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들어 하위권에서만 맴돌던 롯데 자이언츠가 2년 연속 가을 야구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니 가장 열광적인 팬을 가진 롯데 자이언츠의 올해 시즌을 찍은 다큐멘터리 <나는 갈매기>가 극장에서 개봉을 하는 것도 한편으로 당연한 일이다. 롯데 팬들만 반복 관람을 해도 충분히 수익이 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그런 팬 서비스가 일찌감치 없었다는 사실 자체도 놀랍다. 30여년에 가까운 프로 스포츠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팬을 중심에 놓기보다는 기업 마케팅이라는 관점에서만 야구단을 생각했던 것도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나는 갈매기>는 지난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무기력하게 패퇴한 후, 새로운 마음으로 2009년 시즌을 시작하는 롯데 선수들을 보여준다.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암운이 드리워진다. 손민한은 2군으로 내려가고, 조성환은 얼굴에 공을 맞아 수술을 하고, 강민호는 잦은 부상과 슬럼프에 시달린다. 이렇게 많은 사건이 한 시즌에 벌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갈매기>는 드라마틱하다. 그런 역경을 거치면서, 땀과 눈물을 흘리면서 롯데 자이언츠는 4위에 오른 것이다. 내가 롯데 팬이 아닌데도,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이 무수하게 지나간다. 사실 <나는 갈매기>가 썩 잘 만든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너무나 평이하게, 선수들 하나씩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정도에서 그친다. 그럼에도 <나는 갈매기>를 보면, 스포츠에 조금만이라도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슴이 마구 뛸 수밖에 없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국가대표>의 대성공이 말해주듯이, 스포츠야말로 각본 없는 최고의 드라마 아닌가.
축구팀 인천 유나이티드를 그린 <비상>이 있기는 했지만, 그동안 국내에서 스포츠 다큐멘터리는 불모 지대에 가까웠다. 경인티브이(OBS)에서 방영되는 <불타는 그라운드>가 에스케이 와이번스를 따라다니는 정도였다. 드라마틱한 영욕의 세월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스포츠 다큐멘터리가 왜 그동안 나오지 않았던 것일까. 국내에서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제한적으로 쓰인 경우가 많았다는 이유를 들 수 있다. 다큐멘터리는 세상 모든 것을 다루는 가장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장르다. 대상에 최대한 근접해서 있는 모습 그대로를 찍어내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본령이긴 하지만, 그런 원칙도 세월이 흐르면서 바뀌기 마련이다. 지금은 다큐멘터리라 하면, 대중은 티브이의 <인간극장>을 떠올리고, 영화인들은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독립 다큐멘터리를 주로 생각한다.
21세기 들어 <볼링 포 콜럼바인> <화씨 911>을 만든 마이클 무어는 다큐멘터리의 스타로 떠올랐다. 자신의 정치적·사상적 견해를 미리 확립하고, 다양한 자료와 정보를 활용하여 필요한 대상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논쟁적인 티브이 시사프로그램처럼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내는 마이클 무어의 작품은 보는 사람들을 화끈하게 만들었다.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대중에게 호소하면서,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는다. 거짓을 제시하는 것 말고는 무엇이든 용납된다. 조롱도, 비난도, 약간의 과장도. 어떤 면에서 본다면,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는 일종의 쇼 프로그램 같은 느낌마저 준다.
<워낭소리>가 대성공을 거두었을 때도, 영화평론가 다수는 감동적임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반칙이라고 비판했다. 연출자가 너무 많이 개입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연출’에 대한 의심도 있었다. 사실 다큐멘터리가 대상이나 사건에 절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원칙과 이상일 뿐일 수도 있다. 사회적 문제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대상을 찍는 방식, 편집하는 태도와 결단에 따라서 모든 것이 바뀌기도 한다. 카메라는 진실이 아니라, 사실을 찍는다. 그리고 사실은 다큐멘터리의 카메라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진실을 원하는 자들의 시선으로 들여다볼 때에만 가능하다.
다큐멘터리의 시원으로 에스키모족의 생활을 그린 <북극의 나누크>를 꼽는다. 마침 최근 들어 <펭귄> 이후 동물 다큐멘터리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이런 동물 다큐멘터리에서도 감독의 입장은 명확히 드러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시각이나 입장이 드러나는가가 아니라 시각과 입장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보여주었는가이다. <우리는 액션배우다>가 보여주는 것처럼, 다큐멘터리는 진실을 말하는 장르인 동시에 가장 효과적으로 관객을 설득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한국의 다큐멘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진실만이 아니다. <우리는 액션배우다>와 <나는 갈매기>처럼 관객이 함께 즐거워하는 다큐멘터리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김봉석/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