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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블로그] 영화 ‘아바타’의 상상과 성찰

등록 2010-01-05 16:09

“2010년, ‘3D’가 폭발한다”는 말들이 들린다. 영국 BBC 인터넷 판은 29일(현지시간)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해 3D가 영화부문을 넘어 2010년 노트북이나 게임기 등 다양한 분야로 적용이 확대될 것이라고 보도했다고 한다. 남아공 월드컵은 올해 3D TV 판매량을 빠르게 늘리는 강력한 엔진으로 떠올라 있다고도 한다. 3D가 미치는 사정권의 확장을 불 보듯 예고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들리는 때에 만난 영화 ‘아바타(Avatar)’는 사람을 압도하는 데가 있었다. 가히 환상적이라는 찬탄을 입을만한 화면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개봉 17일만에 전 세계적으로 1조원이 넘는 흥행수익을 올렸다거나 국내에서도 개봉 17일만에 600만 명의 관객을 모아 최고 흥행작으로 떠올랐다는 보도는 그리 놀랍지가 않다. 그러므로 “SF 판타지의 신기원이 될 영화”라거나 “직접 가서 보라”는 주문이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공감을 얻기도 한다. ‘아바타’가 선사하는 영상의 탁월함과 놀라움을 기억하면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12년의 침묵을 깨고 돌아와 내 놓은 이야기의 웅대한 서사와 상상에 대해 몇 가지 주목해 보았다.

‘판도라’는 영화 ‘아바타’의 행성이다. 인류가 발견해 낸 새로운 행성이며, 자장(磁場)으로 거대한 바위가 공동에 뜬 채 이동하며, 밤이 되면 수많은 생명체가 내부의 화학반응으로 빛을 내뿜으며 춤추는 곳이다. 그곳에는 300미터 이상의 나무들이 자란다. 생명력이 넘쳐나며 아름다운 공간이다. 오로지 희망만 남아있다는 판도라 상자를 누군가가 다시 열어본다면 영화 ‘아바타’의 행성 판도라를 쏙 빼닮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행성 판도라는 ‘언옵타늄’이라는, 킬로그램에 2천만 달러 이상의 가치를 가진 광석을 가졌으므로 그 속에 불행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인간의 탐욕은 4분 이상 노출되면 생존할 수 없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원주민 ‘나비(Na’vi)’의 외형에 인간의 의식을 주입하여 원격 조종이 가능한 새로운 생명체 ‘아바타’를 개발해 낸다. 나비와 동일한 신체 조건을 갖추고 있어 판도라 행성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런데 이러한 상황의 설정은 아바타 자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전쟁과 악으로부터 판도라를 지켜내기 위한 서사적 장치로 기능하게 된다. 영화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바타’의 문제의식에 이르게 된다.

세계와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것을 영화 ‘아바타’는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에너지의 고갈에 관한 문제이다. 판도라의 거대한 나무 아래에 매장된 광석으로 지구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거나 막대한 이익을 실현하려는 탐욕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약탈적 탐욕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누구여야 하는가에 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영화 속의 주인공 ‘제이크 셀리(샘 워딩튼)’는 과학자였던 쌍둥이 형이 불의의 사고로 죽었기 때문에 유전자가 일치한다는 이유로 아바타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그가 영화에서 문제적 인물로 부상할 수 있는 것은 아바타의 유전자 제공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전장에서 하반신이 마비된 전직 해병대원이라는 점에 있다. 전투에서 화려하게 영웅적 무공을 세운 그는 잃었던 다리를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유혹이 교차하는 가운데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그는 판도라 행성의 아름다움과 토착민 나비족이 보여주는 생명체들의 유대의식과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방식에 자연스럽게 동화된다. 그에게 약탈과 침략과 파괴가 사악한 그 무엇으로 인식되는 과정이 선명하게 제시되지는 않으나 그의 행위와 결단에서 우리는 그가 가진 사유의 단면을 어렵지 않게 포착해 낼 수 있다. 그것은 전장에서 하반신을 잃어버린 자가 지녔음직한, 지난 전장에서의 잔인함에 대한 죄의식에서 비롯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처받은 한 인간이 그 상처의 트라우마를 넘어 휴머니티를 구현하는 이야기는 그래서 감동적이다. 나아가 그의 변신에는 이 세상의 억압과 착취를 종식시킬 수 있는 진정한 주체가 어떠한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관해 성찰하게 하는 울림이 담겨 있다.


