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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앳된 얼굴에서 당혹스런 연기가…

등록 2009-10-25 20:03

배우 서우(24)
배우 서우(24)
‘파주’ 주연 서우에게 쏟아지는 찬사




배우 서우(24)의 얼굴엔 마치 우주가 들어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삼라만상의 흥망성쇠를 표현하라고 해도 정말 해낼 것만 같다. 영화 <파주>에서 첫 주연을 맡은 서우는 인간 내면의 미묘한 떨림을 한 뼘 얼굴로 폭발시킨다. 그 얼굴을 클로즈업한 영화의 모든 장면은 카메라를 울려버릴 듯 격렬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중학생, 고등학생을 거쳐 20대 초반까지 8년 세월의 변천이 한 배우의 얼굴에서 완벽하게 체현되는 걸 보는 건 놀라운 일이다.

‘8년 성장과정 완벽한 체현’ 평가에
“너무 어렵고 답답해…많이 깨졌죠
이제 연기 공부 제대로 시작할 생각”

정작 본인은 “잘못 보셨어요. 편견이에요.”라며 짐짓 겸손해하지만, 그의 연기력은 주변 사람들의 증언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서우를 발견한 영화인 <미쓰 홍당무>의 제작자 박찬욱 감독은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드는, 어디서 저런 애가 이제 나타났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배우”라고 했고, <파주>에서 그와 함께 연기한 이선균은 “교복이 잘 어울리는 서우가 20대의 차분함을 연기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희한하게 카메라가 돌아가면 성숙미가 나왔다. 놀랍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서우를 향한 이들의 찬사가 입에 발린 마케팅용 수사가 아니라는 것은 <파주>를 보면 알 수 있다. 서우는 “성장기를 확연히 보여주려고 노력했다”며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는 중학생, 자기가 어른인 양 새침 떼고 요염한 척하는 고등학생, 다 커서는 털털하게 보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붓길이 닿기가 무섭게 먹물을 빨아들여 순식간에 진경산수를 펼쳐놓는 화선지 같은 배우. 이 작은 체구의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걸까?

서우는 연예계 인맥이 있는 삼촌 덕에 손쉽게 배우 세계에 들어섰다. “처음엔 철도 없고, 말도 안 들을 것 같고, 열심히 하지도 않을 것 같아서 계약도 하지 않고 지켜만 보던” 소속사 대표가 대사가 별로 없다는 이유로 부담 없이 출연시킨 영화가 <아들>(장진 감독, 2007)이었다. “연기가 이런 거였어?”라는 생각이 들면서 배우가 되고 싶다고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미쓰 홍당무>(이경미 감독, 2008)부터였다. 그리고 세 번째 필모그래피를 주연으로 장식하게 됐다.

“어렵게 (배우) 되는 친구들한테 미안하죠. 그런데 사실은 그래서 더 힘이 많이 들어요. 현장에서 울고 깨지고 하다 보면 (연기) 공부 안 한 게 창피하죠.”


서울 강남에서 자란 그는 다섯 살 때부터 피겨스케이팅과 무용을 배웠다. 교복이 잘 어울리는 이유도 “중학교 때까지 한국무용을 계속했기 때문”이라는 게 스스로의 생각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뭔가 열심히 해 본 적이 없어요. 처음엔 집에서 (배우 되는 걸) 많이 반대하셨는데, 이젠 철부지 막내가 연기하면서 철드는 모습, 사람 되는 과정을 흐뭇하게 보고 계셔요.” 평생 딱 한 번 열심히 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거기서 재능을 발견한 행복한 경우다.

타고난 연기의 달인이라고 생각되는 서우도 영화를 찍으면서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연기를 원하는 박찬옥 감독은 구체적인 연기 지도 대신 “능동적인 배우가 되라”고 주문했다. “찍을 때 되게 힘들었거든요. 너무 어렵고 답답해서,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니까 너무 행복해요. 이겨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 그때 포기했다면 정말 후회했을 것 같아요. 감독님이 자랑스러워요.”

내년부터는 연기 공부를 시작할 계획이다. 친구들과 같이 무대도 만들고 시나리오도 써보려 한다. “평생 연기하다 죽고 싶다”는 이 당찬 배우에게 한국 영화의 미래를 걸어보면 어떨까?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파주’는 어떤 영화?

박찬옥 감독이기에 가능한 ‘감성 포착’


영화 ‘파주’
영화 ‘파주’
영화 <파주>는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가장 처절한 드라마를 갖고 있는 사랑 이야기다. <질투는 나의 힘>으로 섬세한 심리 묘사에 발군의 역량을 선보인 바 있는 박찬옥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정처없이 흩날리는 인간의 감정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영화 포스터가 암시하는 야한 멜로물을 생각하고 극장을 찾았다간 낭패 볼 가능성이 높다.

최은모(서우)는 공부방 선생님으로 처음 만난 김중식(이선균)을 향해 설레는 감정을 갖지만, 언니(심이영)가 중식을 흠모하자 오히려 중식을 미워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감정의 바늘은 방향을 찾지 못한 나침반처럼 무장 흔들려만 가고, 사랑과 증오, 분노와 의혹 사이에서 번민이 거듭된다. 학생운동권 출신의 중식은 정의감 넘치는 열혈 청년이지만 욕망에 쉽게 굴복하는 나약한 청춘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1990년대 중반의 세계화 바람 속에서도, 운동권을 떠나지 못하고 남을 위해 살고 싶어 했던 한 청년을 바라보는 소녀의 관찰기이자 성장담이다.

박찬옥 감독은 이 영화의 현재를 시나리오를 처음 구상하기 시작한 2003년으로 묶어두고 3~8년 전의 과거로 넘나든다. 플래시백을 통해 기억 속 상처를 꺼내는 이 영화는 90년대 초반 발표된 최윤의 단편소설 <회색 눈사람>의 쓸쓸한 정서를 떠올리게 한다. 안개 자욱한 저기압의 도시, 개발도상의 불온한 이미지는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와 닮았다. 플래시백 구조가 꼭 필요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멜로답지 않은 스릴러적 기운을 증폭시키는 구실을 하는 건 분명하다.

박 감독은 감정의 복잡한 양상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영화적 장치를 통해 해석의 여지를 둠으로써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열어놓는다. 이창동·홍상수 감독 같은 지성파 감독의 대열에, 이제 박찬옥이라는 이름을 포함시켜야 할 것 같다. 29일 개봉.

이재성 기자, 사진 명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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