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 떨지 않는 ‘임순례의 힘’
새 영화 ‘날아라 펭귄’ 빈틈없는 일상탐구 돋보여
임순례 감독의 새 영화 <날아라 펭귄>이 왔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극장으로 불러모았던 전작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보여준 임 감독의 힘을 생각하면 신작은 더욱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히려 소리소문 없이 공동체 상영과 많지 않은 스크린으로 관객들과 만남을 시작했다.
임 감독은 그동안 서민들, 비주류들의 이야기를 가져다가 재료 자체의 맛 그대로를 살린 담백한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이웃들이면서 조금은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남다른 처지를 보면서 관객들은 등장인물들이 결국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임을 공감했다.
새 영화는 아예 작정하고 오로지 평범함 그 자체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엄마의 극성스런 교육열에 시달리는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 아이를 들볶아대는 아내가 불만인 아빠, 현실을 생각하면 유난을 떨지 않을 수 없는 직장인 엄마의 이야기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리고 순서대로 네 편의 에피소드를 이어간다.
교육열 가족의 이야기 다음은 극성 엄마의 직장 이야기로 바뀐다. 채식주의자 겸 금주주의자로 살기로 결심한 탓에 직장에서 왕따가 되는 남자 신입사원, 당차지만 사회의 고정관념에 상처도 잘 받는 여자 신입사원을 둘러싼 사무실 이야기는 기러기아빠인 권 과장네로 넘어간다. 홀로 남아 온갖 궁상을 떨면서도 가족들 하나 때문에 버티고 사는 권 과장은 오랜만에 돌아온 아내와 아들딸이 미국식으로 변해버린 모습에 실존적 충격을 받게 된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늘그막에 일생일대의 격전을 벌이게 된 권 과장의 부모님 이야기다. 고집쟁이에, 아내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남편에게 아내 송 여사는 마침내 강력한 저항을 시도한다. 늘 윽박질러 눌러왔던 아내의 정면대응에 놀라 자빠진 할아버지는 해결책을 고심한다.
사람들의 일상을 예리하게 엿보아 그 속에서 이야기를 뽑아내는 임 감독의 관찰력은 이제 달인의 경지를 넘어 도사가 된 듯하다. 예전의 힘있는 연출은 상대적으로 투박한 맛을 남겨뒀지만, <날아라 펭귄>에선 연출이 너무나 깔끔하고 세련되어 조금의 빈틈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문소리, 박원상, 손병호 등 출연 배우들도 호연으로 화답했다. 심각하게 시작한 영화 후반의 재미를 책임지는 박인환 정혜선, 두 백전노장과 채식주의자 신입사원 역인 최규환의 실감나는 연기가 돋보인다. 덕분에 실컷 웃다 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치맛바람, 기러기아빠, 황혼이혼에 담긴 진짜 의미와 문제를 절로 생각해보게 된다. 모처럼 가족끼리, 특히 부모님을 꼭 모시고 가야 할 영화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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