브와 오싹한 분위기의 이 영화는 색다른 공포 체험을 바라는 관객을 충분히 만족시킬 만한 수작이다. 지적인 어조로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신비한 연출 능력은 올해 한국 영화의 값진 발견이다.

미스터리 스릴러에서 공포로 발전
긴장감 놓지않는 내러티브 ‘수작’


이용주 감독 ‘불신지옥’
이용주 감독 ‘불신지옥’
이야기가 살아있는 공포영화의 발견

재미있는 소설이 도입부에서 많이 쓰는 수법, 주인공이 자다가 전화를 받는 것으로 이야기보따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과외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대느라 바쁜 대학생 희진(남상미)은 파김치가 된 몸으로 잠을 자다 동생(심은경)의 전화에 잠을 깨는 기이한 꿈을 꾼 뒤, 동생이 사라졌다는 엄마(김보연)의 전화를 받는다. 교통사고로 아빠가 돌아가시고 동생은 사경을 헤매다 살아난 이후, 엄마는 지나치게 교회에 집착한다. 이번에도 엄마는 기도만 열심히 하면 동생이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희진은 그런 엄마를 답답해한다. 또 한 사람의 ‘불신자’가 있으니, 눈에 보이는 증거만을 믿는 베테랑 형사 태환(류승룡)이다. 그러나 동생이 신들렸다는 주변의 증언, 아파트 주민들의 잇따른 죽음, 그리고 동생이 주민들의 죽음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희진과 형사는 혼란스러워한다. 중반 이후 영화는 흥미롭게도 기독교와 무속신앙의 대결 양상을 띠고, <라쇼몽>처럼 증언자들이 서로 다른 주장을 펴면서 긴장감을 높인다. 미스터리 스릴러로 시작했다가, 주민들의 증언에 의해 동생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공포물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용주 감독 ‘불신지옥’
이용주 감독 ‘불신지옥’
‘믿음’에 관한 흥미로운 질문

이 영화가 특이한 것은 장르물의 외피를 쓰고, 종교(믿음 혹은 광신)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 이래 가장 근본적인 회의적 시선을 우리 주변의 종교를 향해 던진다고 평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용주 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길을 걷다 불신지옥을 외치는 분들을 보면서 믿음이 지나치면 상대방과의 소통이 차단되는 현상이 생긴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믿지만 나는 믿지 않는다. 그럴 때 소통되지 않는 타인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된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사이비나 이단, 그러니까 광신도나 과도한 믿음을 다루고 있지만, 나는 과도한 믿음이라는 말 자체가 역설적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이 이해할 수 없는 믿음은 숙명적으로 과도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적당한 믿음이라는 것은 없는 것 아닌가, 그런 아이러니가 재미있는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영화사 아침 정승혜 대표 유작

배우들의 연기는 고루 일품이다. 특히 신들린 소녀를 연기한 94년생 배우 심은경은 대사 몇마디 없이 탁월한 내면 연기를 보여준다. 몸을 사리지 않는 남상미의 투혼, 류승룡의 선 굵은 연기도 칭찬받을 만하다. <불신지옥>은 영화 카피라이터로 출발해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님은 먼 곳에> 등을 제작한 영화사 아침 정승혜 대표의 유작이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영화사 아침 제공

■ 이용주 감독은 누구

소통되지 않는 타인에 대한 공포
종교·믿음 향한 회의적 시선 눈길


이용주(39) 감독
이용주(39) 감독
이용주(39·사진) 감독은 건축설계사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나와 설계사무소에서 4년 정도 일했다. 서른살에 회사를 그만두고 단편영화 2편을 찍었고,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연출부에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배웠다.

원래 멜로영화로 감독 데뷔를 준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러다 몇 장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그 이미지에 살을 붙인 게 <불신지옥>이다. “처음부터 공포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보다는 먼저 이야기를 만들고 그다음에 장르성을 입혔다”고 이 감독은 말했다.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사진이었다. 대학에서 사진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 이야기를 구성하는 ‘포토 스토리’를 만들었다. 하다 보니 음악도 넣고 싶고, 사진이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다니며 한겨레 영화연출학교를 이수했다.

영화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마니아는 아니었고, 문학적인 바탕이 별로 없는 공학도가 영화를 한다는 게 처음엔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촬영을 할까, 연출을 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런데 영화 공부를 하다 보니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고,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엉뚱하게 영화로 귀착된 엉뚱한 케이스”라고 말했다. 이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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