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 따라 인생을 산다면
김혜리의 카페 뤼미에르 / 뉴욕에 사는 서른 살 공무원 줄리 파월(에이미 아담스)은 말한다. “요리를 하지 않으면 내겐 남편과 고양이와 직장밖에 남지 않을 거야.” 당신은 의아할 지도 모른다. ‘남편과 고양이와 직장 밖에’라고?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줄리가 굶주려하는 것은 인생을 통제하고 있다는 확신이다. 어떤 방향 감각도 없이 수면 위를 부유하고 있다는 불안을 정복하기 위해, 줄리는 365일 안에 524가지 레서피를 조리하고 경험담을 블로그에 쓴다는 버거운 기획에 달려든다. 잠깐. 결혼과 직장, 애완동물은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 아니었던가? 물론 본인의 결정이었다. 줄리는 여기서 그러니까, 꼭 집어 말해서 창작자로서 살고 싶은 욕망을 선언하는 것이다. 한데, 524가지 레서피는 줄리의 창조물이 아니다. 프랑스 요리의 전도사 줄리아 차일드(메릴 스트립)가 쓴 <프랑스 요리 예술의 대가가 되는 법>이 출처다. 줄리는 줄리아의 요리를 재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전기적 자료들을 탐독하며 줄리아의 성격과 태도에 빠진다. 요컨대 줄리아는 줄리에게 대문자의 ‘자아’다. (공교롭게도 줄리의 ‘호적상’ 이름은 줄리아다.) 줄리 파월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책을 읽는 동안 저자와 독자 사이에 일종의 평행 우주가 성립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글은 생각의 지도와 같아서, 독자는 저자의 사유가 거친 여정을 시간차를 두고 뒤밟아간다. 좋은 독서는 믿을 만한 가이드를 따르는 쾌적한 하이킹에 비할 만하다. 결과적으로 독자는 저자에게 다정한 동반자 의식을 품게 된다. (“당신이 통과한 골짜기와 다리를 쉰 그늘을 나도 알고 있어요!”) <줄리&줄리아>에 무리수가 있다면 원저자와 그를 목적의식적으로 참조한 제2저자를 동등한 비율로 한 영화에 넣었다는 것이다. 관객은 불가피하게, 줄리를 뛰어넘어 곧장 줄리아를 뒤쫓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된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정신적으로 연결된 다른 시대와 장소의 여성들을 다룬 또다른 영화 <디 아워스>의 경우, 그 배열이 무의식적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앙상블에는 마치 별들이 모여 이룬 성좌처럼 우주의 섭리를 드러내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반면, 줄리에게는 스스로 별이 되기 위한 스토리가 (아직) 부족하다. 물론 줄리 파월도 모르는 바 아니다. “나는 줄리아에게 아무런 권리가 없다. 물에 빠진 사람이 자신을 물에서 건져준 사람에게 어떤 권리를 가질 수는 없는 까닭이다.” <줄리&줄리아>의 난점은 레서피라는 물건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레서피는 부엌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최악의 사태를 막아주고 시간을 절약해 줄 수는 있지만, 요리를 완결하는 직관과 영감을 찾는 건 요리하는 사람 각자의 몫이다. 게다가 인생이란 요리에 이르면 반죽의 재료부터 저마다 다른 것이다. 김혜리 <씨네 21>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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