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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솔로이스트’가 뻔뻔하지 않은 이유

등록 2009-11-22 18:54

영화 ‘솔로이스트’
영화 ‘솔로이스트’




허지우의 극장뎐 /

우리는 모두 악기 하나씩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라는 이름의 이 악기는 사람마다 다른 소리를 낸다. 자기 악기의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싫어하는 사람들은 자기 악기를 개조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바꾸고, 고치고, 두드려 개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은 또한 타인의 악기마저 그렇게 바라보기 마련이다. 그래서 곧잘, 다른 사람의 악기를 연주하려 한다.

<솔로이스트>는 의외로 사려 깊고 예민한 영화다. 의외라는 단서를 붙인 건 이 영화의 설정이 빤한 것이기 때문이다. 두 남자가 있다. 한 남자는 소위 잘나가는 기자이자 칼럼니스트다. 그는 칼럼의 소재를 찾아 날마다 엘에이 시가지를 헤집고 다닌다. 다른 남자는 노숙자다. 노숙자는 한때 줄리아드의 촉망받는 천재 음악가였다. 그러나 정신분열 증세를 이기지 못하고 학업을 그만두었다. 칼럼니스트는 노숙자의 이야기가 썩 괜찮은 아이템이라는 걸 동물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접근하고, 그의 이야기를 기사로 쓰기 시작한다.

이런 유사 헬렌 켈러 이야기의 익숙한 결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노숙자는 칼럼니스트에게 구제되어야 할 대상이다. 눈부신 재능을 길거리에서 소모할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온전한 정신을 되찾고 무대에 서야 한다. 칼럼니스트는 노숙자를 그의 세계에서 끄집어내 무대에 올릴 것이다. 그리고 정상인이 된 그의 무대 위 연주를 바라보며 울거나, 미소 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볼 때마다 늘 의문이 생긴다. 정상성을 강요한 사람과 강요당한 사람 가운데, 어느 누가 구제하고 구제받은 것인가.

<솔로이스트>의 결말은 우리가 예상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익숙한 설정의 영화가 익숙하지 않은 전개를 보일 때, 우리는 대개 당황한다. 장황하다 느끼기도 한다. <솔로이스트>가 그렇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장황하게 느껴질지언정 거짓된 우정과 교감을 전시할 만큼 얕거나 뻔뻔스럽지 않다. 서로를 개조하려 드는 우정은 우정이 아니다. <솔로이스트>의 주인공들은 그것을 깨달아간다.

결국, 친구를 연주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무대에 올릴 수도 없는 것이다. 거기에 사랑이라는 전제가, 우정이라는 단서가 붙더라도 마찬가지다. <솔로이스트>의 표면적인 연주자는 노숙자다. 그러나 실제적인 연주자는 칼럼니스트였다. 그는 타인이라는 이름의 악기를 연주하려 했다. 그러나 그래서는 좋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상대가 좀더 일반적이고 정상적이길 바라는 우리의 강요는 결국 자기만족을 위한 폭력일 수밖에 없다. 결국 모두가 서로를 연주하길 포기하고 충실한 청중을 자처했을 때 그들의 표정은 한결 평안하다. 교감이 흐르고 있다. 비로소 거기, 친구가 보인다.

허지웅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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