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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그 노래 ‘찔레꽃’ 왜 나를 울리나

등록 2010-01-24 21:04

영화 ‘하모니’
영화 ‘하모니’
새 영화 ‘하모니’
‘살인범’ 김윤진·나문희 모정 열연
한많은 여자 교도소 합창 무대로
감옥서 핀 모정 ‘눈물 바람’ 불러




“엄마 일 가는 길엔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장소는 청주 여자교도소. 아기 재우는 노래가 들린다. ‘금남의 집’에 웬 아기며 웬 자장가? 새 영화 <하모니>는 아이 낳는 장면과 5호실 감방을 비춰주고, 관객들이 같은 방 수형자 6명의 얼굴을 익힐 즈음 사형수 문옥의 입을 통해 노래를 들려준다. 하필 이 노래람?

교도소에 들어와 아이를 낳은 정혜는 외부 합창단의 공연을 보고 감명을 받아 소장한테 합창단 결성을 제안한다. 교도소장은 수감자들의 정서 안정에 좋다며 찬성하고, 정혜는 아이와의 특박이란 조건을 내건다.

이 합창단에 5호실 동료 전원이 동참한다. 즉 의처증 남편의 폭력에 맞서 뱃속의 아이를 지키려다 남편을 죽게 한 고아 출신 정혜(김윤진), 고리채로 피를 말리는 사채업자를 살해한 밤무대 가수 화자(정수영), 실수로 기술을 걸어 애인을 죽게 한 전직 프로레슬러 연실(박준면)이 단원으로 참여하고, 믿었던 제자와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을 목격하고 이들을 살해한 음대 교수 문옥(나문희)이 지휘자로 모셔진다. 어려서부터 성폭행을 해온 의부를 살해한 음대생 유미(강예원)가 뒤늦게 참여해 합창단을 완성한다.

‘이렇게 하야, 우여곡절 끝에 휑뎅그레 썰렁한 교도소에 아름다운 화음이 널리 울려퍼졌으니, 툭하면 다툼에 싸움질이던 청주 여자교도소가 전국 교도소 가운데 으뜸가는 행형기관이 되었다더라’, 하면 완전히 옛날 문화공보부 시절 국가 홍보 영화이거나 잘하면 할리우드 맛이 가미된 <시스터액트>다. 하지만 <찔레꽃>이 어디 예삿노래인가.


영화 ‘하모니’
영화 ‘하모니’
<찔레꽃>은 이태선 작사, 박태준 작곡의 동요 <가을밤>의 곡을 그대로 살려 1972년 가수 이연실이 가사를 새로 붙여 부르면서 널리 애창됐다. ‘엄마’와 ‘밤’과 ‘엄마 꿈’에 꺽꺽 울음을 담은 이연실의 노래는 70~80년대 대학가에서 특히 많이 불렀다. 음유하는 안치환, 흐느끼는 이은미, 동화 같은 임형주 버전이 생겼고, 울먹이며 읊조린 신영옥의 <가을밤> 버전이 추가됐다. 부르기만 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까닭은 노래 한 가운데 엄마가 있어서다.

다시 영화. 교도소 안에서 낳은 정혜의 아이는 법에 따라 18개월 뒤 헤어져야 한다. 합창단이 잘되면 특박을 보내 달라던 것은 하루만이라도 함께 자유의 공기를 마시고 싶어서다. 그래서, 특박을 하게 되는데 마침 그날이 입양날이다. 아이를 보내고 돌아온 정혜는 가슴 한쪽을 저며내는 아픔으로 몸져눕고, 문옥은 “죽고 싶고, 울고 싶어도 웃어라. 니가 웃어야 니 자슥이 웃는다”며 달랜다. 문옥 품에 안겨 우는 정혜의 울음에 “엄마”라는 단어가 섞였다. 자식을 잃고서야 비로소 자신을 버리거나 잃었을 엄마의 심정을 알게 되는 것. 5호실 다른 인물도 엇비슷한 변화를 거친다. 영화 <하모니>는 노래 <찔레꽃>의 정서를 영상에 담쏙 옮겨놓았다.

“가을 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산 길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문화되었던 사형 제도가 부활하고, 사형수 문옥한테도 ‘면회통고’가 온다. 교도관한테 부축돼 긴 복도를 스쳐 멀어지는 동안 5호실에서 시작된 <찔레꽃> 노래는 모든 방으로 전염된다. 아기의 탄생으로 시작한 영화는 엄마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그것은 부활하는 죽음. 눈물바람일 수밖에.

동행이 있다면 자막이 다 올라가고 영화관 불이 켜지도록 움직이지 않는 게 좋다. 상대방의 충혈된 눈을 쳐다보기 민망하다. 한해 분량의 눈물을 다 빼버릴 염려가 있으니 주의할 일.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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