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훈 주연 ‘닌자 어쌔신’
[리뷰] 정지훈 주연 ‘닌자 어쌔신’
영화 <닌자 어쌔신>이 시작되면 바로 목이 동강나고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잔인한 장면들을 만나게 된다. <아이를 동반한 검객> 같은 일본 액션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이 영화의 제작자이자 감독인 워쇼스키 형제와 제임스 맥티그가 역시 함께 만들었던 <브이 포 벤데타>와는 전혀 다른 질감이다. 그래픽 노블(소설처럼 길고 정교한 줄거리의 만화 장르)의 정연한 이미지와 철학을 지나치게 서술적으로 풀었던 <브이 포 벤데타>의 반대편에 선 듯한 <닌자 어쌔신>은 척 노리스의 초기작과 동양의 싸구려 액션영화를 뒤섞은 듯 활기차면서도 촌스럽다.
워쇼스키 형제는 홍콩·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오타쿠(한 분야의 지독한 마니아를 일컫는 일본말)다. <매트릭스>에는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 등 일본 애니메이션과 홍콩 무술영화의 흔적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그리고 <달려라 번개호>의 실사판인 <스피드 레이서>를 보면 워쇼스키 형제의 궁극적인 지향점을 알 수 있다. <킬 빌>의 틴 타란티노처럼, 워쇼스키 형제는 자신이 매료되었던 영화를 재현하며, 보고 싶은 영화를 직접 만드는 마니아적인 감독이자 제작자인 것이다.
<닌자 어쌔신>의 이야기는 지극히 단순하다. 천년의 역사를 지닌 암살집단 오즈누, 오즈누를 배신한 최고의 닌자 라이조, 오즈누의 정체를 알아차린 유로폴 직원 미카. 그들이 얽히는 과정에서 화려한 액션이 펼쳐진다. 사슬에 연결된 짧은 검과 장검, 수리검 등 갖가지 무기와 장애물을 활용하여 이동하는 ‘파쿠르’ 기술을 이용한 날쌘 움직임 등 액션만으로 본다면 <닌자 어쌔신>은 아주 멋지다. 닌자의 육체로 개조된 비의 액션 연기 역시 훌륭하다. 다만 사건과 인물들의 감정은 지나치게 전형적이어서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고, 조연들의 연기도 과장되고 느슨하다. 즉 <닌자 어쌔신>은 화끈한 액션을 좋아하는 특정 관객을 대상으로 한 마이너한 액션영화다. 미카의 캐릭터가 흑인인 것도, 홍콩 액션영화의 주요 관객이 흑인인 점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렇다면 비의 첫 번째 할리우드 주연은 과연 성공한 것일까? 물론이다. <닌자 어쌔신>은 비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춤으로 단련된 비의 육체는, 과격한 액션 연기에서도 카리스마를 과시한다.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닌자 어쌔신>이 성공을 거둔다고 해서 비가 곧 할리우드의 톱스타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비가 할리우드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잘 풀리면 장 클로드 반담과 스티븐 시걸이다. 겨우 그거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때 장 클로드 반담과 스티븐 시걸은 개봉하는 영화마다 북미 흥행 1위를 차지했다. 할리우드 데뷔 전부터 인지도가 있었던 청룽(성룡)과 리롄제(이연걸)가 뒤를 이어 액션 스타가 되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아무리 액션영화라고 해도, 아시아 배우가 서양 관객을 매료시키는 톱스타가 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다만 비에게는 워쇼스키 형제라는 강력한 지원군이 있다. 워쇼스키 형제가 지속적으로 동양적인 액션영화를 양산해낸다면, 하나의 장르로서 유지될 수 있다면, 비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혹시 모르지. 그러다 보면 언젠가 백인 여배우와 러브신도 하게 될지. 26일 개봉.
김봉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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