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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8mm 속 불안한 세상 거침없는 이미지 실험

등록 2009-08-23 21:41

김곡(31) 감독
김곡(31) 감독
2008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작 ‘고갈’
“<고갈>은 영화가 아니다. <고갈>은 영화 폭탄이다.”(세르히오 울프 부에노스아이레스영화제 집행위원장) 영화 <고갈>은 한국 영화 사상 가장 충격적이고 논쟁적인 문제작임에 틀림없다. 인간과 짐승의 성교를 보여주는 수간 비디오, 성기 훼손과 유두 절단 등 표현의 한계를 실험하는 도발적인 장면들만이 충격적인 건 아니다. 낡고 썩은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려고 일부러 택한 8㎜ 필름. 그 필름을 손으로 만지면서 생긴 자국이나 먼지 등을 고스란히 재현해내는 미학적 결단 역시 충격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1960~70년대 김기영, 90년대의 김기덕을 뛰어넘는 시각적 각성이며, 거침없는 이미지 실험이다.

“불안이나 무의미는 대사만으로는 표현되지 않는다. 그것은 말과 개념을 넘어서는 순수한 느낌, 이미지 자체이기 때문이다. <고갈>은 바로 그 불안의 이미지를 캐스팅한 영화다.”

표현의 한계 실험 도발적 장면…필름 손자국 그대로 담아
한국영화 사상 가장 논쟁작 예고…“불안의 이미지 캐스팅”


‘고갈’
‘고갈’
이 영화에서 장소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김곡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영화의 배경은 시커먼 갯벌이거나 황량한 들판, 공단의 잿빛 거리, 싸구려 모텔이다. 그 싸구려 모텔에서 남자(박지환)는 여자(장리우)에게 매춘을 시켜 근근이 먹고산다. 손님은 인근 공단의 이주노동자들. 그러니까 여자는 이 사회 가장 밑바닥에 깔린 하수구인 셈이다. 말을 잃은 여자는 끊임없이 남자로부터 달아나지만, 다시 붙잡혀 온다. 언어를 잃어버린 무채색의 세계에서 (지배자인) 남자의 호루라기 소리, (남근을 연상시키는) 항타기의 파일 박는 소리만이 또렷하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던 남자와 여자의 ‘전쟁 같은 평화’는 레즈비언 중국집 배달부(오근영)의 출현으로 격렬한 파국을 맞는다. 영화 막바지의 사산아 출산은 데이비드 린치의 <이레이저 헤드>를 능가하는 경악스런 장면이다.

8㎜ 필름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김 감독은 “존재들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 흩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고 답한다. 8㎜로 찍은 영상을 35㎜ 크기로 확대(블로 업)하면서 의도적으로 부풀려진 필름은 마치 점묘법으로 그린 쇠라의 그림처럼 “입자가 지글지글한다.” 오래된 영화를 볼 때 흔히 ‘화면에 비가 내린다’는 식으로 표현되는 필름 훼손 역시 거의 의도적이라고 볼 수 있다. “쓰레기통에서 건져올린 느낌”을 만들려고 일부러 조심하지 않은 탓이다.


‘고갈’
‘고갈’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드는 질문은 ‘왜 이런 영화를 만드느냐’일 것이다. “내가 보는 지금의 세상을 표현하려다 보니 이렇게 됐다. 지금 세상을 타임캡슐에 넣어 우주로 쏘면 지구가 이때 이랬구나 하는 증언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썩을 대로 썩은 세상을 표현하는 데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미지들의 폭주”라고 할 만한 영상은 때로 아름답지만, 아름답다고 말할 수만은 없는 처절함과 불편함 같은 걸 포함하고 있다. 김 감독은 “이 영화가 ‘출구 없는 하수구’ 같다고 말씀하시는데, 나는 그 하수구의 진짜 냄새를 아느냐고 묻고 싶었다”며 “그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얼마다 지독하기에 그렇게 괴로운지를 그동안 영화에서 한 번도 다룬 적이 없었던 것은 그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갈>은 2008년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2009년 미국 시러큐스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여우주연상, 감독상을 받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제한상영가(사실상 상영 금지) 판정을 받았다가 수간 장면을 삭제한 뒤 청소년 관람 불가로 개봉하게 됐다. 배급사를 찾지 못해 서울독립영화제가 직접 배급에 뛰어들었다. 9월3일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서울 명동 중앙극장)에서 단관 개봉.

이재성 기자, 사진 비타협영화집단 곡사 제공

‘쌍둥이 감독’ 스크린을 쏘다

김곡-김선 공동작업…이름은 김곡 감독만 올려

김곡(31·사진) 감독은 쌍둥이 동생 김선 감독과 함께 활동하고 있는 형제 감독이다. 기존의 다른 영화처럼 <고갈>도 형제의 공동 작업으로 만들어졌는데, 김곡 감독이 “현장에 좀 더 오래 있어서” 단독 연출로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김곡, 김선 형제는 2001년 단편 <이 사람을 보라>로 데뷔한 뒤 <반변증법> <자본당선언 : 만국의 노동자여, 축적하라!> <정당정치의 원리> <프롤레타리아트의 기원> <자가당착> 등의 영화를 만들어 왔다. <고갈>은 이들의 세 번째 장편 영화이며, 극장 개봉은 이번이 처음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와 데이비드 린치를 좋아했으며, 루이스 부뉴엘과 로버트 올트먼의 작품들로부터 정치적 세례를 받았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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