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줄대기 공모전’ 한국영화가 누추해진다

등록 2010-01-31 18:42





허지웅의 극장뎐 /

2007년도 11월의 일이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영화인 대토론회’라는 것이 열렸다. 100명의 원로영화인들이 참여한 이날의 토론에는 세대를 초월한 영화인들의 화합이라는 명목이 붙었다. 그러나 토론은 화합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조희문 당시 인하대 교수는 “오늘날 한국영화계 갈등의 바탕에는 이념적 지향을 달리하는 시각이 작용한다”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로 이어진 지난 10여년은 영화계 입장에서는 과다한 분열과 갈등으로 보낸 시간”이라 설명했다.

조희문 교수와 최공재 독립영화 피디 등이 발제를 맡은 이날 토론회는 한 달 뒤에 있을 대선 결과를 겨냥한 줄서기 성격이 짙었다. 그 모양새가 지나치게 노골적이라 주위에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2007년 12월 19일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2년 하고도 두 달이 지났다. 조희문 교수는 현재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위원장이다. 최공재 독립영화 피디는 최근 영진위 공모로 선정된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운영자인 (사)한국다양성발전협의회의 이사장이다. 정작 독립영화계에서 최공재라는 사람이 무슨 독립영화를 만들었는지, 혹은 저 한국다양성발전협의회라는 곳이 어떤 단체인지 아는 사람은 대단히 드물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하느님이 우리를 위한 어느 거대한 계획을 세워두고 계시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으나 어찌됐든 교훈 하나를 얻을 수 있다. 줄은 잘 서고 볼 일이라는 것.

며칠 전에는 영상미디어센터의 새로운 운영자를 선정하는 영진위 공모 결과가 발표됐다. 2002년 영상미디어센터의 출발부터 줄곧 이곳을 일구어왔고 매우 건설적인 운영 결과를 가져왔던 미디액트(사진)도 이름을 바꿔 공모에 지원했지만 탈락했다. 기존의 성과는 고려되지 않았다. 공모에 선정된 단체는 (사)시민영상문화기구라는 곳이다. 역시나 아무도 들어본 일이 없다. 당연하다. (사)시민영상문화기구는 지난 1월 6일에 설립됐다. 일반적인 세상의 상식으로 우리는 이런 걸 ‘급조’라고 부른다.

문화산업을 당장 눈앞의 돈벌이로 생각한다면 돈도 문화도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영진위와 문화체육관광부는 공모제를 밀어붙였다. 정말 능력 있는 사람들이 선정된다면 문제될 게 없다. 그런데 공모 결과들이 하나같이 어처구니없다. 도대체 기존 운영 성과를 고려하지 않는 공모제라면 지원한 단위들의 어떤 면을 기준 삼아 선정한다는 걸까. 마음?

이번 정부에 줄을 잘 선 사람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로 이어진 지난 10여년이 영화계의 암흑기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1998년 이전의 한국영화계가 이후보다 나았다고 말하는 건 개눈을 박았어도 지나친 주관이다. 이념 때문에 억압 받아왔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분명한 성과들을 무시하고 특정 이념에 편향된 자기 사람들을 챙기고 있다. 그건 실용이나 진흥이 아니다. 그냥 ‘열폭’(열등감 폭발)이다. 허지웅 영화 칼럼니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