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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종족 학살’ 그 오싹한 변주곡

등록 2009-10-11 18:00수정 2009-10-11 20:19

‘종족 학살’ 그 오싹한 변주곡
‘종족 학살’ 그 오싹한 변주곡




김혜리의 카페 뤼미에르 /

누군가는 폴 버호벤의 <스타쉽 트루퍼스>를 넬슨 만델라가 고쳐 쓴 듯한 영화라 하고, 혹자는 신체 변형 영화의 달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찍은 <시티 오브 갓> 같다고 말한다. 한국 관객더러 묘사하라면 <괴물> 이후 오랜만에 재회하는 정치적 알레고리와 특수효과의 절묘한 결합이라고 말할 법하다. 모두가, 올해 가장 탁월한 에스에프 영화로 꼽히는 <디스트릭트 9> 이야기다. 닐 블롬캠프 감독의 <디스트릭트 9>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유에프오(UFO)가 등장한 지 20년이 흐른 다음 시점에 시작된다. 시민들은 ‘9구역’이라 명명된 열악한 환경의 게토에 수용된 180만명의 외계인들을 혐오한다. 마침내 강제철거 이주 작전이 민간군사기업 엠엔유(MNU, 멀티내셔널 유나이티드)에 의해 강행된다. 지휘에 나선 유약한 남자 비커스는 외계인 집에 무단 침입했다가 정체 모를 점액에 노출된다. 그리고 유전자 변이에 의한 카프카적 변신이 시작된다. 이제 공공의 적이 된 비커스가 숨을 곳은 9구역뿐이다.

<디스트릭트 9>의 파괴력은 관점의 이동에서 나온다. 외계인이 등장하는 통상의 영화들은 미스터리로 시동을 건다. 그들은 어디서 무슨 목적으로 왔으며 지구인에게 무슨 일을 할까를 묻는다. 교류일까, 정복일까? 그러나 <디스트릭트 9>은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을 묻는 대신 번연히 예측할 수 있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인류가 역사 속에서 그들끼리 저질러 온 일, 힘없는 이방인을 대접한 방식을 근거로, 외계인 난민이 정착한 이후 상황을 척척 그려낸다. 지구인은 외계인에게 들어가는 세금을 아까워하고 재산권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사실을 악용한다. 동물의 권리를 지키려는 집단도 존재하는 사회답게 한구석에선 인권단체가 목소리를 낸다. 힘 있는 자들은 기만적인 이주 프로젝트를 행하는 한편, 범죄 조직은 외계인의 폐쇄적 상황을 악용해 암거래로 막대한 이득을 취한다. 급기야 선택적으로 감염되는 바이러스로 종족을 몰살시키자는 아이디어가 나온다. 이 모든 세부는 너무도 그럴듯해 등골이 서늘하다. ‘아파르트헤이트’나 ‘나치’, ‘종족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이름을 한 번도 호명하지 않으면서도 <디스트릭트 9>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 모든 악몽의 재발 가능성을 마음속으로 저울질하게 만든다.

비커스의 신체는 러닝타임 내내 인간에서 외계인의 그것으로 고통스럽게 변해간다. <디스트릭트 9>은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역지사지의 관점 이동을 위해 치러야 하는 값을 은유한다. 비커스는 원래 정의로운 인물이 아니다. 철거에 앞장선 꼭두각시였던 평범한 남자는 손톱이 빠지고 살점이 뜯겨나가고 피부가 갑각으로 변하는 신체적 붕괴를 통해, 외계인의 자리로 끌려가고 나아가 기계와 일체가 되는 지경에 이른다. 기계를 입음으로써 그는 수백 발의 총알을 맞고 또 맞는다. 마지막 액션 시퀀스의 과잉한 유혈은 내러티브의 요구를 훌쩍 뛰어넘으며 우리에게 뭔가를 호소하고 있다. <디스트릭트 9>의 절정은 고어영화처럼 처절한 동시에 사회 비판 다큐멘터리만큼 둔중하다.

김혜리 <씨네 21>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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