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에 놓여 있는 유치원생들의 가방.
패턴의 반복
소녀시대 9명·원더걸스 5명, 솔로와는 다른 효과
대상과 방법 따라 질서, 몰개성 등 자연의 ‘변주’
소녀시대 9명·원더걸스 5명, 솔로와는 다른 효과
대상과 방법 따라 질서, 몰개성 등 자연의 ‘변주’
처음 이 강의 초반에 제시한 미션인 선과 면을 찾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구도 혹은 구성의 훈련이었으며 색깔 찾기는 의미를 담자는 취지였습니다. 또한, 11강부터 14강은 감각의 확장을 통해 의미를 더 깊고 풍부하게 넓혀나가자는 뜻을 담고 있었습니다. 지금부턴 본격적으로 재밌는 사진 찍기에 돌입하겠습니다.
공 하나로 축구할 때와 체육사에서 쌓여있는 공을 볼 때
16강은 형태(패턴)의 반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축구공은 축구라는 스포츠를 위한 도구이며 상징물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축구공을 보면 가죽의 재질, 가죽의 모양, 운동장, 축구선수, 월드컵 등이 떠오릅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면 하나의 축구공을 놓고 사람들은 각자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축구공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요즘 방과 후엔 다들 학원에 다니느라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을 찾는 것은 손꼽을 정도입니다만 예전엔 축구공 하나를 놓고 수십 명이 몰려다니면서 뛰어다니곤 했습니다. 또 늘 지나가는 등하굣길 옆 문방구에 매달려 있는 축구공을 보면서 갖고 싶어 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십 개의 축구공이 늘어져 있거나 쌓여 있다면 다른 느낌을 받게 됩니다. 축구공 자체의 재질이나 상징성에서 멀어지면서 전체 배열이 만드는 생김새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전후해서 사찰의 뜰 앞이나 거리엔 연등이 걸립니다. 하나의 연등에서 우리는 연등의 원모델인 연꽃을 바로 읽어낼 수 있고 연꽃이 상징하는 자비, 순결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여유 있게 바라보면 염화시중의 미소가 연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줄줄이 달려있는 연등을 찍은 사진을 보면 의미와 상징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어찌 보면 구름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오색찬란한 처마처럼 보이기도 하며 어떨 땐 지붕이나 천장처럼 생각됩니다.
원래 있던 개별적 특성, 고유 기능, 본연의 이미지 벗어나
하나의 사물이 수십, 수백 개 한꺼번에 등장하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개별적인 특성이 사라지고 같은 사물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패턴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이런 사례를 몇 가지 더 들어보겠습니다. 창문은 건물의 채광과 환기를 위해 만들어 둔 것입니다. 하나의 창문을 찍은 사진을 보면 창문이 가진 고유의 기능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대형건물을 멀리서 찍으면 똑같이 생긴 수십 개의 창문이 가로와 세로로 줄을 맞춰 나열된 상태로 보입니다. 일단 창문 하나의 크기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같은 모양이 반복되어 나타나게 되면 선이 보이면서 새로운 형태가 그려지고 창문 본연의 이미지를 벗어난 새로운 대상으로 변하게 됩니다.
어떤 패턴의 반복을 찾을 때 그 대상들이 완벽히 같아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위에서 예로 든 건물의 창문 같은 것은 인공적인 형태이니 같아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 발견되는 패턴의 반복은 조금씩 다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제 가을이 깊어지면 곱게 물든 단풍잎이나 은행잎을 살펴보십시오. 형태는 비슷하지만 모양과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없이 많이 달려 있는 단풍잎을 보면 하나의 단풍잎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날 것입니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모여 한 그루의 나무를 이루고 그런 나무 수백, 수천 그루가 모여 하나의 숲과 산을 이룰 것입니다. 멀리서 산을 찍어보면 가장 작은 단위인 나뭇잎은 식별할 수가 없습니다. 각각의 나뭇잎이 가지고 있던 색깔도 다른 잎들의 색과 혼합되어 이름을 붙일 수도 없는 아주 특별한 색이 뿜어져 나옵니다. 자연이란 거대한 팔레트가 각종 잎들을 섞어서 인간들에게 보내는 계절의 선물, 그것이 바로 단풍이며 이 또한 패턴의 반복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졸업식 사각모들 보면 젊음이나 희망, 또는 취업난 연상
최근 가요시장을 보면 소녀시대, 원더걸스, 카라, 브라운아이드걸스 같은 여성 아이돌 그룹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각 그룹의 가수 1인은 저마다 미모와 춤, 가창력이 뛰어나겠지만 9명, 5명, 4명이 단체로 무대에 오른다는 것이 큰 강점임이 틀림없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에서 그룹의 멤버 수를 검색했습니다.) 가창력보다 비주얼이 더 강조되는 분위기가 강한 요즘, 똑같거나 조금씩 다른 의상을 입고 여럿이 함께 춤을 추면 그 매력이 훨씬 효과적으로 대중들에게 다가옵니다.
가수들 외에도 이런 사례가 있습니다. 유치원 꼬마, 학생, 경찰, 군인, 간호사 등 교복이나 제복을 입은 단체 인물들에게서도 패턴의 반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같은 옷을 입은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확대된 이미지가 나오는 것입니다. 졸업식 시즌이 오면 졸업하는 대학생들이 사각모를 하늘로 던져 올리는 사진이 각 신문들에 등장하곤 합니다. 한 명의 대학생을 보면 그 학생의 개인에 대한 이야길 읽게 되지만 여러 명의 대학생들에게선 젊음, 졸업, 희망 등이 연상됩니다. 물론 최근에는 졸업가운을 입은 여러 명의 대학생을 보면 취업난이 먼저 떠오르기도 합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곽윤섭 기자의 <사진마을> 바로가기
서울-비오는날 유리창.
문경 레일바이크.
과천동아리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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