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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서른살 피터팬 ‘중산층 대륙’ 횡단기

등록 2010-02-07 18:27

 <어웨이 위 고>
<어웨이 위 고>
[김혜리의 카페 뤼미에르] 어웨이 위 고
“서른셋인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몰라. 우리, 낙오자일까?”

어디서 많이 들어본 푸념이다. <어웨이 위 고>의 동거 커플 베로나(마야 루돌프)와 버트(존 크래진스키)는 출산을 앞두고, 버트의 부모가 손주를 돌볼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자 돌연 불안에 사로잡힌다. 둘은 척 보기에도 학생 시절 생활양식을 별반 바꾸지 않고 30대에 진입한 이상주의자들이다. 그들은 낡은 자동차를 몰고, 허술한 난방을 문풍지로 땜질하는 집에 산다. 고용 시스템에 깊이 발을 넣지도 않는다. 일러스트레이터인 베로나와 전화로 보험 선물을 판매하는 버트는 집에서 일한다. 버트가 전화로 고객을 상대할 때 나이 많은 남자인 척 목소리를 바꾼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곧 태어날 2세로 인해 인생을 재고할 시점임을 절감한 커플은, 아기를 잘 키울 터전과 본받을 사례를 찾아 여행길에 오른다.

북미 대륙 곳곳에서 버트와 베로나를 맞이하는 지인들은 안정된 중산층의 생활을 누리고 있지만 내막은 하나같이 경멸스럽거나 혹은 불행하다. 상사의 가족은 병적으로 천박하며, 교수가 된 유년 시절 친구 부부는 뉴에이지주의에 경도된 속물이며, 그나마 행복해 보이는 대학 동창 부부는 여러 아이를 입양하고도 거듭된 유산에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여행의 끝에서 버트와 베로나는 두려움과 긍지가 범벅된 비장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아무도 우리들처럼 사랑하지 않아. 그게 무서워.” 그리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같은 이상을 꿈꾸는 것만한 특권은 없다고.

<어웨이 위 고>는 결국 감독의 전작 <아메리칸 뷰티>와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좌절된 이상적 가족에 대한 욕망의 상상적 구현이며,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어른을 위무하는 <파랑새> 동화다. 그러나 모든 동화의 해피엔딩처럼 여기에는 억압된 불안이 있다. 둘은 언제까지나 한곳을 바라볼 수 있을까? 실패자처럼 보였던 부부들에게는 진실이 없을까? 어떤 종류의 불쾌함과 무리함, 속물성과도 무관한 얼룩 없는 세계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은 혹시 퇴행적 환상이 아닐까? 우리는 <어웨이 위 고>의 이상주의에 도리없이 이끌리는 동시에 자신이 얼마나 도피적이고,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하는 피터팬인지를 깨닫게 된다. 어쩌면 샘 멘디스도 그것이 백일몽임을 알고 있다. 여정의 끝에서 주인공들이 도착하는 보금자리-이제 죽고 없는 부모의 집-는 지나치게 아름답고 속세로부터 동떨어져 있어, 마치 유령의 집처럼 보인다. 무엇을 하기보다 혐오하는 무엇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삶을 미학적으로 방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웨이 위 고>는 사랑스럽고도 섬뜩한 영화다.

김혜리 <씨네 21>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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