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품 나는 한가위 극장가…왜 이래?
“해마다 추석 영화 볼 것이 없다고 하는데, 올해도 그러네요.” 한 영화평론가는 추석이 영화 대목이란 이야기는 이제 옛말이라고 잘라 말했다. 영화계에서 추석 연휴는 전통적으로 연중 최고의 흥행철로 꼽혀 왔다. 특히 한국 영화들 중 대형 영화들이 주로 추석철에 개봉해 왔다. 1년에 영화 한두 편 보는 사람들이 극장을 가고, 고향에 내려간 이들이 연휴 중 하루는 극장을 찾아가는 때가 바로 추석 연휴. 그래서 외국 영화보다는 한국 영화, 심각한 영화보다는 재미있는 영화, 그래서 머리에 힘주지 않고 볼 수 있는 코미디영화들이 강세를 이뤘다. <가문의 영광> 같은 영화들이 대표적이었다. 코미디 실종 사건
빠지지 않던 웃음 코드 대신
토종 멜로-수입 액션 대결로 그러나 이제 추석 시즌은 몇년 새 바뀌어 버렸다. 흥행력은 떨어지고 코미디영화도 사라졌다. 왜 그럴까?
■ 명절 지고 방학 떴다 영화계의 연간 4대 대목은 여름방학, 겨울방학, 그리고 추석과 설날이다. 석달에 이르는 겨울방학은 업계 추산으로 연인원 5000만명 넘게 극장을 찾고, 여름방학 두 달 동안에는 4000만명 이상이 영화를 본다. 추석과 설 관객은 연휴 3~4일 사이에 대략 300만명 정도인데, 연휴 전후를 포함한 시즌 개념으로 보면 1000만~1200만명 정도가 된다. 단기간에 많은 관객이 집중되는 점에서 여전히 추석 시즌은 존재한다. 그러나 연간 흥행에서 추석의 비중은 크게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여름철 흥행 비중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할리우드가 5월부터 일찌감치 여름철 대작들을 선보이는데다, 한국 영화들도 대작들의 개봉 시기가 여름으로 바뀌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흥행 순위를 바꿔온 한국 영화 히트작들 대부분은 추석에 개봉해 끌어낸 힘으로 연말연시까지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개봉 시기가 여름으로 당겨졌다. <괴물>이나 <해운대> 등이 여름방학에 개봉했다. 영화들이 추석보다 여름을 더 겨냥하는 주된 이유는? 바로 ‘중간고사’ 때문이다. 정확히는 날로 커지는 학생들의 ‘공부 부담’ 탓이다. 내신 등 학력을 강조하는 교육열이 영화 시장에 악영향을 끼친 것이다. 추석은 학기 중이어서 학생들이 마음 편하게 영화를 보기 어려운 시점이 되어버렸고, 자연스럽게 가족 관객과 학생을 노리는 영화들은 여름방학으로 몰려갔다.
하품 나는 한가위 극장가…왜 이래?
‘티켓 파워’ 방학철로 더 쏠려
대작영화 개봉시기 앞당긴 탓 ■ 코미디는 가고, 멜로가 왔다 추석은 귀성객들이 많아 지방 흥행이 승부처로 작용해 왔다. 외국 영화의 경우 전체 관객 중 지방 관객 비율이 40% 정도인 데 반해 예전 추석철 개봉한 한국 코미디영화들은 지방 관객이 70%대였을 정도였다. 이런 흐름 때문에 추석에는 더욱 코미디 영화들이 집중됐다. 그러나 한국 코미디영화들은 비록 인기는 높았지만 저질이란 비판도 거셌다. 여론을 의식한 제작사들도 제작을 꺼리기 시작하면서 추석 시장을 석권했던 한국 코미디영화는 급속도로 사라졌다. 그 결과 올 추석에는 단 한 편의 한국 코미디영화도 없다. 자취를 감춘 코미디 대신 추석용 아이템으로 등장한 트렌드가 ‘멜로’다. 원래 가을철 주목받는 멜로영화 시장이 추석 시즌으로 들어온 것이다. 올해 추석에 개봉하는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주목받은 두 영화 <내사랑 내곁에>와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모두 멜로 코드를 앞세웠다. 이번 추석 극장가는 이 두 한국 멜로영화 대 할리우드 액션영화 <써로게이트>와 <게이머> 등의 맞대결 상황이 주도할 전망이다. 멜로영화가 과연 올해 선전해 추석용 장수 아이템이 될지도 관심거리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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