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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땅의 여자’? 농촌 알았다면 못찍을 영화

등록 2009-12-23 21:22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권우정 감독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권우정 감독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권우정 감독
농부의 아내에 들이댄 카메라
“도시-농촌간 고리 잇고 싶었다”




서른셋 노처녀가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시골로 간 까닭은?

독립영화 감독 권우정씨가 경남 일대 농촌에서 1년 반을 보내며 여성 농민들의 속내를 속속들이 담아 <땅의 여자>란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최근 ‘서울독립영화제 2009’에서 대상을 받은 이 작품은 각종 외국 영화제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가 따라다닌 ‘언니들’은 소희주(37·진주시 지수면), 강선희(39·합천군 가회면), 변은주(37·창녕군 남지읍)씨. 이들은 부산대 같은 동아리 회원 출신이다. 거의 같은 시기 반경 1.5㎞ 농촌으로 들어가 농부의 아내가 되었다. 귀농 11년차. 하지만 애숭이다. 노인들만 남은 탓이기도 하고 실제 배추 뿌리를 헤집거나 엉뚱한 수박 순을 치는 얼치기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2005년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홍콩 원정단 100여명 가운데 일원이었다. 강씨는 시어머니 권순남(69)씨와 동행해 단연 눈길을 끌었다. 영상단으로 이들의 활동을 기록한 권 감독은 불현듯 시위꾼(?)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사는 농촌의 삶이 궁금해졌다.

22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권 감독은 영화입문 10년차답지 않게 앳됐다. 세상에서 요구하는 나잇값과 무관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일까. 영화를 찍기 전 파트타임 학원강사를 뛰었고, 영화를 찍고 난 지금 다시 돈벌이를 해야 한다.

“농촌을 잘 알았더라면 오히려 방해가 됐을 겁니다. 궁금증이 작업의 동력이었습니다. 진짜 농촌의 문제를 다루려면 농부가 되어야 했겠죠.” 관찰과 인터뷰로 구현된 등장 인물들이 뚜렷한 것은 그런 까닭이지 싶다.

<땅의 여자>에서 소씨는 발을 동동 구르는 남편과 달리 굶어죽기야 하겠냐는 낙천적 성격을 보여준다. 변씨는 시어머니와 남편 사이에서 힘들어하면서도 스스로 자존감을 찾아가는 꿋꿋함이, 강씨는 아이들 학습담당에서 진짜 농민이 되어가는 과정이 두드러진다.


권씨가 잡아낸 3인의 사계에는 농민들의 상경시위와 국회의원 선거가 끼어 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차단돼 연좌농성을 하는 진주 농민회원들 가운데 소씨의 천진함이 눈에 띄고, 민노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한 강씨와 며느리를 위해 논두렁밭두렁 선거운동을 하는 권씨가 분주하다.

수입개방으로 생산비도 못 건지는 농촌, 그것을 타개하자는 호소가 10% 득표에 그치는 현실은 언뜻언뜻 남루하다.

“세 여성 농부가 세대 간 다리가 된 것처럼 저 역시 끊어진 도시와 농촌 사이의 고리를 잇고 싶었어요.”

슈퍼마켓에서 먹거리를 고르는 도시인들한테 농촌은 존재하지 않거나, 여의도 국회 앞을 시끄럽게 하는 무지랭이들의 그을린 얼굴일 터. 경남의 거기에 여성 농민이 있고, 그들은 소씨 변씨 강씨 성이고, 아이와 남편과 시어머니가 있는 여성임을 권 감독은 말하고 싶은 것이다.

집어들기만 하면 되는 쌀과 배추와 토마토에 소씨 변씨 강씨 성 농부의 사계절이 들어 있음을 상기시키고 싶은 거다.

“살아 있다면 희망도 답도 있지 않을까요. 그것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겁니다.”

권 감독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촌의 가치를 믿듯이 관객층이 점점 늘어나는 독립영화의 미래를 믿는다고 했다. <땅의 여자>는 훗날 소씨, 변씨, 강씨는 물론 권씨와 더불어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니라”라는 후일담을 거느린 기록물이 될 것이다.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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