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는 행복합니다’
역설의 영화 ‘나는 행복합니다’
입술이 부르튼 남자가 입술이 부르튼 여자를 바라본다. 초점을 잃고 흔들리는 눈동자가 중심을 잃고 텅 빈 눈동자를 바라본다. 윤종찬 감독의 <나는 행복합니다>는 부르튼 입술을 가진 두 사람의 눈동자가 만나는 영화다. 지치고 남루한 둘은 동병상련을 직감한다.
현실 포기한 과대망상 남자
빚에 짓눌린 신용불량 여자…
‘정신줄 놓은 현실’ 꼬집어 ■ 그 남자, 만수 하나뿐인 형은 오늘도 도박에 빠져 있다. 밑천이 떨어지면 집으로 쳐들어와 돈을 빼앗아 간다. 이제 마지막 남은 가게(카센터) 문서를 내놓으란다. 싫다고 하면 부수고 때린다. 엄마는 아예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치매에 걸린 엄마는 집을 나갔고, 도박 빚에 몰린 형은 목숨을 버렸다. 아, 나도 엄마를 따라가고 싶다, 고 느끼는 순간 천국에 도착했다. 이곳에선 내가 억만장자다. 스위스 은행에 내 계좌가 있다. 하얀 종이에 내가 금액을 쓰고 사인만 하면 바로 현금처럼 쓸 수 있다. 이곳을 나가기 싫어졌다.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여자도 생겼다. 정신병원 간호사다. ■ 그 여자, 수경 아빠가 아프다. 돌볼 사람은 나밖에 없다. 병원비 대느라 신용은 망가졌다. 월급 차압까지 들어왔다. 같이 일하는 의사는 나를 쫓아내고 싶어 안달이다. 사귀다 헤어진 내가 불편한 것이다. 이제 다른 간호사와 대놓고 사귄다. 병간호하랴 야근하랴 제정신이 아닌데, 이 남자까지 나를 괴롭힌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제정신 아닌 사람들이 치료를 받는 곳이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저마다 한 군데씩 빈방을 갖고 있다. 위급해지면 그 방으로 숨는다. 새로 온 만수씨는 ‘백지 수표’라는 방을 갖고 있다. 어제는 그가 준 ‘백지 수표’로 피자를 시켜줬다. 자기만의 방에 숨은 그가 부럽고 안쓰럽다. ■ 절절한 ‘가난’ 이야기 이들은 다만 바라본다. 단 한번의 신체 접촉도 없는데도 진한 감정의 여운을 느끼게 하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역설이 이 영화에 있다. 이청준의 단편 소설 <조만득씨>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멜로를 하위 플롯으로 깔고 ‘가난’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환자의 병원비와 간호를 온전히 가족이 떠맡아야 하는 무책임한 ‘독박’ 시스템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과장하지 않고 무덤덤하지만, 이토록 절실하게 가난을 말하는 영화가 지금까지 있었나 싶다. 상대적으로 무미건조한 원작이 감독과 배우들의 정신과 육체를 통과해 심금을 울리는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최악의 상황에 놓인 두 남녀의 눈빛 멜로. 먹먹한 슬픔에 가슴이 멍해진다. 26일 개봉.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디씨지플러스 제공
빚에 짓눌린 신용불량 여자…
‘정신줄 놓은 현실’ 꼬집어 ■ 그 남자, 만수 하나뿐인 형은 오늘도 도박에 빠져 있다. 밑천이 떨어지면 집으로 쳐들어와 돈을 빼앗아 간다. 이제 마지막 남은 가게(카센터) 문서를 내놓으란다. 싫다고 하면 부수고 때린다. 엄마는 아예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치매에 걸린 엄마는 집을 나갔고, 도박 빚에 몰린 형은 목숨을 버렸다. 아, 나도 엄마를 따라가고 싶다, 고 느끼는 순간 천국에 도착했다. 이곳에선 내가 억만장자다. 스위스 은행에 내 계좌가 있다. 하얀 종이에 내가 금액을 쓰고 사인만 하면 바로 현금처럼 쓸 수 있다. 이곳을 나가기 싫어졌다.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여자도 생겼다. 정신병원 간호사다. ■ 그 여자, 수경 아빠가 아프다. 돌볼 사람은 나밖에 없다. 병원비 대느라 신용은 망가졌다. 월급 차압까지 들어왔다. 같이 일하는 의사는 나를 쫓아내고 싶어 안달이다. 사귀다 헤어진 내가 불편한 것이다. 이제 다른 간호사와 대놓고 사귄다. 병간호하랴 야근하랴 제정신이 아닌데, 이 남자까지 나를 괴롭힌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제정신 아닌 사람들이 치료를 받는 곳이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저마다 한 군데씩 빈방을 갖고 있다. 위급해지면 그 방으로 숨는다. 새로 온 만수씨는 ‘백지 수표’라는 방을 갖고 있다. 어제는 그가 준 ‘백지 수표’로 피자를 시켜줬다. 자기만의 방에 숨은 그가 부럽고 안쓰럽다. ■ 절절한 ‘가난’ 이야기 이들은 다만 바라본다. 단 한번의 신체 접촉도 없는데도 진한 감정의 여운을 느끼게 하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역설이 이 영화에 있다. 이청준의 단편 소설 <조만득씨>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멜로를 하위 플롯으로 깔고 ‘가난’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환자의 병원비와 간호를 온전히 가족이 떠맡아야 하는 무책임한 ‘독박’ 시스템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과장하지 않고 무덤덤하지만, 이토록 절실하게 가난을 말하는 영화가 지금까지 있었나 싶다. 상대적으로 무미건조한 원작이 감독과 배우들의 정신과 육체를 통과해 심금을 울리는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최악의 상황에 놓인 두 남녀의 눈빛 멜로. 먹먹한 슬픔에 가슴이 멍해진다. 26일 개봉.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디씨지플러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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