다음으로 영화 ‘아바타’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소통과 진정성”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영화가 보여주는 상상력으로 소통의 확장된 가치를 경험하며 그것의 진정성에 공감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제이크 셀리’는 우여곡절 끝에 나비족의 여인 ‘네이티리(조 샐다나)’와의 사랑에 빠지며 행성 판도라를 지켜내는 주역이 된다. 그 과정은, 만남을 통해 관계 맺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현대인의 일상과 차원이 다른 것이다. ‘제이크 셀리’는 그의 아바타를 통해 나비족을 설득하고 안전하게 ‘언옵타늄’을 채굴할 수 있도록 지극히 중요한 임무를 띠고 있다. 그러나 그는 ‘네이티리’와 나비들이 보여주는 생명에 대한 외경과 평화에 대한 순연한 삶의 방식에 깊게 공감하게 된다. 그러한 공감은 믿음에 관한 다른 명명이며 극히 짧은 문장 “I see you(당신을 봅니다.)”로 간결하게 드러난다. 그 말은 믿음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비록 아바타로서 생명이 단속적이긴 하나 자기 운명을 거역하지 않고 고스란히 안고 가겠다는 인간 이상의 의지가 투영되어 있다. 단언하건대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전언(傳言)이 짧은 이 한 마디 속에 응결되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는 그가 머무르는 기지를 버리고 불구덩이 직전의 지옥의 행성 판도라로 뛰어들며 목숨을 내건 결전을 준비한다. 그 용기가 평생 한 주인을 섬긴다는 천상의 새 ‘아크란’을 길들이며, 붉은 익룡 ‘그레이트 리오놉테릭스’를 타고 오는 ‘투르크 막토’로 변신케 하는 힘의 원천이 된다. ‘아바타’에서 ‘제이크 셀리’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 감싸는 선택받은 외계인이기도 한 이유가 이러한 그의 진정성에서 나오는 것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가 하고자 하는 싸움에 행성 판도라의 모든 물질과 정령이 참여하며 함께 저항한다. 뭇짐승들이 일어나며 전 판도라가 연대한다. 숲의 나무들, 1조 그루에 이르는 나무의 뿌리가 시냅스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거짓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는 신비의 나무 아래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며 이야기는 진정성을 가진, 소통이 이루어 낸 웅대한 서사가 된다.

특별히 우리가 영화 ‘아바타’를 읽어가다 보면 우리의 시대, 사이버 시대의 네트웍의 연대가 어떠해야 하는지 성찰하게 된다. 아바타에는 시냅스에 관한 진지한 성찰이 틈입해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생명이 다른 또 하나의 생명으로 감각과 지각을 포함한 일체가 전달될 수 있도록 특수하게 분화된 구조를 그들 나비는 지향한다. 그들의 대지에는 1조 그루의 나무가 연결되어 있고, 인간과 자연이 시넵스로 소통한다. 길들여지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하면서 지극히 서로를 배려한다. 신성한 나무 아래에서 그들이 공동의 적에 대항하기 전에 어깨를 걸고, 손을 잡고 연대하는 장면은 가슴 뭉클한 장면이다. 운명을 앞 둔 싸움 앞에서 결연한 생명의 연대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시대를 사는 우리가 웹을 통한 네트웍으로 연결된 것이 이러하지 않겠는지 성찰하게 한다. 분산되어 있으며 각각 자기 일을 해야 하는 시간이 많으나 공동의 관심사에 귀 기울이고 격려하고 배려하거나 슬퍼하고 분노하는 것이 행성 판도라 나비 종족이 구축하고 있는 저 네트웍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 내밀고, 하나의 분노가 또 다른 분노와 손잡는 방식을 ‘아바타’의 이야기 속에서 만나게 된다.

과학기술자가 미친 사람이거나 자율성을 잃은 존재로 그려지는 흔한 상식을 영화 ‘아바타’는 뛰어넘는다. 과학 기술에 대한 상상을 확장시키는 방식만을 고집하지 않고, 3D로써만 창출 가능한 황홀함을 수단으로 약탈과 침략은 아름답지 않으며 필패한다는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 인류의 미래가 안고가야 할 과학기술에 관한 우려와 공포가, 혹은 제국주의적 약탈과 탐욕이 어떠한 방식으로 해소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만약 행성 판도라가 화염에 불타면서 토착민 나비 스스로 마을에서 마을로 전갈을 넣고 침략자에게 맞서며 연대하는 믿음을 보여주지 못하였다면 극장을 나서면서 3D의 입체영상으로 상기된 우리들의 기억은 훨씬 우울해져야 한다. 불타는 판도라의 죽음을 보고 신음을 들으면서 4대강의 생명체를 생각해야 하고, 아프간에 파병될 군인들의 미래를 생각해 보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악으로 가득찬다 하더라도 여전히 행성 판도라가 보여준 저항과 연대의 서사처럼 인류와 세계에 관한 희망은 여전히 상자 속에 남아있으므로 덜 우울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 ‘아바타’는 3D의 감동이기도 하지만 흉내 낼 수 없는 상상이 몰고 오는 서사의 감동이 더 크다. 감동의 힘은 영상의 힘에서 오는 것 같으나 사실은 카메론 감독의 흉내낼 수 없는 성찰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그리고 그의 상상력이 작동하는 원천은 다름 아닌 지금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중단될 것 같지 않은 악과 야만, 침략과 약탈이 횡행하는 현실을 우리가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와 전망과 관련맺기 때문이다.

판도라의 나비족이 살아가는 그 거대한 나무에 대한 상상은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해 보았다. 소설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바오밥 나무의 그림이 떠올랐다. 나는 영화 ‘아바타’의 상상이 소외되고 여전히 원시의 상태로 남아있는 아프리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지구가 아직 ‘네이티리’의 눈빛처럼 온전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면, 자연과 인간이 진정으로 교감하는 소통의 시넵스를 갖고 있다면 그곳은 어디쯤일까, 덜 때묻고 덜 자본화된 아프리카 같은 곳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사는 이 어떤 곳에 숲의 맑은 정령이 나비처럼 날아다닐 수 있겠는지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생텍쥐페리의 오래 전 생각을 역설적으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들여다 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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