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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해운대’에서 건진 동춘이와 형식이

등록 2009-09-27 18:02수정 2009-09-27 20:47

‘해운대’에서 건진 동춘이와 형식이
‘해운대’에서 건진 동춘이와 형식이




김혜리의 카페 뤼미에르 /

영화 <해운대>는 할리우드 재난 블록버스터와 어떻게 달랐나? 첫째, <해운대>가 휴머니즘적 서사의 강화를 통해 할리우드와 차별화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는 부정확하거나 편의적이다. 말하자면 에이(A)가 비(B)와 다르다는 명제를 성립시키기 위해, B에 엄연히 포함된 성분을 못 본 체하는 경우다. 어떤 할리우드 재난영화도 인간적 서사 없이 재해만을 찍지는 않는다. 인물 사이 관계에 집중한 미미 레더 감독의 10년 전 영화 <딥 임팩트>는 시지(CG·컴퓨터그래픽) 스펙터클이 차지하는 비중이 오히려 <해운대>보다 작다. 재난영화로서 <해운대>에 특징이 있다면 재앙의 실체를 파악한 과학자 김휘(박중훈)가 영웅으로서 문제 해결과 감정적 카타르시스의 중심에 놓여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해운대>에서 다수의 캐릭터는 자신을 급습한 것이 무엇인지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다. 영화가 앞부분의 코믹 멜로드라마와 뒷부분의 재난영화, 두 도막으로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둘째, 매우 당연하지만 가장 중요한 <해운대>의 차별점은 재난의 당사자가 한국의 도시 부산 사람들이라는 조건에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인물이 관객에게 이것이 한국 영화, 부산 이야기임을 설득하는 체취를 지니고 있는가? 할리우드적 스펙터클을 우리와 관계된 무엇으로 절감하게 하는 한국적인, 혹은 한국영화적인 인물은 누구인가? <해운대>의 주인공은 설경구가 분한 선원 최만식과 바닷가에서 식당을 하는 강연희(하지원)다. 선량한 이 커플은 전형적 멜로드라마를 끌어간다. 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김휘와 이유진(엄정화) 커플은, 자식을 사이에 둔 이혼한 부부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갈등을 보여준 다음 쓰나미에 휩쓸려 급히 화해한다. 지역성과 딱히 관련이 없는 네 사람보다 <해운대>의 영화적 개성을 살려내는 캐릭터는 백수건달 동춘(김인권)과 만식의 동생인 해상 구조요원 형식(이민기)이다. 동춘은 지방을 배경으로 한 한국 영화 특유의 친근한 인물형이다. 그는 특기도 직업도 없이 “이 나이에 무슨 면접이냐”고 큰소리치며 ‘사업’ 운운하면서 소일한다. 사리 분별이 어두워 민폐를 끼치는 한편 정은 많아 낄 때 못 낄 때 못 가리고 뛰어들었다가 엄한 주먹에 맞곤 한다. 곽경택 감독의 <똥개>, <사랑>에서 그런 사내들이 어정거렸고 최근 <마더>에도 진태(진구)라는 닮은꼴이 있었다. 한편 형식은 착실히 고향에서 일을 찾아 정착한 무뚝뚝한 부산 청년이다. 그는 ‘서울 가시나’한테 놀림받고 ‘서울 머스마’한테 부당하게 얻어맞지만 우직하게 제 일을 해낸다. 두 남자는 대단한 동기 없이 쓰나미의 한복판에 떨어져 자기와 무관한 생명을 구해낸다. 형식은 덤덤히 임무를 다하고, 망나니 동춘은 얼떨결에 아이를 안고 뛴다. 해일이 몰아쳤을 때 그것을 맞아 즉각적 경악과 체념 외에 다른 드라마를 보여주는 인물은 이 둘뿐이다. 영화에서 감정과 스릴이 최고조에 이르는 장면도 그들의 몫이다. <해운대>의 시나리오가 무의식적으로 가장 애정을 기울인 캐릭터는 동춘과 형식이고, 관객도 그것을 알아차린 게 아닐까.

김혜리<씨네21>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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