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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디스트릭트 9’ 휘발성 강한 연민

등록 2009-10-25 17:51

‘디스트릭트 9’ 휘발성 강한 연민
‘디스트릭트 9’ 휘발성 강한 연민




허지웅의 극장뎐 /

억압당하는 소수의 사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에 괴물만한 소재도 없다. 흔히 영화 속 괴물은 퇴치의 대상이다. 그 비정상적인 존재 자체로 정상적인 세계의 질서를 교란하고 지성을 모욕한다. 이때 괴물은 비정상적인 것, 낯선 것, 외부로부터 온 타자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낯선 것은 언제나 공포를 동반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괴물을 없애거나, 혹은 억압하려 노력한다. 마침내 괴물이 제거되거나 잠시 그 기능을 정지하는 순간 세계는 평화를 회복한다. 잠시 이성을 잃었던 문명은 차분한 표정을 되찾는다. 속편 전까지만.

<디스트릭트 9>은 잘 만든 에스에프(SF) 영화다. 호러도 그렇지만 특히 에스에프는 사회 반영적인 성격이 가장 짙은 장르다. 이 장르는 영화를 보는 관객의 이해관계가 전복되길 기대한다. 그것을 위해 시공간을 초월한, 혹은 우리들의 합리로 설명할 수 없는 외부의 존재가 침범해왔을 때 그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디스트릭트 9>의 경우 현실에서 이주노동자(타자)를 박해하는 관객이, 영화 속의 외계인(타자)에게 연민을 품을 것을 의도한다.

<디스트릭트 9>은 외계인(비정상)을 관리하던 주인공(정상)이 그들을 돕게 되고 끝내 외계인(비정상)이 되기까지 과정을 숨 가쁘게 그려낸다. 그 자체로 모세면서 바울이기도 한 주인공은 인간과 외계인의 입장을 함께 경험한다는 점에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보다 효과적인 캐릭터다. 관객들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에게 연민을 갖고 그에게 폭력을 가하는 정상인들에게 분노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타자에게 품을 법한 일시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에 불과하다. <디스트릭트 9>의 경우 주인공은 정상과 비정상, 박해하는 자와 박해당하는 자의 이해관계를 번복한다. 그와 함께 관객이 동일시하는 대상 또한 정상에서 비정상으로 확연히 이동한다.

보수화된 사회는 이런 식의 전복적인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진보적인 내용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사회를 지탱하는 데 필수적인 이데올로기에 역주행하거나 의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용산의 망루에 불길이 치솟았을 때,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말은 문학적이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위협이 될 수 없었다. 생존을 위해 질서를 부정한 그들은 티브이 저편의 사람들에게 이미 비정상적인 타자이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슬퍼 보일 수는 있어도 내 일처럼 반응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 와중에 <디스트릭트 9>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아주 사소한 계기로 전환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영화 속의 괴물은 언뜻 제거된 것 같아도 결코 죽지 않는다. 억압당하는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 외계인도 괴물도, 망루의 절규도 돌아온다. 그것이 돌아왔을 때, 우리는 과연 어디 있을까.

허지웅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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